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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Apr 17. 2020

베트남 재택근무자의 일상

동료가 생긴 지 4주째

나는 원래 재택근무자다. 이전에 브런치 쓴 것처럼 작은 방에 내 모니터와 노트북을 두고 작업을 해 왔다. 내 작업실로 코워킹 스페이스, 카페를 거쳐 집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전망이 아름다운 사무실(엄청 추움)과 멋진 인테리어의 공용공간(시끄러움)


너무 추워서 위워크 생활 그만둠

내가 계약했던 위워크 사무실은 남편 사무실과 같은 건물이라 교통비를 절약하고 오픈 프로모션으로 꽤 저렴하게 머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쉐어하는 곳이라 불편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중앙냉방 시스템이 너무 별로였다. 


밖은 일 년 내내 여름 날씨지만 사무실은 에어컨을 풀가동하는지 후드를 안 챙겨 오면 일하기도 힘들고 소리도 시끄러웠다. 있어 보이는 공용 공간도 테이블 사커 치는 소리 때문에 에어컨 바람을 피해서 앉아있기엔 적합하지 않아서 나는 일부러 다른 층에 가서 일을 하곤 했다. 게다가 커피가 무제한!이라고 했지만 커피가 너무 맛이 없었음. (노 메리트)


위워크 건물도 호치민 도심과는 가깝지만 그 지역 자체는 로컬 커뮤니티 기반이라 외국인인 내가 점심시간에 돌아다니면서 밥 먹을 곳이 마땅히 없었다는 것도 단점이었다. 지금 호치민에는 위워크 지점이 2개 더 생겼는데 모두 도심 한가운데 있어서 그 점에서는 내가 갔던 곳보다는 좀 더 나을 듯하다. (하지만 코로나 끝나기 전에는 아무도 못 갈듯...) 


카페에서 일하다 거북목을 얻음

호치민에는 좋은 카페가 정말 많다. 커피 맛 괜찮고, 가격 저렴하고, 인테리어도 나쁘지 않다. (카페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브런치북 발간!) 디지털 노마드는 카페에서 일해야 제맛이지! 


하지만 일에 집중할 수 있을 만큼 조용하면서 책상 높이 적당하고 와이파이 빠른 곳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노력 끝에 몇 군데 적합한 곳을 찾아도 일단 보안이 문제였다. 혼자 일하다 보니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려고 하면 노트북은 카페 직원에게 봐 달라고 신신당부하고 (그리고 나는 모든 작업물을 클라우드에 저장해둔다) 지갑과 핸드폰은 꼭 챙겨서 움직였다. 그리고 모니터 없이 작은 노트북 화면만 들여다봐야 하니 자세가 무너지고 어깨 통증을 얻게 됐다. 거북목은 덤.


재택근무 방해꾼


역시 집이 최고다

그래서 원래 남편이 독점했던 2인용 책상을 공용 책상으로 재편하고 나의 업무 공간을 만들었다. 큼지막한 모니터에 노트북 받침대를 책상 위에 두고, 의자 밑에는 발 받침대까지 놓았더니 내 어깨가 한결 편안해졌다. 가장 큰 장점은 내 집이기 때문에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반대로 내 집이기 때문에 업무 효율의 가장 큰 적은 나의 게으름이었다. (가끔은 고양이..)


몇 달간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내가 재택근무자로 살면서 터득한 노하우가 있다. 


업무 시간을 분리한다.


이번 코로나 19 사태로 많은 분들이 재택근무하면서 짚어낸 것이기도 하지만, 집에서 일할 때 가장 힘든 건 출근과 퇴근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내가 고안해 낸 방법은 나만의 출근시간을 정하는 것이었다. 


코로나 19가 터지기 전, 난 보통 오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했다. 요가 수업을 들으러 가거나, 그냥 쉬거나, 아니면 친구 만나서 수다 떨고 밥 먹고 등등. 그리고 점심시간 이후 커피와 함께 일을 시작했고 저녁시간 전까지는 방에 들어가서 해야 할 일을 처리했다. 


하지만 최근 호치민은 4월 1일부터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마트, 병원, 주유소 등 필수 시설을 제외하고 모든 상업시설이 다 닫힌 상태라 밖에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만의 업무 시작 의식을 갖기로 했는데, 내가 찾아낸 방법은 옷을 단정히 입고 커피 한 잔 하는 것이었다. 회사 다닐 때도 출근하면 가방 놓고 바로 카페 가서 아메리카노 한 잔 했는데 그 루틴의 홈 버전인 거다. 


