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일기, 1월 21일
[사진설명] 스타벅스의 새로운 메뉴 '리얼 넛 오트 모카'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먹게 된 게 무엇이냐 하면 바로 '커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대학생 때도 시험기간에 잠을 쫓기 위해 커피를 마시긴 했어도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게 생각보다 비싸기도 했고, 그때는 커피보다는 술을 더 많이 마셨으니... 커피의 매력을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요즘은 도심지라면 한 건물 안에 카페가 최소 1개 이상은 있고, 회사 안에 탕비실에도 커피머신이나 커피믹스가 항상 구비돼 있다. 언제 어디서든 원하기만 하면 물보다 더 쉽게 마실 수 있는 게 커피 한 잔일 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커피 향 가득한 삶, 왜 우리는 이렇게 커피를 많이 마시게 됐을까.
첫 번째 생각, 한국의 직장인들은 실제로 잠이 모자라서 커피를 마신다.
어디선가 본 기사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의 수면 시간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낮은 편이라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야근 시간을 생각하면 아침에 잠이 깨지 않는 건 당연한 얘기일 수밖에. 그렇게 습관적으로 출근길에 커피를 사들고 자리에 앉아 카페인 기운으로 몸을 깨우는 것 아닐까.
사실 나는 일을 많이 해서라기보다 딴짓하다가 밤에 늦게 자는 편인데 (잡다한 글 읽기, TV 프로그램 보기, 게임하기 등) 그러다 보니 비몽사몽 한 채로 출근을 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자리에 가방 놓자마자 회사 카페에 가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레귤러요'를 외치는 게 매일 아침 나의 루틴이 됐다. 일을 많이 하든, 주간 시간이 맘에 들지 않아 밤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잔뜩 하든, 결국 자야 할 시간에 잠을 자지 못해 아침에 커피로 버티는 건가 싶어서 커피 향을 맡을 때마다 가끔 기분이 씁쓸해지곤 한다.
두 번째 생각, 카페만큼 시간 보내기 좋은 곳이 없다.
연인이 데이트를 하거나 동료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때 어디서 대화를 해야 할까. 요즘처럼 미세먼지와 강추위가 한꺼번에 오는 날씨에는 실내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밥을 계속 먹기에는 실제로 내 위장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오랜 시간 머무르기도 힘들다. (밥 먹고 나서 빈 접시만 놓였을 때의 뻘쭘함이란)
하지만 카페에서는 커피 한 잔에 한두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는 일은 어려운 게 아니다. 그 사이 같이 온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지금 나처럼 글을 쓰거나, 간단한 공부를 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카페가 시간을 보내기에 적당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적당한 소음(아닐 수도 있지만..)에 잔잔한 음악, 와이파이도 빵빵하고 실내 온도도 적당하니 아마 어떤 면에서는 집이나 사무실보다 더 머무르기 괜찮은 장소일지도 모른다. 적당히 거리감 있는 사람과 대화가 필요할 때 '식사 같이 하시죠' 보다는 '차(커피) 한 잔 하시죠'가 더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세 번째 생각, 요즘 커피가 맛있다.
나는 커피 맛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요즘 '맛있는 커피'가 무엇인지 조금씩 느끼고 있다. 아메리카노 한 잔만 마셔도 어떤 곳에서는 향이 정말 괜찮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맥주처럼 목 넘김이 참 좋았다. 원래 나는 아메리카노만 마셨는데, 영국에서 아메리카노 많이 마시는 사람은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안 되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이후 요즘은 이상하게 의식적으로 라떼만 찾고 있다. 마시다 보니 깔끔한 맛의 아메리카노와는 다르게 부드럽고 고소한 우유 맛이 그대로 느껴지는 라떼도 참 좋았다. (이렇게 사이코패스 가능성을 낮추고 있는 것인가)
실력 있는 바리스타가 많아졌기 때문인지, 좋은 원두가 많이 들어와서인지,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최근에 괜찮은 커피에 대한 접근성이 훨씬 좋아졌다. 운 좋게도 회사 근처에, 집 근처에, 서울 번화가 어디를 가도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기분 전환이 된다. 또 가끔 여행지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 여행이 한결 풍요로워지는 느낌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더 맛있는 커피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기준맛있는커피
알레그리아 커피로스터스: 카페 라노체, 플랫화이트
이코복스: 카페라떼 (원두는 첼로)
앤쏠로지: 아메리카노
커핑룸(홍콩): 플랫화이트
블루보틀(샌프란시스코, 도쿄): 뉴올리언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