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브런치에 한번 지원해 볼까 마음만 품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다가, 최근에 다분히 충동적으로 브런치 작가에 지원했다. 제대로 준비한 것도 아니어서 떨어져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일단 스스로 한 발 내디뎠다는 사실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떨어지면 그때 더 준비해서 다시 지원하면 될 일이니까.
그런데 기대하지 않았던 합격 메일이 지원 하루 만에 도착했다. 정말 기대가 없었기 때문인지 기쁘기보다 약간 얼떨떨했다. 어쩌지? 나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은데? 남들이 보는 공간에서 ‘작가’라는 이름으로 글을 쓴다는 사실이 꽤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그렇게 합격하고도 2주를 훌쩍 넘기도록, 처음 지원할 때의 패기와 달리 단 한 편의 글도 발간하지 못했다. 이미 브런치에 지원할 때 써둔 글이 몇 편 있어 마음만 먹으면 바로 발행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그 ‘마음을 먹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글은 나 혼자만 보는 글, 내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는 글이었기에 스스로 만족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간에 글을 올린다고 생각하니, 그 글이 과연 그럴 만한 글인지 자꾸만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남들과 나눠 읽을 만큼 잘 쓴 글인지, 충분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너무 일상의 사소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건 아닌지. 나의 완벽주의 성향은 늘 이렇게 쓸데없이 나를 머뭇거리게 한다.
브런치에선 그런 나를 재촉하듯 계속 알림을 보내왔다.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려면 타인에게 글을 공개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해요. 작가님의 서랍에 담긴 소중한 글을 발행하는 용기를 내주세요."
"작가님의 서랍에 아직 발행하지 않은 저장 글이 있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내어 글을 완성해 보세요."
《마음 가면》의 작가 브레네 브라운은 “취약함을 드러내는 순간이야말로 인간이 진짜로 용감해지는 자리”라고 했다. 글쓰기란 본질적으로 자기 내부의 무언가를 세상 앞에 내어놓는 행위다. 평소엔 마음속 깊이 감춰두던 생각조각들을 꺼내어 누군가의 눈길과 해석 위에 올려두는 일. 그 과정에는 언제나 약간의 두려움과 떨림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두려움을 견디고 이겨내야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거겠지.
결국 오픈된 공간에 글을 내놓는다는 부담감을 이겨내고 첫 글을 발행했다.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이 읽었고, 열몇 명이 ‘라이킷’을 눌렀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좋아해 주는 경험은 신기한 감정이었다. 나는 칭찬에 약한 타입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나의 글에 날려준 응원, 그 짧고 기계적인 멘트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바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 글을 읽고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딴지를 거는 사람도 없었고, 글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라이킷'을 누른 사람들 역시 어쩌면 내 글을 다 읽지 않고 그저 예의상, 혹은 습관적으로 눌렀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넓고, 이 넓은 세상에서 내가 뭘 하든 세상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 실제의 나는 내 상상 속 나보다 완벽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으며,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는다는,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비로소 더 자유로워진다. 누가 보든 말든, 칭찬하든 말든, 때로는 그 무관심이 한없이 무거운 나를 가볍게 만든다.
그 자유로움 속에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용기를 얻었다. 누구도 내 글에 큰 관심이 없는 덕분에, 나는 오히려 더 마음껏 나다운 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나는 발행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오래 고민하고 끊임없이 고치고, 실체 없는 완벽함을 추구하며 글을 붙잡고 있겠지만, 그 모든 과정의 끝에 나는 여전히 글을 쓸 것이고 그 글을 세상 밖으로 내보낼 것이다.
벌거 아닌 나 자신을 받아들일 용기만 있다면,
우린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