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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곱슬머리 Oct 27. 2024

18. 우리는 만났다. (마지막 이야기)

*

“라디오가 저에게 위로가 되어준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라디오 덕분에 더 많이 행복했습니다. 저는 그 행복한 순간을 다른 사람들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드디어 꿈을 이룬 나무였다.


“이나무, 오늘 선곡 좋던데.”


지나가는 나무에게 선배가 말했다. 바쁜 듯,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면서도 나무의 방송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우리 팀이 다 잘하잖아요. 그런데, 준비 안 하고 어디 가요?”


나무의 라디오 방송과 지금 나오고 있는 방송, 그 다음을 맡고 있는 선배였고, 한 시간 후면 시작될 방송 준비로 바쁠 거였기에 지금 선배의 모습이 의아했다. 선배는 나무의 질문에 손을 들어 양해를 구했고 나무 뒤의 누군가를 보고 인사를 했다.


“어, 오셨어요? 바쁘신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무는 쭈뼛거리며 서 있다가 다시 가던 길을 갔고, 선배는 누군가랑 같이 걸어가며 자신들의 방송을 간략하게 말하고 있었다. 궁금함에 뒤돌아 보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민망할 것 같았다. 곧바로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

오랜만에 늦은 퇴근이었다. 5년 차에 접어들었음에도, 일에 대한 생각들로 욕심이 더 생기는 나무였고, 누군가를 다그치기보다는 스스로 열심히 하는 나무였다.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고 앉아 있던 나무는 가방을 챙겨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좀 전의 선배 목소리가 다시 들렸고, 같이 나온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이나무, 지금가?”


선배는 뭔가에 바빠 보였고, 고마움은 전했지만 같이 나온 누군가에게 예의를 다하지 못할 것 같아, 눈앞에 보인 나무를 굳이 불렀다.


나무는 뒤돌아 고개를 끄덕였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나무야, 우리 작가님 배웅 좀 부탁해. 갑자기 일정에 변경이 생겨서. 작가님 죄송합니다. 다음에 제가 꼭 감사를 표하겠습니다.”


같이 나온 누군가는 아니라며 손을 저었고, 선배는 미안해하며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고개를 꾸벅하며 서둘러 다시 돌아갔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오른 나무와 누군가였고, 나무는 1층 버튼을 누르고 문을 닫았다.


“안녕하세요. 이나무씨.”


나무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누군가를 바라보았고, 떠오를 듯한 기억에 누군가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았다.


나무의 눈길에 살짝 웃는 누군가였고, 나무는 누군가의 얼굴에 생겨나는 보조개를 기억해 냈다.


“아, 그때 병원에서. 라임이 오빠 친구분.”


나무의 말에 예찬이는 다시 웃었다. 예찬이의 웃음이 너무도 선했기에 나무는 자신도 모르게 빤히 예찬이를 쳐다보았다.


“잘 지냈어요? 아까 이름 듣고 인사하고 싶었는데..”


예찬이는 오랜만에 본 나무가 반가웠지만, 일정이 먼저였기에 전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아쉬웠는데, 다시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네. 저는 보시는 것처럼 이렇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나무는 예찬이가 이곳에 있는 게 의아했다. 그러다가 요즘 유명한 책의 저자가 떠올랐고, 좀 전에 다른 동료의 ‘의사이자 작가’ 언급에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예찬이가 설명되었다.


“아. 선생님이 요즘 유명하신 작가 분이셨네요.”


순식간에 나무의 얼굴 위로 지나가는 다양한 표정을 본 예찬이는 웃음이 났다. 예찬이는 나무를 잘 알지 못하지만, 신기하게도 잘 지내고 있는 나무가 다행이었고, 처음 본 이후, 구체적으로 나무를 떠올리지는 않았지만 가끔 마음이 쓰였다는 것을 지금 확인하고 있었다.


“음.. 그 정도는 아니에요.”


예찬이의 쑥스러워하는 표정에 나무는 예찬이에 대한 , 이해되지 않는 자신의 호감을 해석하고 싶었다. 분명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때, 처음 봤을 때도 그랬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생기는 마음치고는 조금은 앞서 간 것 같아 나무는 머릿속을 휘젓고 있는 감정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했다.


“유명하시니까, 선배 방송에 나가신 거잖아요. 그 방송 아무나 못 나가는데..”


나무는 다시 평범하게 농담하며 웃으려 최선을 다했다.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는 예찬이의 얼굴에 자꾸만 마음이 갔다. 분명 화려하게 잘 생긴 건 아니었다. 방송국이라는 회사에 있으면서 정말 잘 생긴 사람은 수도 없이 봤었다. 그런 그들에게도 이런 마음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나무는 자신의 이런 반응에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어쩌면 예찬이의 미소, 그 선한 웃음이 만들어내는 보조개 때문인 것 같았다.


