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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May 12. 2019

남의집프로젝트 호스트 후기

처음 만난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색다른 경험

어제 (5월 11일) 무사히 "남의집 호치민" 이벤트를 마쳤다! 


3달 전쯤 하기로 마음먹고 준비했는데도 끝나고 나니 아쉬운 부분이 한가득...

혹시 남의집 프로젝트 호스트를, 특히 해외에서 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기가 시작된 호치민, 폭우 실화냐...

호치민은 약 2주 전쯤부터 본격적으로 우기가 시작됐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 같은 더위 (한낮 기온 38도, 체감 기온 40도 이상)는 지나고 도시가 잠길 것처럼 스콜이 쏟아지는 것이다. 게다가 배수 시설이 잘 되어있지 않은 탓에 도로가 빗물로 찰랑찰랑... 아무리 생각해도 여행하기에 좋은 시기는 아닌 듯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호치민의 스콜
우기에 호치민의 택시는 강이 된 길을 건넌다


나도 여기서 산 지 이제 1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우기가 시작할 때쯤 이사 왔던 탓에 건기가 언제쯤 끝나는지에 대한 감이 없었다. 좀 더 신중하게 생각했더라면 날씨가 좋을 때 게스트들을 초대했을 텐데. 우리 집에 게스트를 초대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도시를 여행하고 즐기는 데에는 날씨도 큰 역할을 하니 말이다. 


연중 기온이 온화하고 비가 잘 내리지 않는 캘리포니아가 아닌 이상 게스트를 초대할 때 날씨를 꼭 고려해야 한다는 점.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이 부분을 놓쳤던 것 같아서 아쉽다. 


하지만 이런 악천후 속에 게스트 분들 모두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순조롭게 남의집을 시작할 수 있었다! (박수)


<참고> 호치민에 방문하기 가장 좋은 때는 12월에서 3월 사이, 비가 오지 않고 날씨는 쾌청하며 찌는 듯한 더위가 시작되기 전이라 도시를 즐기기에 아주 좋다. (대신 성수기라 항공권/숙박비도 비싸진다는 게 함정...)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잘 정리해서 준비를!

남의집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스트의 집 거실에서 나누는 대화 그 자체다. 집이라는 공간이 곧 호스트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곳이기도 하고, 해외인 경우는 여행보다 좀 더 생활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나 같은 경우는 '호치민 생활'이라는 아주 두리뭉실한 주제로 게스트를 받게 되었다. 내가 경험한 것 위주로 이 도시에서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끝나고 나니 뭔가 잘 정리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0부터 100까지 얘기하는 것보다 인상적인 것 몇 가지를 딱 집어서 얘기했어야 하는데, 에피소드를 나열하기만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건 해외생활을 이야기하는 자리면 놓치기 쉬운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게스트들이 무엇을 기대하고 우리 집에 왔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게스트들의 신청 동기를 꼼꼼히 읽고 내 시선에서 말할 수 있는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려고 노력했지만(....) 끝나고 나니 또 그게 아닌 것 같아서 이불킥. 결론은 내 이야기에 엣지가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을... (ㅠㅠ) 


이번 일을 계기로 내가 프리토킹에 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크립트까지는 아니어도 대화 꼭지는 정해져 있는 게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편하다는 점. 


물론 이 자리가 컨퍼런스나 클래스는 아니지만 여행 중에 시간을 내서 우리 집에 와 준 손님들이니 적어도 그 시간이 아깝지는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시각을 위해 부부 공동 호스트도 추천! 

이번 남의집 프로젝트는 호스트로 내 이름만 올렸는데 남편도 같이 올릴 걸 그랬다. 내가 준비한 내용이 끝나고 남편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생리대 만드는 남자'라는 흥미로운 이야기 주제 덕분에 게스트분들 모두 반응이 좋았다. 또 내가 얘기해 줄 수 없는 '호치민 직장인' 이야기도 그렇고. 


한 명이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보다 부부가 같이 이야기를 하니 대화 주제가 풍성해지는 느낌. 처음부터 남편을 호스트로 같이 올리고 어떤 이야기를 할지 같이 논의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또 남는다. 남편이 직장 생활(a.k.a 안정적인 수입을 담당하느라)로 바쁘다고 생각해서 나 혼자 끙끙댔는데 나는 자주 들어서 익숙한 이야기도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울 수 있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 


모든 삶이 그렇겠지만, 특히 해외생활은 각자 처한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 나는 여기서 주부이기도, 혼자 WeWork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내가 관찰하는 것 위주로 생각하는 반면, 남편은 여기서 글로벌 기업을 다니는 직장인이라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베트남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인지 이 나라에서 '퇴준'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남편 덕분에 이번 '남의집호치민'은 '남의집생리대'와 '남의집호치민외노자'가 함께 진행됐다! 

우리 고양이가 말을 할 수 있으면 '남의집호치민집냥이'도 할 수 있었을텐데... 



그 외에도 중간중간 사진을 남기지 못한 거랑 베트남 생활의 핵심, 음식 배달이 예정보다 너무 늦어진 것 (늦어질 거라고 생각해서 일찍 주문했는데도 늦음... 잇츠 베트남)이 또 아쉬움으로 남았다. 예상대로 되지 않는 것 또한 호치민 생활 그 자체이긴 하지만... 


남의집 프로젝트 덕분에 나도 이 도시에서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한동안 이 도시에 파묻혀서 내 일상이 지나갔다면 남의집을 계기로 내가 사는 '호치민'을 잠시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또 해외생활 중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은데 남의집 덕분에 다양한 분야에 있는 분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호스트를 한 번 하고 나니 게스트로 남의집에 가보고 싶다는 열망이 더욱 강하게 든다. 같은 관심사로 모인 사람들끼리, 초면이지만 남의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경험은 여행가는 것만큼 신선하고 설레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남의집 프로젝트, 제게 소중한 경험을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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