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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ae Feb 09. 2023

사랑해라는 말속에

그 이유를 알 수 없어도 그 이유는 필요하지 않고

주말에는 요가 수업이 없어서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인도의 택시인 툭툭를 처음 타는 날이기도 했다. 매일 걷던 거리를 지나 조금 더 가니 새로운 풍경이 보였다. 큰 길가 한쪽에는 툭툭이 줄을 지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툭툭를 골라타고 거리를 달린다. 창문이 없어 양 옆이 뻥 뚫린 툭툭은 도로에 있는 오토바이와 자동차의 엔진소리와 경적소리, 매연까지 모두 담아낸다. 

인도의 차들은 경적을 잘 울리는데 처음엔 너무나 이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되도록 경적을 울리지 않고 깜빡이를 켜는데 여기서는 깜빡이대신 경적으로 대신했다. 나 여기 있다. 그리고 앞에 있는 사람들 조심해라고 말하듯이 아무 때나 빵빵 울린다. 귓전까지 울리는 경적소리에 처음엔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지만 어느새 적응된 것 같다.


주말이라 길가에는 차가 길게 줄지어 다녔고 막혔지만 생경한 바깥 풍경을 보고 있으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모습, 가게들의 모양들이 바쁘게 내 눈 속에 담겼다. 선생님이 알고 있는 현지인 맛집으로 향했다. 가게에 들어선 순간 많은 인도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거나 주문을 하려고 매대 앞에 가득 서 있었다.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간 가게의 내부는 신전 같았다. 가네샤부터 하누만, 시바신, 또 처음 보는 여러 신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가게의 벽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선생님이 추천한 메뉴로 음식을 주문했다. 인도의 난과 카레, 중국식 면요리를 먹었는데 난이 너무너무 맛있었다. 갈릭난이어서 마늘의 고소함과 난의 쫄깃함이 잘 어울렸다. 숙소에서는 짜빠띠라고 하는 기름기가 거의 없는 담백한 맛이었는데 외식하는 기분이 났다. 


인도인들은 단것을 아주 잘 먹는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나조차도 너무나 달아서 혀가 얼얼해지는 디저트인 스위트를 사람들은 포장도 해가고 몇 개씩 주문하기도 한다. 스위트는 엄청 단 종류의 디저트인데 이미 단 것을 또 달달한 설탕물에 재워 놓은 것도 있다. 모양이 예뻐서 한입씩 맛보았는데 스펀지처럼 폭신한 식감을 지닌 특이한 디저트도 있었다. 당도의 최고치를 맛본 듯 온몸이 짜릿했다.  


식사를 마치고 시내의 거리를 걸었다.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는 한국의 남대문 시장과 비슷한 것 같아! 하며 고개를 도리도리 돌려가며 시장을 구경했다. 숙소 근처에는 관광객들이 많아서 인도 사람들 반, 관광객 반이었는데 시장은 현지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같이 거리를 걷는 친구에게 여기 남대문 시장이랑 명동 거리 같기도 하다면서 웃었다. 인도에서도 한국의 분위기가 나는 곳이 있구나, 사람들 사는 모양들은 비슷하구나.


시장에서 조금만 아래로 내려가면 갠지스 강이 보인다. 상류에 위치한 갠지스강물은 맑기도 하지만 물살이 세다. 빠르게 흘러가는 갠지스 강가에 앉아 발을 담근 사람들, 무언가 의식을 치르러 나온 사람들, 강가에 띄우는 꽃을 파는 아이들과 할머니,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 그때 찍은 사진을 다시 보니 인도를 닮은 여러 가지의 색이 보인다.

나는 주말을 제외한 모든 날에는 요가 수업을 듣고, 숙소 근처의 거리를 걸으며 구경하고,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고, 처음 본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생활을 한다. 사람들이 걱정했던, 그리고 유튜브에서 떠들어댔던 인도의 모습과는 다른 것을 느낀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인도가 그저 시골 같고 사람들은 시골사람들같이 순박하다. 웃는 얼굴 속에서는 순수함마저 느껴진다. 그곳에 가서 직접 보고 느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내가 운이 좋아서 사기를 당하지 않은 것일 수도, 평온한 나날들을 보낼 수 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인도는 나에게 그저 이 풍경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인도가 어떤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어도 나는 인도가 좋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사랑에 빠진 것처럼 있는 그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랑해’라는 말속에 아무런 판단이 없듯이 나는 어느새 인도를 마음속 깊이 담아내었다. 내가 인도를 좋아하게 된 그 이유를 알 수 없어도 그 이유는 필요하지 않고, 그냥 여기, 인도이기 때문에.


인도에서는 세탁기가 없는 숙소에 머물고 있어서 매일 손빨래를 하고 옥상에 빨래를 너는 생활을 한다. 냉장고도 귀해서 시원한 얼음이 있는 음료가 있는 카페를 찾기도 쉽지 앉고 전력이 불안정해서 정전도 자주 된다. 도시에 살았을 때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여기서는 없어도 일상생활이 가능하고 그 정도쯤이야 감수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 없기도 하고 편리하고 깨끗한 생활을 할 수 없어도 나는 여기에 정이 들어버렸다. 여기엔 다른 것들이 많이 있다. 순수함이 있고 하나하나의 영혼들이 살아 숨 쉬는 것 같다. 누군가 갑자기 내게 꽃을 선물하듯 기분 좋은 놀라움이 있고 사람들의 해맑은 웃음이 나의 영혼마저 웃게 만들어준다. 


인도에 오기 전의 나는 오랜 연인도 잃고, 가족과도 심각하게 다투고, 일하는 곳에서도 나를 내치듯 내보냈다. 한 가지의 사건만으로도 벅찰 만큼의 큰 사건이었는데 그게 세 번이나 연속으로 나를 따라왔다. 나의 집이 없어진 느낌이 들었고, 내가 서 있던 땅이 지하 깊숙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심장의 한 부분씩 뜯어가듯 깊은 암연의 상태에 도달했다. 온몸이 떨리도록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고 느껴졌다. 마음이 아파서 처음으로 정신과의원에 갔고, 약을 먹었고 많이 울었고 많이 누워만 있었다. 그 모든 어두움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듯이 나는 여기서 많이 웃고 행복해서 운다. 


많이 힘들었지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나는 알아

거기까지 가느라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어?

혼자서 많이 외로웠지?


인도에서 모든 요가 수업을 마치고 글을 쓰는 그 시간들이 나에게는 깊은 위로가 되었다.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고 이곳에까지 온 후에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언제나 밝게 빛났고, 맑게 웃는 사람이었고, 순수한 아이처럼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한국의 회색 도시 속에서 나를 숨 막히게 했던 무거운 압력이 인도에 와서야 풀어지고 있다. 나는 언제나 이 이야기를 할 때면 눈물이 난다. 내가 너무나 힘들었을 때 나를 지켜준 것은 나였다. 그 모습이 나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안쓰러워서 누군가가 나를 꼬옥 안아주기를 바랐다. 숨이 막힐 정도로 꼬옥.


인도에 와서 알게 되었다. 그 모습을 안아주는 사람도 나였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준 것 또한 나였다. 언제나 나를 지켜주는 그 존재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 나는 씩씩하고 용기 있게 잘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나를 위로해 줄 때 흘리는 눈물은 슬프지 않고 기쁘고 행복했다. 행복해서 눈물이 오랫동안 두 볼에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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