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부부공무원 내전

아침 유치원 등원 버스 앞에서 우리는 활짝 웃는다.

by 맨부커
아침은 페르소나를 벗는다.

나는 아침이 좋다. 사람들의 화장기 없는 민낯과 사회적 페르소나를 잠시나마 벗은 찐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침 유치원 등원 버스 앞에선 부모들의 모습을

주의 깊게 잘 살펴보면 자녀들을 향한 사랑 가득한 눈길에 정서적으로 깊은 감동을 느낀다. 의 위로를 받는다.


자녀 등원 버스 앞에서는 '사회적 역할극'이 전혀 없다.

남녀노소, 지위고하, 권위의식 이런 것들은 설자리가 없다. 사랑하는 자녀 앞에서 그냥 한 인간으로서 개성과 순수함이 그대로 표출된다.

하트를 손으로 연신 날리는 사람, 조용히 눈 인사 하는 사람, 치어리더 같은 활동적인 사람, 까치발로 비밀스러운 신호를 보내는 사람, 아이가 앉은 버스 창가에 서서 계속 무언가 말을 거는 사람, 지나가는 행인인 듯 무심한 사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잃어버린 나를 되찾는 시간'을 의도치 않게 우리는 아침마다 함께 보내고 있다. 긴 대화를 나누어 본 적도 없고, 직업이 무엇인지, 오늘 기분은 어떤지 조차 모르는 완벽한 타인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삶을 이겨내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온전하게 받아주는 느낌이다.


다음날 항상 그 자리를(아파트 울타리 옆에 약간 그늘진 곳) 지키던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혹시 아이와 부모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괜스레 걱정스러운 마음이 된다.


유치원 아침 등원 버스가 떠나고 나면 서로 멋쩍게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데, 그 시점에 대부분 얼굴 표정과 눈빛이 변한다. 사회적 페르소나를 무의식적으로 빠르게 장착한다.


아침 장막이 걷히고 저마다 역할 놀이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듯 아침은 '잃어버린 나'와의 마주함 이자 멀어짐이다.



본질적인 나, 사회 속의 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흐릿한 기억 속에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를 통해서 큰 고찰 없이 수용했던 텍스트이다.


개인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통해서 관계를 맺으며, 결코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이란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

그렇다면 인간에게 이토록 중요한 사회의 본질은 무엇인가?

강한 의문과 함께 궁금점이 생긴다.


예컨대 좋든 싫든 내가 죽을 때까지 살아가야 하는 이 거대한 공동 사회 시스템은 과연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구성원들에게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누가 총괄 기획하고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는지? 사회 시스템은 어떠한 규칙으로 돌아가는지, 사회의 일반적인 역할 기대와 나의 고유성간의 간극은 어떻게 좁혀나갈 수 있는지... 한편으로 생태주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의 길이 궁금해진다.


이와 같은 내용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가 공동 사회 진입 전에 개인에게 선행되어야 하지만 충분하게 숙의되지 못한 채, 중요한 사회적 가치와 내용들을 교과서의 텍스트로만 접하고 일괄적으로 '시험대비 암기용'으로 소비해 왔다.


나 역시 본질적 용에 대한 통찰과 자기 수용을 통한

숙고의 과정이 정말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 아등바등하며 껍데기만 '사적 동물' 마흔 살 넘게 살아왔다.


결과 나의 머리는 미처 풀지 못한 숙제에 대한 답을 중년의 나에게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어쩌면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나답게 살기 위해서' 사회적 가치, 관념들을 나의 우선순위로 재구조화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되었을지 모른다.


현재 온전히 나답게 살고 있는가?


사회적 기준으로 중년이 된 나는 요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고 되묻고 '나만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 그동안 사회가 제시하는 방향과 답안만 금과옥조로 삼아 나의 주체성 없이 타인이 보기에만 완벽한 '사회적 동물'이 되기 위해서 공허한 성공에 초점을 맞춰 '불만적 동물'로서 달려왔다.

사회라는 시스템의 작은 녹슨 부품이라도 되기 위해서 말이다. 정작 내 몸에 녹이 슬어가는지도 모른 채...


중고등학교 시절 때론 부모님께 반항도 해보고 학교에서 학생에게 제시하는 길을 잠깐 벗어나 보기도 했으나,

끝까지 그 길을 가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나답게 살 수 있는 길들은 그렇게 점점 사라져 갔다.

다수가 선택하는 길에서 낙오된다면 사회적 동물이 아니라 그냥 동물이 될까 봐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이고 삶의 철학은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지? 이런 본질적 질문에 대한 답은 구하지도 못한 채 반쪽짜리 어른 아이가 되었다


항상 무의식적으로 why?라는 물음보다는 How? 에 집중했던 것 같다.

'승진의 목적은 무엇인지?' '열심히 일하는 목적은 무엇인지? 남들이 정한 목표를 내 목표로 삼아 목적은 잃어버린 채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승진을 빨리 할 수 있을까'에 대부분 집중하며 사회 속에서 나 자신을 잃고 소비되고 소모되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몸이 망가지고 정신적 슬럼프가 오고 결국 번아웃이 왔었다.


마흔이 넘으면 이제는 주체적으로 살아봐야 한다.

마음껏 흔들리며 나만의 가치와 답을 구해야 한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내면적

관심이 없다면, 앞으로도 타인에게 평생 끌려다닌 채 살게 된다.


사회 속에서 여러 가지 역할긴장으로 힘들다면

나를 위해 과감하게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성공은 내가 정의하는 것이다.


나를 찾는 여행을 지금부터 신나게 해보려고 한다.

독서, 브런치 글쓰기, 버킷리스트 100개 작성, 명상, 걷기, 아파트 계단 오르기, 공원 달리기, 복싱

인생 제2막을 내가 중심이 되어 주인공으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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