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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ae Aug 14. 2023

푸석푸석한 마음이라면, 나의 숲으로 가요

나를 위한 위로를 주는 곳으로

마음이 푸석푸석해질 때 나는 나만의 숲으로 간다. 부모님의 고향인 남원으로 가기도 하고 어느 때는 제주도로, 이젠 먼 고향이 된 인도까지 나의 숲은 어느새 세 군데나 되었다.


버스를 타고 온 시골, 오랜만에 오는 손녀가 반가워 눈물을 글썽이며 반겨주시는 나의 할머니와 할머니를 돌보시는 나의 아빠가 계신다. 혼자 먹는 초라한 집밥에 지친 나를 식탁에 앉혀주시고는 끝없는 반찬을 꺼내며 놓아둘 자리가 없어 식탁의 끝까지 음식을 내어주신다. 밥을 먹는다는 것. 그저 제때 끼니를 챙긴다는 것 말고 이렇게 얼굴을 보며 한 식탁에 앉아 반찬에 대해 이야기하고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 매일 꾸고 싶은 꿈같다.


남원은 어렸을 때부터 가던 시골이어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다. 할머니가 해주신 맛있는 음식들, 조금만 가면 있는 뱀사골계곡과 정령치, 병풍같이 펼쳐진 지리산 산맥과 그 산자락을 온몸으로 안아주고 있는 구름은 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마음까지 포근히 감싸준다.


시골은 없는 게 많다. 도시의 현란한 불빛도 없다. 나를 보아 달라는 간판들과 네온사인이 없는 한적한 마을이다. 높은 곳에 위치한 나의 시골은 달빛이 가장 밝아 주변의 구름까지도 밝게 비춘다.


도시에서 들리는 자동차 소음도 없어서 누우면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든다. 꿈도 꾸지 않고 푸욱 잘 수 있는데 도시에서 사는 나와 동생은 시골만 가면 잠을 엄청 잔다. 특히나 동생은 피곤했던 날들을 자는 시간으로 말하려는 듯 깊고 길게 잠을 잤다.


불필요한 소리와 빛이 없는 곳에서 나는 깊은숨을 쉰다. 도시에 있는 것들은 시골에 없다. 반대로 말하면 도시에 없는 것들은 시골에 있다.


할머니 텃밭에 가서는 자라나고 있는 깨와 채소들을 구경했다. 아빠는 오이며 가지며 그냥 먹어도 된다며 따주셨다. 오독오독 깨물어 먹으며 어스름이 깔린 시골길을 걷는다. 보라색, 하얀색의 예쁜 도라지 꽃을 꺾어주시는 아빠. 봉숭아물을 들인 손으로 꽃을 보니 너무나 아름답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시간의 길을 걷는다. 아, 자유로워라 하고 마음이 얘기한다.


밤에도 산책을 했다. 달빛만이 있는 까만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면,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하나 둘 별빛이 보인다. 높은 위치에 있어 밤공기는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선선해서 외투를 걸치고 밤 산책을 한다. 아빠와 걷는 시골길은 한적해서 풀벌레 소리만이 들린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는 산책시간을 사랑한다. 밤이 주는 선물, 항상 달을 찾아보고 밤하늘의 별을 눈에 담아 간다. 내가 담아 갈 수 있는 가장 반짝이고 멋진 풍경이다.


이번 여름도 할머니와 아빠와 시골에서 보냈다. 소박한 행복이 머무는 곳. 내 마음을 다시 채워주는 곳. 비싼 음식이나 화려한 것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딱 맞는 온도로 나를 안아주는 곳. 나의 숲, 나의 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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