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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Oct 01. 2019

비가 오지 않아도 홍수가 났다

점점 가라앉는 도시, 호치민

지난 토요일 (9월 28일) 오후, 차를 타고 도로를 지나는데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살짝 물이 고여있길래 근처에 누가 물을 쏟았나? 아니면 상하수도관이 터졌나 싶었다.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나는 멋모르고 그랩 바이크를 타고 늘 가던 길을 달리던 중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오늘 비 안 내렸는데 이렇게 물이 찬다고? 


물 위를 달리는 오토바이들... 이것이 수륙양용인가


우기의 호치민에 길이 잠기는 건 아주 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도 폭우가 쏟아진 다음 배수 시설이 좋지 않은 탓에 물이 안 빠져서 길이 잠기는 것이지 하늘은 멀쩡한데 땅에서 물이 차 오르는 건 일 년 넘게 산 내 눈에는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나만 처음인가 싶었는데 내 주변에 베트남 친구들도 이렇게 심한 건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다. 


하늘은 쨍쩅한데 물이 차오른 모습, 그리고 도로는 마비되었다


대체 왜 비도 안 왔는데 길은 강물이 된 것일까


과학시간에 배운 걸 잠시 떠올려봅시다
한국천문연구원 홈페이지에서 달의 위상까지 검색함


우리 모두 알다시피 달은 지구 주위를 공전한다. 그 주기는 대략 한 달이고, 우리에게 익숙한 음력 달력은 달의 위상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 토요일은 그믐달 하루 전. 그러니까 태양과 달, 지구가 거의 일직선에 위치하는 날이다. 달이 다시 반 바퀴를 돌아서 지구에 보름달이 뜨는 날도 태양, 달, 지구가 일직선에 위치하게 된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도 찾아보았다

간단히 말하면 그믐달, 보름달이 뜰 때는 태양과 달이 같은 방향에서 잡아당겨서 그 영향으로 물이 쉽게 범람하는 것이다. 하지만 난 밀물/썰물을 바다에서만 볼 수 있는 줄 알았다... (무식)


만조/간조는 호치민만 생기는데 아닌데? 
이제는 만조와 간조 시간을 체크해보자...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게 원데이 투데이도 아닌데 왜 호치민에서 유독 이렇게 홍수가 나는 걸까. 찾아보니 남부 중심지역의 60% 이상은 고도가 1.6m 미만, 그런데 만조 때는 수면이 1.7m 정도 된다고 하니 자연히 도시에 물이 차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많은 지역은 해수면보다 50cm 정도 낮고, 지하수가 고갈되면서 점점 가라앉는다고. 거기에 현재 관개 시설이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한 데다가 홍수 방지 대책이 세워지지 않아 이 시설을 확장할 수도 없다. 이 와중에 기후 변화로 폭우는 더욱 거세지고 만조 높이는 올라가고 있다. 여기에 현재 호치민의 많은 지역이 공사 중인 것도 영향이 있을 거라고. (한숨) 


호치민 시에는 수백 개의 침수 지역이 있는데 이 중 14~28%는 만조의 영향을 받고, 50~68%는 폭우로 침수되는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우리 집 앞이 만조로 침수되는 곳이었다니...  


보도블럭 있는 곳이었는데 경계가 사라짐

생각해보니 우기에 비가 내리는 것도 원데이 투데이가 아닌데 여전히 호치민의 도로는 물에 잠긴다. 호치민에서도 문제는 인지해서 홍수 예방 사업을 대대적으로 한다고는 했지만 이게 단기간에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기상 예보로는 오늘이나 내일까지 달의 영향(!)으로 수면이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과학 시간에 들을 때는 이게 바다에서만 일어나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제로 내 무릎 가까이 차오르는 물을 보니 무섭기까지 했다. 각종 언론사에 올라온 사진을 보니 오토바이가 완전히 잠기거나 사람 허리까지 물이 차오른 곳도 있었다. (이 물이 깨끗한 물도 아니고....) 


도로가 완전히 마비되는 광경을 보고 나니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깨달았다. 몇 천년 전 인류 문명은 강의 범람을 조절하면서 시작했다는데 첨단 과학 기술이 발전한 지금, 그믐달이 뜨는 날이면 도시는 물에 잠겨서 멈춰버린다. 


슬프게도 모든 게 다 인간 때문이다. 해수면이 올라가는 것도, 지하수를 너무 많이 뽑아서 땅이 가라앉는 것도. 과연 이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이 주제와 관련된 몇 가지 TMI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가라앉는 도시는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 (1년에 0.2 ~ 0.4인치) 

지난 25년 간 호치민은 50cm 넘게 가라앉음 

1990년 이전까지 호치민은 범람한 적이 없었다고... (핵심 원인은 기후 변화, 도시화, 만조) 

2018년 완공을 목표로 사이공강 주변에 제방을 건설할 계획이었으나 진행상황은 말잇못.

어제 한강도 급격히 수위가 올라서 반포한강지구에서 119에 신고한 사람이 있었음(... 이번 그믐달이 뭔가 초강력 파워를 뿜는 것인가?) 

원래 만조/간조는 보통 하루 2번씩 있고 그믐/보름일 때 그 차가 더욱 커짐

우리는 이 모든 걸 초등학교 때 배운다 (...난 문과라서 잘 모른다고 뻔뻔하게 드립쳤는데 의무교육과정에 있습니다.) 


References

Jakarta, the fastest-sinking city in the world, Ho Chi Minh city ranked among top 5

With high tide peaking, Saigon braces for heavy flooding

호치민시 70%, 만조 홍수로 물에 잠겨

상습침수 호치민, 홍수예방사업 지연돼 긴장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이유 (한국교육학술정보원)

한국 월별 천문현상 (일출/일몰, 월출/월몰, 달의 위상 등 확인 - 한국천문연구원)

호치민 기상 예보 (일출/일몰, 만조/간조 등 확인)

9월 30일 반포한강지구에서 한강이 차오른 모습 (출처: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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