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듣던 데스티네이션 웨딩의 하객이 되었다
지난 6월, 나는 아주 특별한 여행을 다녀왔다. 남편의 대학교 친구가 발리에서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한 것. 처음으로 소규모 데스티네이션 웨딩의 하객이 된 경험이었고, 아름다웠던 결혼식과 발리의 풍경을 잊고 싶지 않아 기록 차원에서 글을 남겨본다.
나는 발리가 어디쯤 있는지 이번에야 처음 알았다. '동남아시아니까 가깝겠지?' 했지만 한국에서는 무려 7시간이나 걸리는 먼 여행지였던 것이다. 다행히도 불과 몇 달 전 호치민 - 발리 직항 노선이 생기면서 우리는 편하게 발리행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호치민에서 발리는 4시간으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
비행기 타고 결혼식에 간 적 있었나 생각해보니 예전에도 남편 친구 결혼식 가느라 대만에 간 적이 있었다. 보통 해외에서 결혼을 하는 건 부부의 생활 기반이 해외거나, 혹은 배우자가 외국인이라 다른 나라에서 결혼하는 듯하다. 물론 양쪽에서 모두 결혼식을 하는 경우도 봤었고...! 여하튼 해외 생활을 오래 한 남편 덕분에 결혼식을 해외로도 다녀보는군. 듣기로 이 부부의 생활 기반은 싱가포르지만 결혼식은 발리에서 한다고 한다. 나는 발리를 여행으로도 가 본 적이 없어서 무척 설렜다. 사람들이 그렇게 찬양하는 발리는 어떤 모습이려나?
발리의 첫인상은 느긋함이었다. 지연이 안 되면 이상한 비엣젯 항공편은 우리 예상보다는 덜 늦게 발리에 도착했으나 우리는 공항 입국심사대에서 1시간, 배고플까봐 면세점에서 주전부리 사는 데 20분, 환전하고 유심 찾는데 20분 가까이 보냈다. 공항에서 만난 모든 스태프들이 주토피아의 나무늘보를 보는 듯한 기분... 마지막 세관 신고서 걷는 사람까지 천천히 우리의 세관 신고서를 살펴보고 나서야 우리는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만세!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악명 높은 발리의 교통체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공항에서 결혼식이 진행되는 리조트까지의 거리는 40km가 안되는데 우리는 2시간 가까이 걸려서 그 리조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 내 예상과는 다르게 도로가 넓지 않고 반면에 차는 엄청나게 많아서 가다 서다를 반복. 그 덕에 발리의 주변 풍경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내가 살던 호치민보다 하늘이 더 파랗고 나무는 더 짙은 초록색인 느낌이다.
세상에, 다른 차원으로 넘어온 것 같아요!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지나 리조트 정문에 도착한 순간 나는 마치 다른 세계로 텔레포트한 기분이었다. 아름다운 조경, 조용한 분위기, 게다가 리조트 바로 앞에 시원한 파도소리를 내는 바다까지. 베트남 시간으로 새벽 5시에 일어나 부스스한 상태로 이 근사한 리조트에 도착한 게 민망할 정도였다. (....) 발리 시간은 이미 오후 3시가 넘은 상황이라 오후 시간에 뭔가 활동을 하기는 어렵고, 우리는 천천히 짐을 풀고 신부 가족, 친구들과 함께하는 저녁식사 모임에 참석하기로 했다.
이미 우리의 정보가 웨딩 게스트로 등록돼 있어서 체크인도 아주 순조로웠다. 버기카를 타고 우리가 묵을 방에 들어서자마자 감탄! 우리만 쓸 수 있는 작은 수영장에 파도소리가 시원하게 들리는 오션뷰, 널찍한 욕조까지... 내가 이제까지 여행으로 간 숙소 중 아마 가장 넓고 바다와 가까운 곳일 듯.
대강 짐을 정리하고 우리는 신부 가족들이 머무는 빌라로 향했다. 정말 가까운 사람들만 모인다는 게 실감 날 정도로 빌라 내, 외부에 있는 테이블 몇 개에 둘러앉아 편하게 이야기하면서 저녁을 먹을 수 있는 분위기! 알고 보니 이 결혼식에 참석하는 사람이 다해서 100명이 안된다고 했다. 보통 한국의 웨딩홀에서 하객 최소 보증인원이 200명인 걸 감안하면 작은 결혼식인 것.
그 덕분에 나는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처음 만났는데도 정말 편안한 느낌이었다. 만약 내 친구의 결혼식이었다면 색다른 곳에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더 반갑지 않았을까. 이런 감정을 온전히 느꼈을 남편이 부러운 순간이었다.
그다음 날은 대망의 결혼식 당일. 그때 발리 날씨는 덥지 않아 선선했고 따뜻한 라떼 한 잔을 들고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기에 적당했다. 야외 웨딩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날씨'인데 이 날은 결혼식에 딱 맞는 그런 날이었다. 햇빛은 따뜻하고 공기는 선선한 그런 날씨!