예찬이의 가방 안에서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가방 앞에서 휴대폰을 꺼내 확인하던 예찬이었고, 예찬이의 움직임에 우연히 예찬이의 가방 안으로 눈길을 놓은 나무였다.


“무슨 사탕이 그렇게 많아요?”


나무는 알록달록한 사탕 포장지와 예찬이의 모습이 매치가 되지 않아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예찬이는 조금은 당황했지만, 사탕 하나를 빼서 나무에게 내밀었다. 노란 포장지가 반짝였다.


“병원에서 아이들 만나면 주려고 늘 준비해 놓았죠. 그러다가 제가 더 먹고 있지만요..”


나무는 손위에 놓인 노란 동그란 사탕을 보고 있었다.


“가끔 이 사탕 하나에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나무는 사탕을 입안에 넣었다. 달달하고 상큼해서 정말 기분이 좋아졌다.


“이 잘 닦아야 되겠어요.”


나무의 말에 예찬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나무와 함께 있는 이 순간이 자꾸만 행복해지고 있었다.


나무는 아무것도 아닌 이 순간이 너무 예뻐서 마음이 간질거렸다. 아무것도 아닌 장면인데, 나무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건물 입구에 서 있는 나무와 예찬이었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나무는 예찬이에게 인사를 전했다.


“네. 나무씨도 잘 가요. 그리고 라디오 잘 듣고 있어요. 그 말을 하고 싶었는데..”


예찬이는 나무를 바라보던 시선을 잠시 내렸다. 자신의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지만, 부담으로 느낄 수도 있을까 봐 조금 망설이고 있었다.


“아, 정말요? 고마워요. 더 열심히 할게요.”


이제는 헤어져야 했다. 뭔지 모를 아쉬움이 느껴졌지만, 각자의 길로 발길을 옮긴 나무와 예찬이었다. 운이 좋으면 또 만나길. 그 순간 서로 같은 바람을 바라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선생님. 여기서 뵙네요.”


나무는 라임이 조카 돌잔치에서 만나게 된 예찬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방송국 앞에서 인사를 한 후, 6개월 만이었다. 인사를 전할까 망설이던 나무였고, 그때 마지막에 가졌던 바람이 떠올라 예찬이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예찬이는 여기서 나무를 볼지 몰랐다. 운이 좋은 것 같았다. 원래는 세미나가 있어서 신록이 아이의 돌잔치에 참석하지 못할 거였다. 일정이 변경되었고, 축하를 해주기 위한 생각만으로 온 이 자리였다. 그런데 다시 나무를 만나게 되었다. 예찬이는 이 운을 지나가게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 순간 자신을 향해 웃는 나무의 사라지는 눈에 예찬이는 마음을 정했다.


나무는 라임이의 옆에서 식사를 하다, 돌려진 시선에 있는 신록이와 예찬이를 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낯익은 모습에, 혹시나 본 적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그들의 모습에, 나무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라임. 너의 오빠랑 예찬 선생님이랑 언제부터 친구야?”


라임이는 나무의 말에 함께 있는 신록이와 예찬이를 보았다. 그리고 들어 본 적 있는 그들의 사연을 떠올렸다.


“중학교부터 일 걸. 고등학교는 같은 학교 아니라고 들었고. 뭐 하여간 오래된 친구사이야.”


아마 나무와 자신만큼일 거라는 생각에 그리고 떠오른,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그들의 사연에, 자신의 용기를 혼자서 뿌듯해하던 신록이가 떠올라 라임이는 웃음이 났다. 오래된 친구가 있다는 건 축복 같았다.


라임이네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먼저 나온 나무였다. 토요일 오후의 여유를 느끼며, 약간은 허전해하며 좋은 날씨에 감탄하며 기분 좋은 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나무씨.”


나무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 보았고, 자신을 향해 오고 있는 예찬이를 보자 모든 것이 정지되었고.. 예찬이만 보였다.


“선생님도 지금 가세요?”


자신에게 다가 온 예찬이에게 자연스럽게 물었다. 서둘러 오느라 살짝 상기된 예찬이의 얼굴이었고, 숨을 내쉬고 있었다.


“네.. 아니, 사실 나무씨 나가는 것 보고, 서둘러 나왔어요.”


나무는 자신을 바라보는 예찬이의 눈빛에 밀려 시선을 돌렸다. 예찬이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들킬 것 같아, 아닌 척 여유를 찾아와야 했다.


“나무씨, 제가 나무씨를 너무 만나고 싶었다는 걸 좀 전에 깨달았어요..”


