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인도하면 소, 역시나 소가 많은 나라다. 차가 오가는 도로에도 소가족들이 모여 중앙 분리선처럼 있기도 하고, 좁은 도로를 다 막아서 차들이 비켜가기도 한다. 클락션을 아무리 크게 울려도 꿈쩍 않는 소들은 손으로 툭툭 쳐서 자리를 옮겨준다. 소들은 앉아있거나, 갑자기 볼일을 보거나, 뭔가를 주워 먹거나, 그르렁하고 포효하는 듯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길을 가다 보면 항상 송아지들을 만나는데 경계심이 강한 어미들을 만나면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한다. 송아지들의 이마는 하얀 털이 나 있고 작은 몸집을 가지고 있어서 정말 귀엽다. 길을 가다 송아지가 너무 귀여워서 그 하얀 이마를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작은 구멍가게 앞에도, 좁다란 언덕길에도, 식당 앞에도, 소가 있다. 매일 보는 풍경에 소가 있어서 이제는 소가 있는 길목이 더 자연스럽다. 아침에 빨래를 널러 가는 옥상에서 흰 소를 쓰다듬어 주는 인도인을 봤다. 인도에서 흰색의 암소는 신성시 여기기 때문에 흰 소를 쓰다듬어 주는 장면을 종종 본다. 그 인도인은 흰 소의 젖도 짜주고 등도 넓게 쓰다듬어 주며 키우는 소처럼 대했다. 흰 소는 기분이 좋은지 계속 그 자리에서 한참을 머무르다 갔다.
소들이 있어서 귀여운 송아지도 보고, 생경한 장면도 보지만 그들이 배출한 것들도 자주 마주친다. 한국에서 처럼 길을 가면서 핸드폰을 보면 십중팔구 소똥을 밟게 될 것이다. 한눈을 팔지 않아도 밟을 만큼 길가에 널린 게 소똥이다. 그런데 냄새가 나지 않아서 시각적인 것으로만 인지된다. 길가엔 모래와 소똥이 섞여서 나도 자연스레 밟고 다녔을 것이다.
소들이 길을 막아 차가 지나갈 수 없어도, 그들이 거리에 표시를 해도 이곳의 사람들은 자기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 탓하지 않는다. 그냥 지나가거나 비키거나 피하면 그만이다. 혹여나 소 때문에 길이 꼬이게 되어도 풀릴 테니 노프로블럼이다.
그들을 보면서 여행자로서의 태도를 배운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 한국에선 이랬는데, 여기선 그랬는 데를 벗어나게 하고 작은 일에 길길이 날뛰지 않는 것. 인도에 올 생각을 했다면 살았던 곳에서 겪었던 것과 비교하는 것을 멈추고, 내려놓고 받아들이는 편이 좋다. 위생이니 뭐니 따지고 비교한다면 그 여행은 즐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하다면 인도에 오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여기선 맨발로 다니는 서양인들도 많다. 나도 웬만큼 수용하는 편이지만 더 자유롭고 또 다른 경험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한국에서의 빠른 인터넷, 편리함, 정돈되고 깨끗한 것에서 벗어나 한국의 80년대에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지금이 나는 더 좋다. 이 지저분하고 어지럽혀진 이곳이 더 편하게 느껴진다. 이 너머엔 분명 나를 더 선명하게 채워주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조금씩 받아들이고 그 시선에 낯섦과 경계심을 풀면 인도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에게만 하듯 새로운 이야기를 속삭여준다. 그 이야기를 만나게 되면 인도는 더럽고 혼란스럽기만 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땐 모든 것들이 갖춰지다 못해 차고 넘쳐서 너무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도시에 살았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텅 비어 있었다. 돈으로도 채워지지 않고 물건을 가져도 똑같았다. 캐리어 하나에 나의 물건을 담아 한달째 생활해도 나는 매일 웃고 행복해한다. 여기에선 아침에 눈 뜨는 것부터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도시에 차고 널린 것들이 나에게는 필요 없었던 것들이었다. 나에겐 길을 걸어가는 동물들이, 푸른 잎들이, 맑은 하늘과 밤이면 차오르는 달을 보는 것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적게 가진 것으로 행복을 느끼게 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채워지는 무언가를 느낀다. 인도엔 분명 나를 다시 오게 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인도에 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