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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ae Mar 19. 2024

이거 아무래도 사랑이지

그리곤 장난스레 웃는 우리

갑자기, 그것도 아주 오랜만에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그런데 집에 있던 미술도구를 다 처분한 지 오래되어 남아있는 붓도 없어서 다이소에서 유화물감과 붓 캔버스 스케치북을 샀다. 오랜만에 잡는 붓이 어색했고 당연히 성에 차지 않는 그림이 나왔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나래가 오랜만에 그린 그림이라 의미가 있다며 그림을 가지고 싶어 했다.


나는 잔디밭에 핀 작은 풀꽃과 푸른 바다에서 보았던 윤슬을 그렸다. 내가 그저 좋아하는 것, 떠오르는 것을 그렸을 뿐인데 언니는 봄과 여름이라며 계절을 떠올렸다. 그렇게 사계절로도 그려보라며 나보다 들뜬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그녀가 귀엽다. 유화는 마르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이제야 그림을 건넸다.


나의 그림을 가지고 싶다는 그 이상의 의미로 나는 행복함을 느꼈다. 오랜 시간 동안 길 잃었던 마음과 방치했던 감정들 사이에 피어난 것을 발견해 준 사람. 그리고 그 곁에 머물러주는 사람.


나는 어떤 사람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면 나 스스로 나아가는 사람이 된다. 언니를 만나는 날이면 하루가 빈틈없이 행복하게 채워지고 따스한 글이 쓰인다. 해가 수평으로 내려앉아 거의 눈을 감다시피 하는 시간의 거리를 걸을 때 느껴지는 따스한 햇살이 언니를 떠올리게 한다.


어떤 인연은 무슨 짓을 해도 이어진다고 들었다. 내가 엉망이었을 때 나를 떠나버린 사람은 나 자신을 더 미워하게 만들었고 함께한 시간만큼의 생채기를 긋고 갔다. 그 이후로 나는 좋은 모습, 밝은 표정만 겉으로 꺼냈다. 하지만 언니에게는 못난 모습을 애써 숨기지 않아도 된다. 그저 감싸 안아준다.


나는 언니에게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야, 하고 장난스러운 말을 한다. 그러면 우리는 같이 웃는다. 언니가 나의 언니라서 좋다.


길 잃은 아이에게 머물 수 있는 손을 건네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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