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공동육아와 코로나와 시작된 남자들의 고급정보공유
다사다난한 이사 후, 시작이었지만
그래도 전출 간 곳은
선임은 물론 대부분 괜찮은 분들이 괜찮으셨고
상대방의 계급도 꽤 오른 상태였으며
국민신문고에서 자르지는 않았지만
무급으로 돌려두었고 더 이상의 트러블은 없었기에
나름 수월한 일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18년생 아이를 데리고 집에 있는 건 정말 어려웠지만
18년생 아이들이 위층으로 주르륵 있어서
언니들이랑 친해진 날들로 인해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 우울한 날들을 조금이나마
이겨낼 수 있었다.
친해진 날들이 많아지고 집이 가깝다 보니
종종 저녁까지 함께 하는 경우들이 생겼는데
다- 놀고 아이들 수면시간에 집에 가면
상대방은
"아 그 선배 우리 학교도 안 나왔는데 어지간히 나대네"라며
또다시 앞에서는 하지 못할 비아냥을 시전 하였는데
내가 힘든 시간을 챙겨준 가족들을 그렇게
비아냥 거리는 게 사실 보기도 싫었지만 무엇보다
아직 말하지 못하는 아이이지만 아이 앞에서
그런 말투를 보이는 게 좋지만은 않았다.
18년생 아이를 키우다가 조금 키울 만 할쯔음
군부대는 더 엄격한 기준이 생긴 그 시기가 다가왔었다.
"코로나"
와이프들도 싫든 좋든 의무적으로 백신을 맞아야
군관사가 출입이 가능하였고
사실 개인적으로 언젠가 맞아야 하지만 그렇게 빨리
맞아야 하나 싶었지만 결국은 엄청난 속도로 맞게 되었다.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밀집된 경우가 많은 군부대도 격리환자들이 늘어났고
그러면서 남자들은 아예 군부대 밖을
심지어 마트조차도 나갈 수 없고
택배조차 집으로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모든 일들은 와이프들의 처리거리가 되었다.
군부대 밖에 쌓인 택배 찾아서 들어오기.
아이 이유식 재료, 식재료 사서 들어오기 등
일상에서 당연히 택배로 가능한 일들을 내가
내 돈 주고 내가 노동을 하였고
남자들은 주말마다 아이들 데리고 삼삼오오 모여서
운동장에서 놀아주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안 그래도 좁은 운동장에 군부대 아이들이 다 나오니
큰아이들은 축구공 한번 시원하게 찰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단기간에 끝날 것 같던 코로나는
은근 오래 지속되었고
그렇게 여자들도 불고 있었다
부동산 바람이
그리고 남자들도 불고 있었다.
코인바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