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3.6. NSW주립도서관에서 씀

나를 안아주네

by narae

시드니에 온 첫날, 친구와 트레인을 타고 만난 풍경에 헉하고 감탄했다. 트레인 창문 너머로 보이는 진한 색의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 첫눈에 반한 사람처럼 그 풍경을 봤다. 어떻게 트레인 밖의 풍경이.. 아니.. 놀라웠고 아름다웠고 감격스러웠다. 어서 와, 하고 두 팔 벌려 이리 와 내게 안기라고 반겨주는 것 같았다. 시드니에 머무는 동안 나는 매일 가서 안겼다.


처음 만난 세상은 다시 나에게 색을 입혀주고 표정을 건네준다. 무표정, 크고 작은 사건들, 방관에 익숙했던 아이가 손목에 상처가 나고 고개가 돌아가는 폭력을 받고 마음이 할퀴어지는 말을 들어도 그것마저도 익숙한 듯 무념무상으로 가만히 숨만 쉬며 살고 있다가, 혼자 남겨져서도 이것이 무슨 일인지,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인지 암연 속에 살다가, 이 여행날을 위해서 꾸역꾸역 살다 왔다. 이 곳이 나를 안아준다.


괜찮지 않았지만 누구와 얘기를 하면 마무리로 아 근데 괜찮아. 글에서도 나는 괜찮다, 괜찮다 정말로. 거짓말 했지만 사실은 안 괜찮았다. 괜찮았다고 말한 모든 것이 괜찮지 않았다. 정말로. 내가 나 자신을 속이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라 생각해서 나 스스로가 자신에게 불친절한 날들을 보내면서도 타인에게는 늘 다정하려고 애썼다. 애쓸수록 내게 남아있는 것들에서부터 닳아빠진 것이 느껴졌다.


어느 날은 아무와도 말하지 않는 하루를 보낸다. 수업할 때만 말하는 날이 많은데 그럴 때 마무리 인사로 하는 말들이 사실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오늘 하루, 늦은 시간까지 매트 밖에서도 매트 위에서도 고생 많았습니다. 남은 밤도 편안히 푹 쉬세요. 나마스테.


나에게 남은 밤이 나는 편하지 않았고 잠들기 어려운 밤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일부러 일찍 일어나서 복싱을 가고 몸을 움직여도 잠은 더 멀어지고 생각들은 나를 겨누고. 어떤 글에서 과녁이 너무 크니까 날아오는 화살을 다 맞는다는 말을 봤다. 과녁을 줄여 나 자신에게로만 시선이 향하면 나는 내면으로 더 넓어지고 화살이 날아와도 꽂히는 곳은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