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레스토랑도 도전해 볼 수 있는 도시
예전부터 나도 '맛있는 음식 먹으러 다니기'에 꽤 관심이 많은 편이었지만, 남편하고 연애하면서 더욱 '음식'에 집중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커플들이 그렇듯이, 연애하는 시간 중 대다수는 '밥 먹기'가 되는데 그 시간을 '맛있는 음식'으로 채운다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나서는 서울 나가기가 귀찮아서 그런지 예전처럼 분위기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빈도는 좀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집에서 요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것처럼 방콕은 미식의 도시이고, 이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우리는 멋진 레스토랑을 간다는 생각에 들떠있었다. 긴 시간 동안 구글과 씨름한 결과, 남편은 요즘 방콕에서 핫하다는 레스토랑 세 곳을 예약했다. 레스토랑 선정은 전적으로 남편에게 맡겼는데, 다녀오고 보니 다 괜찮았던 곳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셋째 날 (2017-05-03)
이전 포스팅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 날은 쿠킹 클래스를 다녀온 날이다. 우리가 쿠킹 클래스에서 4개의 요리를 먹는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터미널 21에서 간식(!)을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하튼,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고 우리가 먹은 음식은 팀호완의 딤섬이었다. 예전에 홍콩 여행 갔을 때 팀호완을 가려다 긴 줄을 보고 포기한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태국에서는 웨이팅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볶음밥과 만두 한 가지가 더 있었다는 사실. 홍콩에서 팀호완을 가보지 못했다면 이 곳에서 들러보는 걸 추천한다. 특히 저 간장에 담겨있는(!) 납작한 만두가 독특하고 맛있었다.
# 팀호완 (Tim Ho Wan)
자세한 위치> https://goo.gl/maps/8UPWCWqv9iF2
남편이 예약한 세 개의 레스토랑 중 하나가 이 날 저녁시간에 잡혀있었다. 빵빵한 배로 쿠킹 클래스를 마무리해 갈 무렵, 도저히 코스 요리를 먹을 자신이 없어서 우리는 예약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온전히 요리를 즐길 수도 없고, 오히려 죄책감만 느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아쉽지만... 이 곳은 다음 기회에 꼭 와봐야겠다. (돌아와서 이것저것 찾아보니 방콕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 중 하나였다.)
# 잇 미 (Eat Me)
자세한 위치> https://goo.gl/maps/9iwqdvFrYUv
쿠킹클래스 이후 우리의 식사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호텔 수영장에서 더위를 식히고 나니 그래도 뭔가 먹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동포동해지는 모습을 보며 조금 죄책감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여행 중이니까. 여행은 참 여러 가지 면에서 면죄부를 주는 것 같다. '이때 아니면 언제 즐기겠어'라는 생각에 평소보다 나에게 더 관대해진다.
마지막 양심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롤 하나와 작은 덮밥 하나를 시켰다. 나는 배가 너무 불러서 롤만 두어 개 먹고 말았다. 차가운 녹차를 끊임없이 마시다 보니 내 몸의 지방도 빠르게 분해되는 듯한 착각을 느낄 수 있었다. (현실은..)
# 카제(Kaze)
자세한 위치> https://goo.gl/maps/cEzGXyiUVQz
넷째 날 (2017-05-04)
지금 생각해보면 넷째 날은 정말 엄청난 날이었다. 무려 코스 요리를 점심/저녁으로 먹은 날이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식당 예약을 전적으로 맡겼더니... 하루는 아주 '먹부림의 날'로 정해버린 것 같다. 다음 여행을 갈 때는 꼭 남편에게 식당을 하루에 하나만 예약하라고 해야겠다.
오전에 조식을 먹고 빈둥거리다가 우리가 향한 곳은 호텔에 있는 식당이었다. 처음에 식당 이름만 들었을 때는 호텔에 있는 곳인 줄 몰랐는데, 택시를 타고 호텔 앞에 당도해서야 '아, 호텔 식당이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메뉴판에 다양한 메뉴가 있었지만, 역시 정하기 어려울 때는 "적당히 알아서" 주는 메뉴가 최고다. 특히 외국에서는 메뉴 이름만 듣고서 전혀 어떤 음식인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베스트 메뉴를 선택하는 게 안전하다.
우리가 주문한 건 점심에 먹을 수 있는 4코스 요리였는데, 어떤 메뉴들은 선택권도 있어서 둘이 가면 메뉴판에 나온 단품 요리를 거의 맛볼 수 있는 정도였다. 가격은 인당 1,600바트(약 52,000원)로 방콕 물가에 비하면 꽤 비싼 편이지만, 우리나라 호텔 레스토랑 가격 생각하면 한 번쯤 용기 내서 먹을 수 있는 정도다. (우리나라 특급호텔에서 코스 요리 먹으려면 10만 원 이상은 각오를 해야....)
메뉴 사진을 찍어오지 않아서 각각 어떤 재료가 들어간 요리 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전체적으로 태국의 독특한 향신료가 강하게 느껴지는 음식이 많았다. 고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호불호가 갈릴 수도... 그렇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태국 요리 외에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요리들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본다.