바다를 배경으로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늦은 오후, 리조트 곳곳에서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 곳이 어떻게 결혼식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나 궁금하던 찰나... 전문가들의 손길은 역시 남달랐다. 발리의 푸른 바다와 짙은 녹음에 어울리는 웨딩 베뉴 탄생! 식사를 하는 공간에는 자리마다 참석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사진이 놓여있었는데, 내 추측으로는 그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 중 가장 오래된 것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결혼식 당일까지 만나지 못했던 내 사진은 남편과 찍은 결혼식 사진이었던 것으로. (센스 만점!!) 이런 소소한 곳에서 웨딩플래너가 아닌 신랑 신부의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결혼식은 바닷가와 가까운 잔디밭에서 진행됐다. 하객이 많지 않고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해서 그런지 마이크를 잡은 사람들이 하는 말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시간에 따라 붉은 노을로 하늘이 물드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또 하나의 포인트! 야외 결혼식을 가 본 적은 있지만 바다를 배경으로 한 건 처음이라 느낌이 색달랐다. 파도소리가 BGM으로, 바다가 배경인 결혼식이라니... 그야말로 영화 같은 결혼식 장면이다.
이런 결혼식은 처음이라
해가 저물어갈 때쯤 식사와 함께 피로연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가벼운 식사를 하면서 양가 부모님이 마이크를 잡고 축사를 하시다가 점점 분위기는 달아올라 그야말로 파티가 됐다! 현장 분위기를 글에 온전히 담을 수 없어서 아쉬울 따름인데... 신랑 신부 가족과 친구들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축제 분위기! 강남스타일에 맞춰서 춤을 추고, 모든 하객들이 어깨에 손을 얹어서 기차놀이까지 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여기 결혼식장 맞나요...? 순간 클럽인 줄...!!
*이미지/설명 출처: https://www.sg/en/ICON/Icons/yumseng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싱가포르 결혼식의 건배 문화였다. 이걸 얌셍 (스펠링이 Yam Seng 인지 Yum Seng 인지 헷갈리지만 여하튼...)이라고 부르는데 시작하면 엄청 길게 얌~~~~셍 을 외치는 것이다. 총 3번을 외치고, 첫 번째는 결혼을 축복하고 두 번째는 부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한 것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세한 건 유튜브 영상 참고!) 이 구호가 길면 길 수록 부부가 행복해진다고 하니 하객 모두 최선을 다해(!!) 얌셍을 외쳤다. 그리고 다들 그만큼 술도 많이 마셨다...
이번 결혼식은 여러모로 나의 일반적인 경험과는 달랐다. 분명 나도 결혼식의 주인공인 적 있었고 사회생활하는 동안 셀 수 없는 결혼식을 참석한 '프로 하객'인데 발리까지 오는 것도, 양가 하객이 다 합쳐서 100명 안 되는 결혼식을 오는 것도, 늦은 오후부터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결혼식에 머물러 본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한국에서 차분하고 정적인 결혼식을 주로 보다가 모든 사람이 일어나서 춤을 추는 파티 분위기의 결혼식도 색달랐고...! 처음에는 쭈뼛쭈뼛했지만 어느새 나도 흥겨운 분위기에 취해서 같이 손뼉 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의 자세
보통 한국에서는 결혼식이 워낙 짧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기 때문에 부부 동반으로 가서 얼굴을 비추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미션 그 이상을 생각하기가 쉽지 않았던 듯하다. 적당한 옷을 챙겨 입고, 결혼식장에 도착해 방명록에 이름을 쓰고 축의금 내고, 신랑 신부와 인사 나누고 사진 찍고 식사하고 나오는 일련의 프로세스. 이게 그간 내가 하객으로써 갖춰 온 예의이자 기본적인 자세였다.
하지만 이번 결혼식은 조금 달랐다. 내가 준비할 것은 나의 시간, 그리고 그 순간을 충분히 즐기는 마음가짐이 전부였다. 입구에 방명록이나 축의금 받아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얼굴 도장'만 찍고 나가는 개념이 성립되는 장소는 더더욱 아니다.
그리고 데스티네이션 웨딩은 하객인 나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결혼식 덕분에 이렇게 멋진 곳에 와 본다는 것도 좋았지만 결혼식의 주인공인 부부의 행복함이 아주 가까이서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또 이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신랑 신부와 가까운 사람들이니만큼 그들의 즐거움, 기쁨도 함께 더해져 내게도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이 날 아름다운 곳에서 결혼한 Julie 부부가 앞으로도 늘 행복하길 바랍니다 :)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마침 타이밍이...)
내가 참석했던 이 결혼식의 주인공인 Julie가 앞으로 브런치에 결혼식에 대한 글을 남긴다고 한다. 나도 무엇이 그들을 발리로 이끌었는지, 어떻게 준비했는지 궁금하던 차였다. 데스티네이션 웨딩을 준비한 부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Julie의 브런치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