이 과정을 통해 내 뇌가 일상과 업무를 분리하도록 만들었다. 나중에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던 때처럼 그 시간만 되면 업무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킬 수 있도록. 


업무 공간을 분리한다.


재택근무의 최대 장점은 통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업무 효율을 위해서는 적어도 생활공간과 업무 공간은 분리하는 게 좋다. 앞서 이야기한 시간을 분리하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인데 업무 공간을 정하지 않으면 집에 있어도 쉬는 느낌이 안 나고 일을 해도 집중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 


4주 전, 남편이 나의 재택근무 동료로 합류하면서 (회사에서 재택근무 지시가 내려와서 5월 1일 전까지는 재택근무를 해야 한다) 나의 작업실이 공동 작업실로 바뀌었다. 나는 보통 일하는 시간에만 작은 방에 들어가는 반면, 남편은 여가 시간도 보통 작은 방에서 보냈는데 (게임하느라) 이 재택근무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게임을 해도 일하는 것 같다고 피곤함을 호소했다. (ㅠㅠ)


재택근무 동료가 생긴 기분


이전에는 재택근무하면 집에서 혼자 일하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아마 코로나 19 이후에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재택근무 동료가 생겼을 것이다. 


좋은 건 일단 심심하지 않고 (....) 이전보다 좀 더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혼자 일하다 보면 자꾸 딴짓하거나 집중력 떨어져서 돌아다니게 되는데 둘이 있다 보니 정말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처럼 아주 조금은 신경 쓰면서 일할 수 있다는 거. 평일 점심에 혼밥 안 해도 된다는 것 또한 장점이다! (외식은 못하지만 배달은 가능) 


하지만 우리 집은 침실 빼고 작업 공간이 딱 방 1개뿐이라 회의 공간이 마땅치 않다. 남편은 컨퍼런스콜을 많이 하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나는 노트북을 들고 식탁으로 간다. 어떤 날은 내내 방 밖에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아마 이제 본격 재택근무 시대가 열리면 면적은 좁아도 공간이 잘 분리된 집이 인기가 더 많지 않을까? (나는 요즘 농담 삼아 방이 하나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재택근무를 시작한 후 남편의 변화


나는 원래 재택근무자였으니 별 차이가 없지만 하루 9시간 이상을 집 밖에서 보내던 남편은 생활이 크게 바뀌었다. 먼저 월요병 증상이 현저하게 줄었다. 원래는 일요일 밤에 드라마 볼 때쯤부터 스트레스받아했는데 출퇴근을 안 해도 돼서 그런지 주말이 평온해졌다. 그리고 출퇴근할 때마다 그랩(택시) 제대로 안 잡혀서 + 길 막히는데서 오는 스트레스도 자동 삭제. 


내가 보기에 남편은 연구원 스타일이라서 집중해야 할 때는 조용히 일만 하고 싶어 하는 스타일이다. (반대로 나는 한 가지 일을 집중력 있게 하는 것보다 멀티태스킹이 조금 더 수월) 집에서 일하는 덕분에 이어폰 없이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업무 모드 on/off 조절이 쉬워진 느낌이다. 귀 건강 지키는 것도 하나의 포인트!  


또 남편이 만족하는 건 점심시간에 오롯이 본인이 원하는 메뉴를 선택해서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요즘 베트남에서는 호텔 음식도 따끈하게 배달되기 때문에 집 안에 앉아서 내가 원하는 걸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게다가 네스프레소까지 들여서 카페 못지않은 커피도 마실 수 있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언급했던 것처럼 만나서 할 얘기를 이메일, 전화, 메신저 등으로 소화해야 하니 커뮤니케이션 리소스는 많이 든다고 한다. 살이 찌는 것 또한 전 세계 공통.... 




이 생활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천상 집돌이인 남편도 재택근무 한 달 넘어가니 답답하다고 하고, 나는 요일/날짜 감각을 잃었다. 하지만 나는 재택근무를 해도 업무 효율에 크게 문제가 없는 직종이라면 방 하나만 더 생긴다면(!) 이렇게 재택근무하면서 지내고 필요할 때만 만나서 회의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출퇴근하면서 생기는 환경오염도 줄고, 직주근접이라는 가치에 엄청난 비용을 쏟지 않아도 되니 부동산 가격도 안정될 테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니 사회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재택근무의 시대가 와 버린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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