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까지 서류 제출을 완료해야 하는 큰 건이 있었습니다.
전임자가 퇴사하고 몇 년이 흐른 지금, 실무 팁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제가 맡은 일이었습니다.
대강의 자료들을 가지고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허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자료 모으고 정리해서 스캔하고 다시 정리 작업하는 데에 한두 달은 걸릴 일이었습니다. 전에 실무를 했던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기존 자료가 있다는 것만으로 다들 안일하게 생각했지요.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회사에서 진행한 서류 샘플을 간신히 구해서 그 틀에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구조가 눈에 들어오고, 어느 선까지 적어야 하는지 알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만큼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더욱 부담이 되긴 했지만요.
그러나 그 회사의 틀이 제대로 된 방식이라는 생각에, 거기에 내 자료를 맞추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어요.
애초에 공문을 받아 들고 제가 예상했던 방식이 아닌, 다른 회사의 틀에 짜 맞춰 넣느라고 서류 정리가 더 오래 걸렸습니다.
거의 매일 야근과 주말 근무까지 하고 제출일에 부랴부랴 파일을 올렸습니다.
아뿔싸.. 폴더별로 나누어진 압축 파일이 업로드가 안 되었어요. 각 폴더를 일일이 열어 개별 파일을 다시 업로드했습니다만, 제출 기한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업로드 자체가 막힌 것은 아니었지만, 제출 기한을 지키지 못한 것은 확정되어 버렸어요.
허탈했습니다.
그저 원래 자료를 스캔해서 업로드하고, 어떻게 구성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표로 보여주면 되는 거였어요.
남이 만든 틀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다가 '기한 내 제출'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형식도 맞추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하겠다는 생각이 완료 자체를 못하게 한 거예요.
완벽주의라고 할 만큼 완벽하게 하지도 못하면서, 기존 형식을 따라야 한다는 강박이 아쉬웠습니다.
유연한 생각으로 접근하면 힘을 덜 들이고도 훨씬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아는데도, 벗어나지 못하는 게 속상합니다.
브런치 글 또한 제대로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나 봅니다.
지나가는 생각을 잡아챈 메모는 많지만, 일주일에 두 편도 완성하지 못해 연재일을 놓치기도 했습니다.
글의 맵시를 챙기는 것도 좋겠지만, 지금 내 수준은 글을 완료해서 메시지를 전하는 데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할 때라는 걸 알면서도 이럽니다.
북크북크 박수용 작가님의 신간 <그때 그 책이 아니었다면>은 인생을 다시 세운 열두 권의 책에 대한 글입니다.
보통은 목차에 각 책을 언급하고, 책마다 어떤 의미를 주는지 나누는 구성을 따를 거예요. 그러나 <그때 그 책이 아니었다면>은 기존의 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 책이 무엇인지는 이 책을 직접 읽어야 알 수 있습니다.
작가님이 전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는 책 소개가 아니라 '그 책으로 인해 어떻게 인생이 달라졌는가'라는 거예요.
책을 중심으로 목차를 잡지 않고 책이 준 의미에 따라 구성한 건, 틀보다 내용을 중시한 좋은 사례라고 보였습니다.
오히려 어떤 책인지 궁금해서 안의 내용을 더 살피게 되었어요. 메시지를 더욱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거죠.
본질을 우선시하고, 완벽보다 완료에 중심을 두려 합니다.
아무리 애써도 잘되지 않기에, 더 시도하고, 오늘도 내일도 계속 그러려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열 번 만에 할 수 있다면, 스무 번 서른 번 하더라도 어설픈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하다 보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