신년사주가 내게 알려준 것들

by 서린

연초에 온라인으로 신년사주를 봤다. 신년이라고 사주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원래 사주 같은 걸 믿는 편은 아니었는데, 재작년에 지인의 추천으로 처음 사주를 본 이후로 은근히 관심이 생겼다.


나는 기독교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엔 교회에 다녔고, 독실한 천주교 집안인 시댁을 따라 성당에서 결혼식도 올리고 천주교 세례도 받았지만, 사실상 무교에 가깝다. 오히려 오로지 나 하나만 믿는 ‘나신교’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의지대로 행동하고, 그 행동에 따른 결과가 모여 내 인생을 만든다고 그렇게 믿었다. 젊을 때는 그 믿음이 거의 신념에 가까웠다.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떠안는 삶이야말로 삶을 살아가는 가장 정직한 태도라고 생각했다. 종교나 미신에 기대는 건 어쩐지 조금 무책임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마흔을 넘기면서 그 ‘나신교’의 믿음은 종종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왜 사람들이 종교나 미신을 믿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살아보니 인생은 내 의지와 내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특히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가족을 이루고 살다 보면 내 선택이 아닌 결정들이 내 삶의 방향을 좌우하는 순간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남편의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불확실성도 함께 커졌다. 사업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것은 내 노력이나 내 선택과 상관없이 내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 처음 사주를 보던 재작년에는, 내 사주보다도 남편의 사업운이 가장 궁금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미래를 알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불안을 어디엔가 잠시라도 맡기고 싶었던 마음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그 당시 받은 사주 결과는 희망과 절망이 묘하게 섞여 있었다. 언젠가는 남편의 사업이 크게 성공해 돈 걱정 없이 살게 될 것이라는 말에 안도하면서도, 그 시점이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뒤라는 점에서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사주 결과를 전부 믿는 건 아니지만, 그 경험 이후로 사주를 단순한 미신이라고만 치부하지는 않게 되었다.


사주는 정답을 알려주는 도구라기보다는, 마음속 고민을 꺼내놓고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일종의 상담에 가까워 보였다. 지금도 어떤 과학적 원리로 내가 태어난 시간이 내 기질과 성향을 결정하게 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사주라는 것도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내가 타고난 기질을 잘 파악하고 그걸 잘 살리거나 극복하는 노력을 더 하는 과정이라고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이번에 본 신년 사주 역시 비슷한 역할을 했다. 불(火)의 기운이 강한 내 사주를 두고, 겉으로는 은은한 촛불 같지만 속으로는 마그마를 품은 활화산 같다는 표현이 나왔을 때, '오, 좀 용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겉은 차분해 보이지만 속은 늘 불바다라는 말이, 내가 왜 그렇게 마음공부에 집착하며 살아왔는지를 설명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다스리지 않으면 언젠가 넘쳐버릴 것 같다는 불안, 그걸 나는 꽤 오래전부터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예전에 브런치에 썼던 글에서도 나는 겉보기엔 평범한 회색의 나와 달리 내면에는 남들이 모르는 열정 넘치고 비밀스러운 진보라색의 내가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 글에서 묘사한 나의 모습과 일맥상통하는 사주 풀이라 상당히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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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인상 깊었던 건 남편과의 궁합이었다. 나는 불(火)이 강하고 물(水)이 전혀 없는 사주인데, 남편은 물(水)이 많고 불(火)이 전혀 없는 사주라고 했다. 개인으로는 정반대의 사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궁합 점수는 92점, 서로의 결점을 보완하고 생존에 꼭 필요한 최적의 궁합이란다.


결혼할 때는 몰랐지만, 같이 살면 살수록 정말 정반대의 사람을 골랐다는 생각을 자주 해왔다. 성격도, 사고방식도, 삶의 리듬도 전혀 다르다. 그런데 사주까지 이렇게 정반대일 줄이야.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 다름 때문에 자주 부딪히고, 동시에 그 다름 덕분에 마음 깊은 곳에선 안정을 얻고 의지하는 관계인 것 같다.


마치 엘리멘탈의 엠버와 웨이드처럼, 우리는 완전히 다른 요소로 이루어진 개인들이다. 하지만 결국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각자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 관계가 아닐까.



결혼 5년 차쯤, 우리가 가장 많이 싸우던 시기에는 ‘진짜 나니까 이 사람이랑 살아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결혼 10년 차를 훌쩍 넘긴 지금도 그 생각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뒤에 한 문장이 더 붙었을 뿐이다.


‘그래도 이 사람이니까, 나랑 지금까지 같이 사는구나.’


나와 비슷한 성격의 사람과 결혼했다면, 아마 자존심 싸움을 하다 진작에 끝장을 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우리는 MBTI도 정반대다. 파워 로봇 ISTJ인 나와 달리, 남편은 ENFP로 단 한 글자도 겹치지 않는다. 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 나는 내가 맞고 남편이 틀렸다는 편협함 속에서 ‘이 사람은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 계속 부딪혔다.


그런데 MBTI를 알고 나서는, ‘이 사람은 N이라서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하는구나’, ‘P라서 내 완벽한 계획과 상관없이 즉흥적으로 행동하는구나’ 하고 오히려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해할 수 없던 행동들이 ‘틀림’이 아니라 ‘다름’의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주든, MBTI든, 결국 그것들은 사람을 규정하는 도구라기보다는 서로를 해석하기 위한 하나의 설명서에 가까운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믿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랄까.




사업 때문에 늘 바쁜 남편 덕분에 나는 독박육아를 하는 날이 많다. 여행도, 주말 나들이도 아이들과 셋이서 다니는 경우가 잦았다. 그건 내 오랜 불만이자, 내가 언제나 짜증이 나 있는 이유이자, 우리 부부의 가장 큰 갈등 요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본 사주에서는 내 사주 자체가 식신이 강해 가족을 먹이고 보살피려는 책임감이 유난히 크고, 결국 스스로를 희생하는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고 했다. 심지어 남편마저도 내가 보살펴야 할 대상이 되기 때문에, 남편 복을 바라기보다 내 복을 믿으라는 말까지 덧붙었다.


그 말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씁쓸함이었다. 내 사주에 이미 독박육아와 희생의 DNA가 새겨져 있다면, 내가 다른 누군가와 결혼했어도 결국 비슷한 삶을 살고 있을 팔자인 건가. 그렇다면 남편을 원망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이게 사주의 순기능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를 탓하기보다 ‘이게 내 팔자’라고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 바깥을 향하던 원망을 거두고, 감정의 방향을 안으로 돌리게 하는 것. 누군가를 원망하고, 무언가를 기대하고, 결국 실망하는 일이 반복될수록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건 결국 나 자신이라면, 사주는 어쩌면 감정 낭비를 줄이기 위한 장치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것도 내 팔자'임을 받아들이면 마음은 좀 덜 괴로울 순 있어도, 그만큼 변화의 가능성까지 포기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여전히 사주는 내게 재미로 보는 영역에 가깝다. 하지만 이번 신년 사주는 나 자신과 남편, 그리고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고민하게 만들었다. 사주가 내게 명확한 미래를 알려주지도 않았고, 여전히 내 미래는 내가 만들어가는 거라고 믿지만, 내가 지금 어떤 질문 위에 서 있는지는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사주를 전적으로 믿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가끔씩, 인생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왜 이렇게 되었을까’가 아니라 ‘그럼 나는 여기서 어떻게 살아갈까’를 묻기 위해 사주를 다시 들여다볼지도 모른다.


그 질문 하나를 얻기 위해 쓴 1만 원이라면, 올해의 첫 지출로는 꽤 괜찮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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