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앨리스 May 04. 2020

프리랜서는 처음이라

나도 회사 다닐 때는 프리랜서가 꿈이었다

대학 졸업 이후 내 손으로 돈을 버는 지금까지 약 10년 간 '무소속'이었던 적은 없었다. 내가 베트남에 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좀이 쑤셔 견딜 수 없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고 다행히 이전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분들과 연이 닿아 프리랜서로 업무를 할 수 있게 됐다.  


프리랜서, 디지털 노마드, 리모트 워크... 요즘 힙한 그거 있잖아
상상 속 디지털 노마드 in 발리 (누가 봐도 컨셉사진)

처음에는 내가 말로만 듣던 프리랜서, 그것도 해외에서 원격 근무한다는 사실에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 뿌듯했다. 내가 원래 하던 일이고 회사 밖에서 하니까 더 잘 되겠지! 이름에서 느껴지는 자유(free)를 상상하며 푸른 하늘 야자수 나무 아래 사과 로고 있는 랩탑 하나 펼쳐 놓고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면서 일하는 모습을 그렸었다. 출퇴근 없이 내가 일 하고 싶을 때 하고, 쉴 때는 푹 쉴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답답한 사무실도 없다. 드디어 내가 상사 눈치 봐가며 일할 필요 없고 당당하게 나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냐며. 요즘 각광받는 그 뭐더냐, 디지털 노마드! 크으, 드디어 나도 이제 힙한 타이틀을 달아보는구나! 


현실은 방구석 노동자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 나는 예상치 못한 현실을 마주했다. 나를 포장해 줄 회사 이름과 직급, 팀플을 함께 할 동료 없이 오롯이 나 혼자 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행히 갑을 관계나 고용 불안정성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지만 내가 한 일의 퀄리티가 그 돈 값을 하는가에 대한 자괴감, 이게 완성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메시지는 이렇게 전달하면 되는 건가,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가 이것뿐인가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들어서 괴로웠다. 아무 데도 물어볼 곳 없는 상황, 과연 나는 프로페셔널하다고 말할 수 있나?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초보 프리랜서에게는 내가 상상했던 시간의 자유가 없었다. 어떤 일은 내가 베트남에 살고 있다는 것 하나로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일 생각하다 하루가 다 지나고, 또 다른 일은 내가 예상한 리듬대로 진행되지 않아 어렵기도 했다. 업무 시간과 장소를 분리하려고 부단히 노력해도 내 머릿속은 그렇지 못해서 며칠 만에 번 아웃되거나, 마감을 앞두고도 집중력이 떨어져서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회사 다니면서 입버릇처럼 말했던 '나 프리랜서 하고 싶어'라는 말을 다시 주워 담고 싶을 정도로 초보 프리랜서 생활은 절대 내 환상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나의 첫 종소세 신고
저 어디로 가야 하나요....

프리랜서는 일 뿐만 아니라 자잘한 거 하나부터 열까지 다 혼자서 해야 하는구나 깨달았던 건 작년 5월 종소세(종합소득세) 신고 때였다. 회사 다닐 때는 연말정산을 무려 외부 업체 통해서 했기 때문에 소득 데이터는 자동으로 다 채워지고,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에서 다운로드한 pdf 파일 업로드하고 내가 추가로 제출할 서류만 잘 챙겨놓으면 된다. 


그런데 종합소득세 신고는 첫 페이지부터 입구를 못찾고 헤맸다. 어떻게 간신히 (검색 100번함) 내게 맞는 신고서 작성 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채워야 할 입력 필드가 화면 가득 빼곡해서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에 단어 하나하나 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게다가 나는 재작년에 직장 생활하다가 프리랜서 소득이 생긴 것, 월세 소득공제 경정청구까지 하느라 눈이 빠지는 줄 알았다. 주변에 종소세 신고해 본 적 있는 사람도 없어서 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계속 초록 창에 단어를 바꿔가며 검색하는 수밖에.


덧붙여 나는 해외에서 종소세 신고를 하느라 공인인증서가 만료된 지 모르고 인증서 재발급부터 다시 시작하는 바람에 꼬박 열흘을 투자한 다음에야 적당히 데이터를 채워 넣어 세금 신고를 마칠 수 있었다. (아직도 그게 정확하게 넣은 건지 모르겠고 시스템에서 에러 메시지 안 뱉어내는 정도로만 입력함) 그 덕에 몇 달 뒤 꽤 많은 돈을 환급받을 수 있었지만...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현명하다. 그게 시간이 최고의 자산인 프리랜서에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괜히 전문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누구나 혼자 일해야 할 때가 온다
소속 정보 없는 내 명함

나는 성인이라면 잠깐이라도 독립해서 혼자 살아 본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야 이 세상이 굴러가는 걸 제대로 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혼자 월세 계약도 해보고, 전세대출 신청서도 써보고, 확정일자 받으러 동사무소도 가보고, 집에 살림 채워 넣다 보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지 그리고 이 세상에 저절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마찬가지로 회사가 아니라 혼자 일하면서 나는 나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일이야 혼자 하든 회사에서 하든 똑같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소속이 없는 프리랜서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을 아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을 가려내고 번 아웃되지 않도록 완급조절을 하면서 일할 줄 알아야 하고, 내가 약속한 시간은 반드시 지켜야하며 회사에서 주는 연봉 통보 대신 내 노동력의 가치를 스스로 매길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남들에게 명확하게 설명하고 새로운 계약을 수주할 수 있는 영업력까지 있으면 금상첨화. 누가 나를 생각해가며 일을 주는 게 아니니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오롯이 나 혼자의 역할이 된다. 


나는 코로나 19 전에도 직장인으로서의 삶은 인생에 길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회사에 소속된 삶은 더욱 짧아질 것이고 100세 시대, 어느 순간에는 나 혼자의 힘으로 돈을 벌어야 할 때가 온다. 그 시기가 언제가 됐든, 짧게라도 혼자 일하는 경험은 삶을 살아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아, 또 5월이다. 홈택스에 세금 신고하러 가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베트남 재택근무자의 일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