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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ae Jun 15. 2023

아무도 없는 요가원에서

우리를 늘 지켜보고 계시는 존재에 대하여

한 달 동안 머무른 인도 리시케시의 요가 홀, 숙소 위층에 위치한 요가 홀에는 언제나 나를,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신상이 있었다. 그중에 가네샤, 코끼리 머리를 한 지혜와 행운의 신으로, 학문과 상업의 성취를 가져다준다고 한다. 힌두교의 세 주신 중 하나인 시바와 그의 아내 파르바티의 아들이며 시바의 자녀들 중에도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신이다.

수업이 시작됨을 알리는 푸자부터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오후 요가 수업 때 노을이 지면 그 노을빛으로 주황빛 그림자가 생겼다. 따뜻한 빛이 스며든 가네샤를 보면서 내면의 평온함을 느꼈다.


종교는 없지만 코끼리 머리를 한 신에게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갔다. 그러고 보니 요가 매트에도 가네샤 마크가 있는 걸 사용하고 있었다. 인도에 오면 제일 사고 싶었던 것도 가네샤 신상이었다.


한 달 동안의 요가 지도자 과정이 끝났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한 시간에 아무도 없는 요가 홀에 들어가 쓰고 남은 성냥개비를 치우고, 물건들을 가지런히 놓았다. 어제 시험 보기 전에 가네샤 신상 앞에서 불을 붙였는데 처음 해보는 일이라 서툴러서 불도 제대로 붙이지 못했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나은 실력으로 신상 앞에서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저 그 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네샤, 파탄잘리, 비슈누, 시바 신을 차례대로 한 번씩 바라보았다. 내가 요가 수업을 들을 때 그 신들은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시 한번 가네샤를 바라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했다. 나는 두 손을 합장하고 그동안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나의 눈 속에 눈물이 가득 차올라 눈앞의 신상의 모습들이 흐려졌다. 어깨가 떨리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머릿속에서는 신을 향한 말들이 재생되었다.


저는 드린 것이 없고 오히려 이곳에 오기 전까지 부끄러운 모습뿐이었는데, 어째서 저에게 이런 많은 선물들을 주시는 것인가요? 이런 저의 모습마저도 모두 말없이 바라보시고 제가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마저 꿰뚫어 보신 것처럼 처음부터 멀리서 바라봐 주셨나요. 그 자리에 있어주시니 저는 그저 부끄럽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런 저를 묵묵히 지켜봐 주셔서  저는 너무나 기쁩니다. 그리고 덕분에 많은 것을 얻어 갑니다.


이 말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되었고 눈물도 끊어질 줄을 몰랐다. 아무도 없는 요가원에 앉아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다. 인도에 오기 전까지 나를 벼랑 끝으로 밀어내려고 모두 작정한 것처럼 하나, 둘, 셋 하고 나를 밀어내고 있었던 시간들. 이래도 너 자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이래도? 이렇게 힘든데도? 내가 희망의 끈을 잡으려 할수록 나의 손에는 피가 나고 살갗이 떨어져 가는 아픔으로 견뎌야만 했다.


스스로 견뎌내는 그 모습들이 추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인도에 왔고, 나는 아주 먼 나라, 나와는 인연이 없을 것 같은 나라 인도에서 많이 웃었다. 지나간 것들은 그대로 놓아주고 앞으로 내에 다가올 것들에 대해 기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좋은 무언가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인도에서 찍은 사진들을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보냈다. 사진 속에 있는 나의 모습은 내가 처음 보는 모습들이었는데 나는 밝고 크게, 그것도 아주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사진을 다시 보기만 해도 그때의 감정과 행복했던 웃음이 생각나서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나는 그 사진을 찍는 순간에 정말 행복했구나. 내 모습을 다시 보고 나서야 느낀다. 부모님은 나의 사진을 보시고는 나는 인도에 있는 게 어울린다면서 웃는 모습이 참 좋다고 말씀해 주셨다. 나의 감정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표정으로 번지고 있었다.


인도에서, 많이 웃고 행복해서 울었다. 슬퍼서 우는 시간은 한순간도 없었다. 더 머무르고 싶어서, 아쉬워서, 행복해서, 아름다워서, 포근해서 울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웃을 수 있는 제일 밝은 웃음을 인도에서 터트렸다. 가장 행복했던 한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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