나무는 예찬이의 말을 듣고 있었다. 너무 만나고 싶었다고요? 저도요.. 말하고 싶었지만, 조금도 예상 못했었기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오늘 운이 좋아서. 드디어 나무씨를 만났네요. 그래서 나무씨를 다시 놓치지 않기 위해 따라 나왔어요.”


예찬이의 볼이 살짝 붉어졌다. 그 모습을 나무는 보고 있었다. 웃음이 났고, 자꾸만 가슴이 두근거려 나무는 짧은 숨을 몇 번 내쉬었다.


“선생님, 저랑 같이 걸으실래요?”


예찬이는 나무의 말에 활짝 웃었다. 다시 보인 보조개에 나무의 눈도 사라지며 웃었다.


****

“나무야, 힘들지?”


여름의 절정이었고, 출산예정일이 다가왔기에 더 몸이 무거운 나무였다. 그런 나무가 걱정이 되었지만, 자신이 대신해 줄 수 있는 게 없었기에 미안해하는 예찬이었다. 한참을 나무를 바라보던 예찬이는 나무의 얼굴에 놓인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괜찮아. 다들 겪는 거잖아.”


나무는 예찬이의 눈빛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운이 좋아 만나기 시작한 나무와 예찬이었다. 그 운을 운명으로 만들고 싶어 결혼을 결심했고, 더 많이 사랑하며 서로의 시간을 함께 한 나무와 예찬이었다. 그리고 만나길 원했던, 그들에게 찾아와 준 아이를 기다리며 그 여름을 지나고 있었다.


“오빠, 우리 아이 이름 뭘로 할까?”


나무의 물음에 예찬이는 나무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뜨거운 공기에 살짝 지나가는 바람을 느끼며 나무에게 말했다.


“여름이라고 지을까? 이 여름에 와준 아이니까..”


나무는 예찬이의 말에 작게 불러보았다. 서여름..


*****

“서여름, 아 해봐.”


나무의 말에 나무의 딸 여름이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더욱 꼭 다물었다.


“안 혼낼게. 아 해봐.”


안 혼낸다는 나무의 말에 여름이는 입을 벌렸고, 나무는 여름이의 입 안에서 사탕을 발견했다.


“오늘은 그만 먹기로 했잖아. 이제 그만 먹어. 알았지?”


나무는 더 혼내고 싶었지만, 알록달록한 여름이의 입속에 웃음이 나 더 말하지 못했다.


예찬이를 닮아서인지 유치원 가방 안에는 언제 넣어두었는지 늘 사탕이 가득했다. 몇 번의 약속으로 먹는 개수를 줄이긴 했지만, 가끔 나무 몰래 입안에 넣고 아닌 척하기도 했다. 그래서 혼냈지만, 그 모습에 웃음이 먼저 나서 제대로 혼내지도 못한 나무였다.


“아빠한테 이제 사탕 사주지 말라고 해야겠다. 너 이 다 썩어. 그러면 치과 가야 해. 너 치과 가기 싫어하잖아.”


치과라는 말에 굳어진 여름이의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그 두려움이 얼마가지 않을 게 확실했다.


“사탕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어떻게 안 먹어?”


나무가 겁을 주었지만 자기 할 말을 하는 여름이었다.


“누가 그래? 사탕 먹으면 기분 좋아진다고?”


“엄마가 지난번에 사탕 먹으면서 그랬잖아. 역시 사탕을 먹으니까 기분이 좋아진다고.”


무의식 중에 내뱉은 말이었기에 분명하게 기억나진 않았지만, 나무는 분명 자신이 그렇게 말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사탕을 먹으면 늘 기분이 좋아졌기에, 더 이상 여름이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래도 안 돼. 앞으로 너무 많이 안 먹는다고 엄마랑 약속해. 알았지?”


나무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여름이었다. 나무에게 더 이상 혼나지 않을 걸 알게 된 여름이는 눈이 사라지게 웃으며, 볼에 보조개를 드러냈다.


******

“서여름, 무슨 일 있어? 왜 불도 안 켜고 누워있어?”


퇴근을 하고 아무 인기척 없는 집에 들어선 나무는 여름이의 방문을 열었고, 방안 어둠에 가려진 여름이에게 물었다.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자신에게 말해주길 바랐기에, 나무는 밝은 불빛의 도움을 받아 여름이의 표정을 살폈다.


“엄마, 내 친구 남겨울 알지?”


중학교 같은 반에서 만나, 서로의 이름으로 시작된 우정이었다. 처음 여름이를 통해 겨울이라는 친구의 이름을 들었을 때, 나무는 자신의 예전을 떠올렸다. 여름이에게 라임이 같은 친구가 있어 준다면 좋겠다고 나무는 혼자서 바랐다.


