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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Nov 28. 2019

주부와 프리랜서 겸직 중

하루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살림하는 여자의 삶


어떤 그룹에도 속하지 못하는 나


나는 베트남에 온 뒤로 그 어느 집단에도 온전히 속하기 힘들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나는 여기 직장이 있는 게 아니고, 그렇다고 학생도 아님.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없고 대신 고양이를 키운다. 그렇다고 온전히 주부로 지내고 있냐고 하면 100% 그렇지도 않고 하루의 절반 정도는 일을 한다. 그 일은 베트남에서 하는 개인 사업은 아니고 노트북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 특히 내가 하는 일은 한마디로 정의하기도 힘들어서 구구절절 설명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내가 하는 일은 여기에 자세히 써두었음)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라 그런지 여기서 만나는 한국 사람들 대부분과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쉽지 않다. 


주부로서의 나
남편 일 때문에 오게 됐어요.


집밥 앨선생 (닭갈비-콩나물밥-닭칼국수)


베트남에 오면서 내가 가장 먼저 부여받은 타이틀이다. 2010년 사회생활 시작한 이후로 단 하루도 경제활동을 쉰 적 없는 내가, 8년 만에 무직이 됐다.


처음에는 출근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 반, 이렇게 경단녀가 되는 건가 싶은 두려운 마음 반이었다. 하지만 오롯이 주부로만 지내려니 본격적인 해외 생활 시작도 하기 전에 우울증 걸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남편한테 직접적으로 말한 적 없지만... 남편은 앞으로 승진하고 시간 더 지나면 이직도 할 텐데 나만 뒤처지는 거 아닌가, 멀쩡히 잘 다니던 좋은 회사 그만두고 여기까지 와서 뭐 하는 걸까, (이러면 안 되지만) 다음 내가 할 일은 육아밖에 없는 건가 싶은 것들. 내가 선택한 거지만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보면서 엉엉 울었던 게 나도 비슷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가사노동,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일이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치열하게 일하면서 커리어 쌓아나가는 내가 그리웠다. 


가장 답답한 건 돈을 쓸 때였다. 처음에는 통장에 든 돈을 내가 벌지 못했다는 생각에 나를 위한 물건을 사는 것, 내가 먹고 쓰는 것 또한 망설였다. 그러면서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고 대부분의 의사결정에 나의 행복감보다는 돈이 앞섰으며, 그렇게 나는 시들시들해지다가 어떤 계기로 마음을 바꾸고 지금은 한국에서 일할 때와 다르지 않게 나를 위한 소비를 한다. 


나는 이 과정에서 결혼 후 여성의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한국에서는 회사 다니느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전업주부의 삶 말이다. 특히 내가 사는 이 도시에는 남편 일 때문에 회사 그만두고 온 기혼 여성이 엄청 많은데 과연 나를 포함한 이들의 삶이 하루 종일 메이드 쓰고 오전에 브런치 먹고 쇼핑 다니는 게 전부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 있을까? 집안일이라는 게 청소, 빨래, 설거지로만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특히 해외 생활하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고려해야 할 게 엄청나게 많다. 집안에 뭐 하나 고장 나서 고치는 것도 여기에서는 얼마나 신경 쓸 게 많은지. 


가끔 브런치에서 양성 평등을 주장하면서(?) 전업주부를 폄하하는 사람들의 댓글을 종종 봤는데 결혼 후의 자산은 당연히 부부가 함께 기여한 것이다. 한 명이 나가서 일하는 동안 집안일은 저절로 굴러가는 게 아니고, 냉장고에 물 채워 넣는 것까지도 누군가가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다. 특히 육아까지 하고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초과근무'상태라고 본다. 그럼에도, '내가 일하는 동안 팔자 좋게(?) 커피나 먹고 있네'라는 생각이 든다면... 결혼하지 않으면 그런 생각도 안 들 텐데 왜 결혼했냐고 묻고 싶다. 아, 설마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데 남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거라면 제발 남한테 신경 끄시길.


프리랜서로서의 나


나의 작업실 (대체로 고양이가 먼저 자리를 차지함)

처음에는 재밌어서 일을 시작했다. 꼭 돈을 벌지 않아도 나의 텅 빈 시간을 채울 수 있다면 무엇이든 좋겠다는 생각. 다행히 재미로 시작한 일이지만 조금이나마 돈도 벌 수 있고, 회사원이 아닌 내 미래를 고민하게 됐다. 


작게나마 일을 시작하고서 좋은 건, 내가 남편의 플랜 B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 베트남에 와서 힘든 건 더운 날씨도, 말이 잘 안 통하는 것도, 엉망진창인 길을 걷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건 다 극복할 수 있었는데 남편이 회사일로 힘들어할 때 대안이 없다는 결론 자체가 나를 힘들게 했다. 한국에 있을 때 지나가는 말로 '회사 그만둘까?' 하는 말과 지금 남편이 '회사 그만둘까?' 하는 말의 무게감 자체가 달랐다. 


나는 팔자 피려고 결혼한 것도 아니고, 둘이 같이 살면서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게 참 좋았다. 특히 베트남에 오고 나서 더욱 그렇다. 지금 남편이 내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처럼 나도 그의 부담감, 책임감을 조금은 나눠서 들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처럼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대비책도 있는 것이고. (실제로 남편은 전 회사가 문을 닫아서 그만뒀으니... 인생 정말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남편에게 힘들면 그만둬도 괜찮다고 말한다.


간혹 누군가는 남편이 버는 돈 있으니 빡세게 일하지 않아도 되겠네,라고 한다. 물론 내가 한국에서 풀타임으로 회사 다니는 것보다야 적지만 그렇다고 절대 대충 일하지 않는다. (돈 많이 벌고 싶었으면 그냥 한국 돌아가서 회사 다니겠죠....) 회사 다닐 때와 다르게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내가 만들어내는 결과물로 평가받는데 대충 할 수 있을까? 예전보다 더 자신의 능력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스케줄 관리도 더욱 타이트해야 한다.




아마 내가 일을 하기 시작한 건 '나는 다르다'는 걸 끊임없이 증명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남편 따라서 해외생활 한 여자들은 다 내조하면서 살더라 (만인이 부러워한다는 주재원 와이프), 너도 편하게 메이드 부리면서 우아하게 살아라는 말 자체가 듣기 싫었다. 인생에서 가장 바쁘게 살 때라는 30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더 몰두하고, 되는 데까지는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래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아서. 


바다에 뛰어드는 엘사처럼!


이제 저녁시간 됐으니 작업실에서 퇴근해야겠다! 



최근에 읽은 브런치 글 중에 이 글이 정말 인상깊었다. 작가님이 낸 책도 꼭 사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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