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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드웬디 Sep 11. 2024

오히려 겸손하고 친절한 곳

대치동이라고 하면 기 센 엄마들의 엄청난 치맛바람과 숨 막히는 공부 압박이 떠오를 수 있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학부모의 비뚤어진 교육 열정을 표현할 때 쉽게 쓰는 소재가 대치동이다.


그러나 대치동은 내가 살아본 그 어떤 동네보다 겸손하고 친절한 곳이다.


어쩌면 겉으로만 친절하고, 실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상위권 대학 입학을 향한 욕망'보다는 '학업 성취의 열정'이라는 말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


미도에서 돈 자랑하지 말고,
선경에서 권력 자랑하지 말고,
우성에서 학벌 자랑하지 말고,
은마에서 자식 자랑하지 마라.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정말 뼈가 있는 말이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가 대화하고 있는 수수한 옷차림의 이 엄마가

어느 장관님의 사모님일 수도 있고,

어느 대학교의 교수님일 수 있고,

강남 어느 빌딩의 건물주일 수 있고,

자식들을 모두 인서울 의대에 보낸 엄마일 수 있다.


그게 모두 무슨 상관이냐고 하겠지만,


중요한 건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따라 함부로 사람을 대하지 않는 동네라는 점이다.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떻게 말이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험한 말, 근거 없는 소문은 자중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 일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한 번 들은 말은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나에게는 굉장히 큰 장점이었다.


쓸데없이 주눅 들지 않아도 되고, 의미 없이 겉치장하지 않아도 된다.


새벽부터 청소하시는 할아버지께서 건물주이실 수도 있다


"웬디가 몰라서 그래. 그 동네 엄마들 입이 얼마나 무서운데~."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좋다.


그러면 나처럼 정보력 없는 엄마라도 아무 문제 없이 아이들 학교와 학원에 보낼 수 있는 곳이라는 말도 된다.


대치동에서 산 지 4년이 넘도록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엄마가 한두 명뿐이지만,

우리 아이들은 모두 별 탈 없이 학교를 다니고 친구들과 잘 지낸다.


"엄마는 이 동네에서 아이들한테 제일 신경 못 써주는 엄마일 거야." 라면서 혀를 쏙 내미는 우리 딸 말처럼,


엄마가 육아를 훌륭히 해내는 슈퍼맘이 아니더라도 괜찮은 곳이다.


어쩌면 나는 좋은 교육 환경에 아이들을 일정 부분 위탁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이 동네에 내 집을 마련하고 싶었다.


애초에 여기에 터를 잡을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동네가 좋아질수록 원망하는 검은 마음이 더욱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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