“겨울이가 왜? 겨울이랑 싸웠어?”


여름이의 입이 굳게 다물어졌고, 얼굴은 속상한 감정으로 가득했다.


“아니, 내가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겨울이가 나한테 섭섭하다고 말하고는 혼자서 가버렸어.”


다른 친구랑 이야기하느라 겨울이의 감정을 놓쳤던 여름이었다. 엄마한테 혼난 겨울이는 여름이의 위로를 바랐고,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다른 친구랑 웃고 있었던 여름이에게 서운했던 겨울이는 혼자서 가버렸다.


“우리 여름이 힘들었겠네. 너는 겨울이를 엄청 좋아하는데.”


나무는 여름이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 먼저 여름이를 위로했다.


나무의 말에 살짝 눈물이 맺히는 여름이었다. 엄마의 위로를 받고 나자 더 속상해졌고, 미안해졌고, 겨울이가 보고 싶었다.


“겨울이한테 가서 말해. 아까는 미안했다고. 마음 몰라줘서 속상했겠다고 먼저 말해 봐.”


“진짜 그렇게 하면 겨울이의 마음이 괜찮아 질까?”


“겨울이도 너를 좋아하니까 섭섭했던 거 아닐까?”


여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겨울이가 자신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지만, 겨울이는 분명 자신에게 다시 마음을 열어 줄 것이었다. 지금 겨울이를 만나야 했다.


웃으며 들어오는 여름이었다. 이렇게 쉽게 해결될 줄 알았으면 진작 해볼걸, 여름이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저녁을 준비하는 나무에게 여름이가 말했다.


“아까 학교 마치고 라임이 이모한테 갔었어. 내가 그냥 이모는 친구랑 싸우면 어떻게 해결했어요? 물었거든. 라임이 이모가 엄마랑 라임이 이모 이야기를 해줬어.”


“무슨 이야기?”


끓고 있는 냄비의 불을 낮추며 나무는 여름이에게 물었다.


“엄마랑 라임이 이모의 서먹했던 순간.”


나무는 기억났다. 별일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라임이를 서운하게 한 자신의 행동에, 결국 서로를 오해하며 서로 멀어졌던 그때였다. 라임이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무조건 라임이가 알 거라는 생각으로 표현이 조금 서툴렀던 그때였다. 좀 더 라임이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했던 그때의 자신을 떠올리며, 다시 라임이와 친구로 지내고 있는 지금에 감사했다.


“라임이 이모가 엄마한테 사과하러 갔는데, 엄마도 딱 그 순간에 라임이 이모한테 왔었다고. 라임이 이모랑 모르는 채로 지내는 꿈을 꿨다고. 너무 무섭고 끔찍했다고 엄마가 그랬다고.. 진짜 그런 꿈을 꿨어?”


나무는 그런 꿈을 꿨는지 지금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답을 기다리는 여름이에게 그냥 살짝 웃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라임이랑 모르는 사이로 지냈다면 너무도 무섭고 끔찍했을 거라는 걸.


“라임이 이모는 그래서 너의 고민에는 뭐라고 답해줬어?”


“정말 그 친구가 좋다면 먼저 다가가라고..”


“그런데 왜 아까 그렇게 누워 있었어? 라임이 이모가 그렇게 말해줬다면 겨울이에게 일찍 가봐도 되지 않았어?”


나무의 질문에 여름이는 다시 아까의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냥, 엄마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어. 엄마랑 라임이 이모가 친구니까.. 몰라. 그냥..”


여름이는 용기가 더 필요했다. 나무와 라임이의 같은 의견에 힘을 얻었고, 자신과 겨울이도 나무와 라임이 같은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생겨난 용기로 여름이는 겨울이와의 오해를 풀게 되었다. 다행이었다.


*******

여름, 나무 그리고 예찬이는 오랜만에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초록잎 가득한 길 위의 눈부신 햇살, 투명할 것만 같은 초록빛이 바람에 흩날리며 반짝이고 있었다. 너무도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그래서 영원하길 바랐다.

“우리 여기서 사진 찍어요.”


여름이의 제안에 나무와 예찬이는 예쁜 위치를 골랐고, 여름이는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사진을 부탁하며 휴대폰을 건넸다.


“자, 찍을게요. 하나, 둘, 셋”


다시 건네받은 휴대폰 속 여름, 나무, 예찬이는 너무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사진을 찍어준 세상 온화한 얼굴의 누군가는 그들을 향해 웃음으로 답하며, 다시 자신의 길을 갔다.


행복한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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