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되었을까. 얼마 전부터 출근길에 옆 단지 아파트 1층 유리창 너머로, 책상에 앉아 허리를 곧게 세운 채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내 또래 여자분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0년 넘게 지나온 출근길인데 최근에서야 그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온 걸 보면, 아마 최근에 이사를 왔거나, 혹은 어느 계기로 새로운 모닝 루틴을 시작한 걸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장면에서도 불현듯 새로운 존재를 발견할 때가 있다. 어느 순간 어떤 풍경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 그날 그분의 모습도 그랬다.
내 출근 시간은 7시가 채 되지 않은, 새벽과 아침의 경계 같은 시간이다. 특히 해가 짧아진 요즘에는 거리가 제법 어둑하다. 그래서인지 어둠 속에서 책상 스탠드 하나만 밝힌 채 앉아 있는 그 모습이 더욱 극적으로 다가온다. 무엇을 공부하는 건지, 어떤 책을 읽고 있는 건지 알 길은 없지만, 하루의 가장 이른 시간에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한 그 옆모습이 묘하게 평화롭고 아름답다. 나는 그 모습을 스쳐 지나가며 볼 뿐인데도 묘하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나도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올라온다.
그분은 자신의 반복되는 아침이 이름도 존재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매일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아마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어느 날은 그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문득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까지 스쳤다. 하지만 이른 아침 걸음을 옮기느라 바쁘기도 했고, 무엇보다 동의 없이 사진을 찍는 일은 실례일 수 있어 그 아침의 공기와 빛, 그 풍경은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내니 이제는 그분의 아침 루틴을 바라보며 나 역시 마음을 다잡고 출근하는 일이 나만의 아침 루틴이 되었다. '오늘도 불이 켜져 있을까?'하고 기대하며 짧은 횡단보도를 건너고, 가끔 불이 꺼져 있는 날은 왠지 궁금하고 허전하기까지 하다.
어느새 직접 대화를 나눈 적도 없는 한 사람과 아주 느슨하지만 따뜻한 연결이 생겨버린 것이다. 이처럼 아무런 접점이 없는 관계에서도 누군가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할 따름이다.
‘미라클모닝’이 한창 유행하던 몇 년 전, 전형적인 올빼미형 인간인 나도 한 번 아침형 인간이 되어보겠다는 야심 찬 다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주도적으로 하루를 열고,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괜히 가슴이 벅차올랐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하고, 책까지 읽고 나면 아침의 고작 한 시간만으로도 하루를 이미 충만하게 보낸 듯한 뿌듯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 ‘기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3주쯤 지났을까. 어느 순간 이유 없이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는 피곤한 나를 발견했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미라클모닝이었는지, 이게 정말 ‘미라클’이 맞는지조차 의문이 들었다. 결국 나는 아침형 인간이 되지 못한 채 약간의 패배감을 안고 미라클모닝을 그만두었지만, 그 경험 덕분에 깨달은 것도 있다.
결국 저마다의 리듬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 자체가 이미 ‘미라클’이며, 나는 내 리듬대로 나만의 ‘미라클’을 만들면 된다는 사실이다.
어릴 땐 매일매일 정해진 루틴을 하루라도 지키지 못하면 실패로 여기고 그만뒀지만, 이젠 며칠씩 건너뛰어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다시 슬쩍 시작해 지속해 나가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꾸준함의 정의가 되었다. 꾸준히 크고 작은 루틴을 조금씩 쌓아 나가다 보면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좀 더 나아진 나를 발견하곤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일상을 버텨내는 힘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이런 사소한 장면들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꾸준함이 다른 사람에게는 희미한 빛이 되고, 그 빛을 바라보는 마음이 다시 또 다른 누군가를 움직인다. 알랭 드 보통이 말했듯,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방식으로 서로를 지탱한다.” 그 말이 이보다 더 자연스럽게 와닿은 적은 없다.
아침마다 나에게 조용한 의욕을 건네는 그분처럼,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런 자극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하루를 흔들어 놓을 만큼 거창한 변화는 아니더라도, 그저 내가 성실하게 지켜내는 작은 삶의 조각이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이름 모를 타인에게까지 은근한 힘으로 스며들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