# 남 (Nahm)
자세한 위치> https://goo.gl/maps/vQEPPMpbj272
점심을 먹자마자 마사지를 받고, 저녁 식당 예약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근처에 있는 카페에 걸어서 가 보기로 했다. 그때만 해도 내내 에어컨 바람맞던 중이라서 10분 정도는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5분쯤 걷고 나서 그 판단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한 블록 정도 가는 길이지만 그늘이 없고 육교를 건너야만 갈 수 있는 길이었다. 그냥 택시 탈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걸어와 버렸기 때문에 택시를 타기에도 애매해졌다. 땀을 뻘뻘 흘리며 간신히 도착한 카페에서는 에어컨 바람이 쌩쌩 나오길 기대했지만... 그곳은 우리 생각만큼 시원하지 않았다.
선풍기 따로 없냐고 물어봐도 없다고 하길래, 우리가 시원한 자리를 찾아 나서야만 했다. 아이스 음료를 들이켜면서 정신을 추스르는데, 대략 20분 정도는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있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멋진 배경을 두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지만... 우리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사진첩을 다시 열어봐도 별로 찍은 게 없네...)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곳이었는데, 위치가 그다지 좋지는 않아서 굳이 찾아갈 만한 곳은 아니라고 본다. 만약 간다면 꼭 택시를 타서 가시길...
# 비터맨 (Bitterman)
자세한 위치> https://goo.gl/maps/42kdN6kJkm52
비터맨에서 더위에 지쳐있다가 예약한 시간보다 좀 더 일찍 다음 장소로 향했다. 더위에 지치기도 했고, 비터맨에 오래 있어도 딱히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행히 예약한 시간보다 일찍 왔는데도 자리가 비어있어서 우리는 바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번에 간 곳에서도 점심에 갔던 남(Nahm)처럼 비슷한 가격에 4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태국 요리라고 했지만, 점심에 갔던 곳보다 향신료가 강하지 않았고 좀 더 모던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태국 요리가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도 편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둘이서 메뉴가 겹치지 않게 주문을 했더니,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요리를 경험할 수 있었다. 새우, 돼지고기, 생선 등 주 재료도 여러 종류였고 소스도 맛이 조금씩 달랐다. 역시 신선한 재료를 빠르게 공수할 수 있는 도시여서 그런가, 재료 본연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남(Nahm)은 점심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 레스토랑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둘이 먹기에 양이 많이 넉넉한 편이었다면 이 곳은 과하지 않게 깔끔하게 식사를 마무리할 수 있는 정도였다.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양 분배를 철저하게 한 느낌이 들었다.
# 레두 (Le Du)
자세한 위치> https://goo.gl/maps/tmkiXHLt4yE2
다섯째 날 (2017-05-05)
우리 방콕 여행의 마지막 날. 비행기 시간이 매우 늦은 저녁이기 때문에 마지막 날이기는 해도 하루를 온전히 쓸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덕분에 삼시세끼를 꽉 채우고 떠날 수 있었다는 점! 그렇지만 호텔에서 멀리 벗어나기는 부담스러워서 호텔 근처를 느긋하게 둘러보다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점심식사를 위해 호텔 근처에 있는 제이에비뉴로 향했다. 며칠 동안 강한 향신료 요리를 먹다 보니 이제는 좀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쇼핑몰에는 유독 일본 음식점이 많았는데, 우리가 묵었던 통로 지역이 재팬 타운이라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점심은 일본식 돈까스 전문점이었는데 남편은 돈까스를, 나는 덮밥을 시켰다.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일본식 요리의 맛이어서 특별히 강렬한 기억은 남지 않았다.
# 메이센 (Maisen)
자세한 위치> https://goo.gl/maps/Z8Rz3pxF6XU2
그다음은 커피 한 잔하러 The Commons 라는 곳을 갔다. 4-5층 정도 되는 건물이었는데, 굉장히 세련된 느낌이었다. 가운데가 뚫려 있는 건물이라 구조도 특이했고, 나무 데크로 된 계단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가 간 곳은 가장 꼭대기 층의 카페였는데, 자리가 꽤 넓고 채광이 좋은 곳이었다. 테이블 위에 잡지가 놓여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메뉴판이었다는 점. 메뉴판 치고는 고퀄리티인데 원하면 가져가도 된다고 해서 우리도 하나 챙겨 왔다.
나는 이 곳의 시그니처 메뉴라고 하는 큐브 라떼를 주문하고, 남편은 아이스티를 시켰다. 커피나 아이스티 모두 우리가 기대했던 정도의 맛이었지만 이 곳의 분위기가 참 좋아서 맛이 더욱 좋게 느껴졌다. 메뉴판을 보니 파스타나 피자 종류도 있었는데, 이미 점심을 먹고 와서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게 조금 아쉬웠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와 봐야겠다.
#로스트 (ROAST)
자세한 위치> https://goo.gl/maps/JKsers8ZWL52
이렇게 꽉 채운 5일간의 방콕 여행은 마무리되었지만 여행이 끝났다. 어딜 가든 우리 부부는 매우 잘(...) 먹고 다니기는 하지만, 이렇게 최선을 다해(!) 삼시세끼를 꽉 채워본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난 다음에는 한동안 밖에서 사 먹기보다 집에서 간단하게 요리를 하면서 차근차근 일상으로 돌아왔다. (물론 남편은 그 사이에 또 방콕 출장을 다녀와서 다시 집밥 먹는 연습을 해야 한다.) 다음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우리의 몸도,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다시 운동을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