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다섯 번째 일기, 3월 25일
나는 평소에 요리를 잘 하지 않는다. 워낙 요리를 좋아하고 잘 하는 남편이 있다 보니 잘 안 하게 되고, 안 하다 보니 요리를 못하게 되는 악순환이다. 그래도 혼자 살 때보다는 요리하는 데에 재미를 좀 붙이게 됐다. 큰 냉장고에 다양한 재료가 있고 양념도 종류별로. 게다가 난 요즘 그릇과 커트러리 사는 재미에 맛 들려서 플레이팅이 잘 되면 기분이 좋다.
그러던 오늘 남편은 저녁 약속이 있어서 나가고 나는 집에서 저녁을 해 먹었다. 냉장고에 두부가 3개 (2인 가구인데 두부가 왜 3개나 있는 걸까, 유통기한도 짧은데)나 있길래 두부 소진을 위해 두부김치를 만들기로 결정. 포털에서 '백종원 레시피'를 검색한 다음 간장이랑 다진 마늘, 고춧가루와 설탕을 넣고 양념장을 만들었다. 두꺼운 돼지고기는 없지만 차돌박이가 한가득 있길래 커다란 웍에 기름을 두르고 얼어있는 차돌박이를 넣은 다음 야들야들해질 때까지 착착 볶는다. 돼지고기의 붉은 부분이 다 사라질 때쯤 아까 만든 양념장을 넣고 또 볶아준다. 그러다 보면 그럴싸한 음식 냄새가 난다. 나 같은 요리 알못도 먹을만한 반찬을 만들고 있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아진다. 냉장고에 있는 김치를 내가 먹고 싶은 만큼 넣고 또 볶기. 그러다 보면 김치가 고기와 함께 어우러져서 축 늘어지고 아까보다 더 그럴싸한 냄새가 난다. 그다음에는 두부를 썰어서 그릇에 넣기만 하면 된다. 레시피에는 두부를 데쳐서 넣으라고 했지만 나는 생두부를 더 좋아하니 그냥 썰면 된다. 덴비 그릇에 두부를 예쁘게 넣고 웍에서 볶은 차돌박이 김치볶음을 넣은 다음 깨 솔솔 뿌리면 끝.
그다음은 내가 요즘 밀고 있는 리코타 치즈 유자 샐러드를 만든다. 어린잎이 대부분인 샐러드 채소를 찬 물에 씻어서 체에 밭쳐 놓고 물기를 뺀다. 그 사이 오색 방울토마토를 씻어서 절반으로 자른다. 내가 아끼는 이딸라 그릇에 채소와 방울토마토를 넣은 다음 지난여름 이탈리아에서 사 온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두른다. 사실 샐러드에 별다른 드레싱 없이 올리브 오일만 둘러도 꽤 그럴싸하다. 하지만 이 샐러드의 핵심은 유자청. 시중에 파는 유자차용 유자청이어도 충분한데, 티스푼으로 적당히 덜어서 샐러드 위에 올린다. 그리고 리코타 치즈도 적당히 뚝뚝 떼어서 올리면 끝. 비주얼도 그럴싸하고 새콤달콤한 유자청과 어우러지면서 봄의 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딱히 다른 반찬 없이 가벼운 저녁이었다. TV를 보지 않고 밥 먹는 것에 집중했더니 기분이 좋았다. 남편한테도 요리를 좀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