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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권 포기 각서를 썼다

by 위드웬디

내가 투자한 부동산의 시세 하락과 각종 세금, 대출 이자로 10억 원 가까이 날렸다.

그동안 7억 좀 넘는다고만 생각했는데, 매년 은행에 꼬박꼬박 낸 4,000~5,000만 원의 대출 이자 손해는 생각하지 않았네.


천만다행으로 아직 집이 한 채 남아있긴 하다.

나라에서 집을 팔지 못하게 한 정책 덕분에 임차인이 사는 동안 매도를 할 수 없어서, 시세가 오를 때까지 버틴 셈이 되었다.

작은 단지의 아파트라서 매매 사례가 드물어 실거래가와 호가의 차이가 크긴 하지만.


세금을 내거나 임대 계약 만료로 보증금을 내주어야 할 때마다 남편과 다투었다.

자금이 여유로웠던 예전에는 큰돈 지출이 갈등의 이유가 아니었다. '이만큼 낼 수 있는 능력자'라면서 오히려 기쁘게 돈을 내주었던 우리였다.


매달 대출 이자로 월급 이상을 감당하며 3년을 살다 보니 마음이 쪼그라드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다툼의 횟수가 늘어났고, 예전에는 신경도 쓰이지 않던 금액이 분노의 이유가 되었다.


급기야 결코 입 밖으로 꺼내어서는 안 될 말까지 나왔다.


그리고 나는 '재산권 포기 각서'를 작성하고 인감증명서를 첨부했다.


한 사람의 명의로 되어 있는 부동산 소유 현황은 인터넷 등기소에 잘 정리되어 있다.


300~400만 원을 주고 산 몇 평짜리 공유 지분 땅도 정확히 나온다. 당시에는 오성과 한음이 대장간에서 못을 주워오듯 사놓았던 지분들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내가 주워온 못들이 그냥 뾰족한 못일 뿐이다. 대장간이 어려워졌을 때 밑천이 되어준 못이 아니라, 사방팔방으로 뾰족함을 세우고 있을 뿐이다.

지나가 '빼돌렸다'라는 말로 심장에 피를 내는 데에 쓰이기도 한다.


반 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부동산 목록이 뭐라고, '나는 여기에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라고 명백히 확인하고 인감도장을 찍었다.

계약서 쓰던 습관이 남아있어서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도 적고, 간인도 했다.

물론 법적인 효력은 없을 것이다. 소유권을 완전히 넘기기 위해서는 명의 이전 등기를 해야 하고 나라에 취득세, 양도세를 납부해야 한다.

단지 가세를 기울게 한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의 표명일뿐이다. 그래도 아무것도 믿지 못하겠다는 남편에게 위로는 되지 않을까 한다.


어차피 나 혼자 쓰자고 모은 건 하나도 없으니, 이거라도 지키겠다며 고민하지 않아도 되어서 오히려 좋다.


홀가분하다.


무언가 손에 쥐고 있을 때에는 좀 더 나은 걸 가지고 싶다는 데에 집중하지만, 아예 아무것도 없으면 모든 걸 손에 쥘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긴다.


다 비워냈으니, 이제부터 좋은 것만 채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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