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후킹 문장 형태로 써 본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만 들어.
인생의 치트키는 '정체성 부여'야.
그들이 그토록 찬란하게 빛나는 삶을 살 수 있는 이유,
내가 결혼 후 마음에 어두움을 키우며 살았던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내가 감사히 살아있는 이유,
모두 '정체성 부여'에 답이 있었다.
정체성을 무엇이라고 부여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부여하는지에 답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성과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냥 한다'라고 말한다.
그들이 그냥 해도 어마어마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이유는 스스로가 '나는 당연히 이걸 해내는 사람'이라고 정체성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걸 해내는 데에 따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는 거다.
고명환 작가님의 긍정 확언 또한 정체성 부여의 한 가지이다.
"나는 ~이 되었다. 나는 ~을 했다."라고 긍정 확언을 외치는 건 '나는 ~을 할 수 있는 ~한 사람이다.'라는 정체성 부여이다.
중요한 건 정체성을 부여하는 방법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말이 정체성의 기준이 되지 않도록 한다.
또한 '나는 ~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의 주체적인 형태가 되어야지,
'내가 ~한 사람이니 세상이 이렇게 대접해주어야 한다.'로 다른 사람이 개입하게 하면 오히려 인생 망하는 방법이 된다.
이를 이용하면 다른 사람에게 정체성을 부여해서 타인의 삶을 빛나게 할 수도 있고, 망가뜨릴 수도 있다.
마음이 무너진 사람에게 '너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야. 나는 확실히 그걸 알아.'라고 희망을 주는 격려는 사람을 살린다.
"너는 늘 제대로 해내지 못하잖아. 네가 또 망쳤어."라고 지속적으로 '너는 실패자'라는 정체성을 부여하면 그는 정말 실패자가 된다.
이는 나르시시스트가 사람을 조종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서사 많은 아줌마가 알려주는 인생의 치트키 결론이다.
옳은 삶은 어떤 것인가 치열하게 사색해라.
'나는 그 삶을 사는 사람이다'라고 정체성을 부여해라.
다른 사람의 말이 들어가지 않은, 오직 네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정체성으로 인해 세상이 너에게 어떻게 대할 것인지는 생각하지 마라. 이 또한 네가 만들어가는 거다.
*그림; AI로 제작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