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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Nov 06. 2016

보라보라섬에서 삼시세끼

대자연 속에서 식사하기

보라보라섬에서 허니문을 즐기는 동안 우리는 눈코뜰새없이 바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들은 휴양지에서 하루종일 무엇하느냐고 하지만, 보라보라섬에 있는 3일 동안 세 끼 식사만 제대로 챙기려고 해도 바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게으른 커플이지만 이 곳에서의 식사는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Day 1. 



출발한 지 20시간이 지나 우리는 드디어 선베드에 등을 대고 누웠다. 뜨거운 햇빛 아래 얼음 동동 뜬 시원한 물을 마시며 음식과 체크인을 기다렸다. 



리조트에 도착하자마자 먹었던 음식. 체크인은 또 한참 기다리라고 해서 그 사이 아침인지 점심인지 모를 식사를 했다. 한 사람당 메인 1개, 에피타이저 1개를 시킬 수 있었는데 시켜놓고 보니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선베드에 누워서 느긋하게 감자튀김을 먹는 여유로움이란. 그리고 우리 결혼은 12월, 한겨울이라 따뜻한 햇빛 아래 누워있는 것도 좋았다. (물론 1시간 버티지 못하고 그늘로 피신했지만....) 



첫째 날 저녁은 세인트레지스 보라보라의 메인 레스토랑인 라군Lagoon 에서 먹었다. 미슐랭 가이드에 오른 식당으로 알고 있는데, 식전빵부터 디저트까지 모두 정성 가득한 음식이라 먹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다만 플레이팅은 조금 난해한 느낌이었다.


이 레스토랑에서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하는 친구가 있었으니... 바로 도마뱀! 바로 옆 창문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벌레를 잡아먹고 있었다. 처음에는 웨이터를 불러서 도마뱀을 치워달라고 해야하나 싶었지만 남편 말로는 도마뱀이 없으면 벌레가 더 많아진다고 했다. 듣고보니 맞는 말이라 도마뱀을 그냥 두었지만, 아마 그 레스토랑 안에 벌레를 다 잡아먹기에는 역부족이었나보다. 우리는 신혼여행 첫 날 이 레스토랑에서 벌레에 잔뜩 물린 채로 돌아왔다. 


Day 2. 



둘째 날 아침은 일반적인 부페식 조식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옆을 보니 새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다행히(?) 우리 식탁 위의 음식을 훔쳐 먹거나 그렇진 않았지만 가까운 거리에 동물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자연 속에 있다는 게 실감났다. 


이건 둘째날 점심. 아침식사 했던 식당에서 점심 메뉴를 따로 주문하면 된다. 피자와 파스타는 우리가 상상한 비주얼이었지만, 에피타이저로 나왔던 과일은 열국의 느낌 그대로였다. 



낮에는 주로 수영을 했는데 맥주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타히티 섬의 맥주는 히나노Hinano 인데, 고갱의 그림에서 봤던 타히티 여인의 모습이 라벨에 그려져 있다. 이 맥주 라벨모양 기념품은 타히티 섬 곳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저녁은 바닷가 바로 앞에서 먹었다. 허니문 패키지에 포함된 거였는데, 야외에서 식사를 한다는 게 독특했다. 로맨틱한 분위기를 내는 장미 꽃잎과 은은한 무드등,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적도 근처에 있는 섬이니 저녁에도 그다지 춥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게 웬걸,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쯤 바닷바람이 무척 강하게 느껴졌다. 결국 우리는 식사를 마무리 하자마자 서둘러 숙소로 들어갔다. 로맨틱 디너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것으로...


Day 3. 



보라보라섬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우리는 여기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독특한 아침식사를 하자며 카누 조식을 주문했다. 카누로 아침을 싣고 와서 방갈로 안에 있는 식탁에 우리만을 위한 아침식사를 차려주는 것인데 푸른 바다에 흰 카누가 다가오는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리고 더 좋았던 건, 조식을 우리 방갈로에 세팅해 주는 동안 우리는 카누를 타고 방갈로 근처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었다. 속이 비칠 듯 투명하고 고요한 바다 위에 둥실둥실 떠 있는 기분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아마 이 조식의 값어치는 음식보다는 카누 드라이빙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왜냐하면 음식은 평범한 과일과 빵, 주스 뿐이었기 때문이다.) 



카누 조식에 함께 세팅된 꽃은 무려 생화였는데 사진만 찍기 좀 아깝기도 해서 우리가 가져온 올라프 인형에 장식을 해봤다. 폴리네시안 올라프! 



돌이켜 생각해보니 보라보라섬에서의 식사는 말 그대로 '대자연 속에서의 식사'였다. 창문 너머 수풀과 바다가 보이는, 내가 마치 자연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과는 차원이 달랐다. 풀잎이 흔들리는 소리, 짭짤한 바다 내음, 따사로운 햇빛, 눈부시게 빛나는 바다까지 우리 주위를 둘러싼 모든 풍경 또한 이 식사의 일부분이 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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