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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드웬디 Sep 08. 2024

엄마의 끝없는 욕심

아예 대치동 학원가를 알지 못했다면 모를까, 1주일에 1번씩 큰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면서 보니

과연 모든 학부모가 살고 싶어 하는 동네다웠다.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최적화된 곳이다.


건물마다 유명한 학원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고, 길에 걸어 다니는 아이들은 죄다 모범생으로 보인다.

화장이 짙은 여학생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질풍노도의 사춘기 남학생들마저 순둥이들로 보인다.


몇 군데 있는 술집은 학부모들이 아이들 학원 보낸 사이 잠시 숨을 돌리는 장소이지,

유흥의 느낌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다.


오히려 치킨집에 와서 함부로 맥주를 마시는 학생들은 없는지, 서로 매의 눈이 되어 주는 어른들의 자리이다.



2019년에 전세 계약이 끝나면서 이촌동 집을 매수했었다.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 격'이었던 반포 집을 적당한 가격으로 팔고 (라는 말은 싸게 팔았다는 말과 같다)

향후 20년을 살아야 한다니 터전을 잡자는 마음으로 매수했다.


역시 철학관 아저씨의 조언에 따라 'ㅅ, ㅈ, ㅊ'과 현관문 방향을 따지고, 내가 원했던 남산타워 뷰도 있는 집으로.


그래서 비싸게 샀다.

팔아서 돈 벌자는 목적이 아닌,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 집이었기에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목적으로 마련한 집이었다.


그런데 대치동 환경을 보니 내가 정말 살고 싶은 곳은 여기였다.


숙제를 다 하지 못한 아이를 서둘러 차에 태우고, 김에 밥과 참치만 넣은 도시락을 싸들고 차 안에서 먹으면서 숙제하라고 하지 않아도 되고


차멀미가 심해서 1시간씩 막히는 도로에 있다 보면 머리가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둘째를 달래지 않아도 되고


첫째가 학원 수업을 받는 동안 둘째와 함께 시간을 보낼 카페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는 곳.


'학생은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어서 열정을 다해 공부하는 습관이 스며드는 곳.


대한민국의 리더가 되는 꿈을 꾸는 게 당연한 곳.


대학 입시를 위해 모여있기는 하지만, 가치관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 반듯한 가정교육을 받은 아이들이라는 믿음이 있는 곳.


어차피 이촌동에서도 재건축 대상 아파트를 매수했으니 낡은 집에 사는 것은 매한가지,

대치동의 재건축 대상 아파트를 내 집으로 매수해서 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후회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당시 하필이면 가격도 비슷했다.


'여기에 집을 살 수 있었는데 그놈의 사주팔자 때문에 내가 살고 싶은 동네에서도 살지 못하고

아이들은 학원 다닌다고 고생하고'라는 후회와 욕심이

엄마의 마음에 검은 뿌리를 내렸다.


강남과 용산의 집값이 차츰 벌어지고,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느라 힘겨워할수록

사주에 따라 강북에서 살아야 한다는 애들 아빠와 시댁을 탓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강해졌고,


까짓 사주팔자 따위 없어도 나는 잘 산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검은 마음은 머리에까지 뻗어나가서,

'나는 투자도 잘해서 애들 아빠의 사주보다도 더 뛰어난 사람이다'를 보이고 했다. 


2019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분출한 부동산 상승장에서, 빨리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집착했다.


집 두어 번 사고팔면 애들 아빠가 몇 년간 버는 것보다도 나으니, 시댁에 보란 듯이 자랑하고 싶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꼭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모두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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