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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곱슬머리 Oct 20. 2024

16. 간절함에  관하여

나무는 한참을 살려달라고 울었다. 살고 싶다고 울었다. 자신의 죽음이 아니었음에도 자신이 보였고, 결국 자신의 죽음이 된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눈으로 목격하자 나무는 살고 싶어졌다.


“이나무씨”


나무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다시 온 환하고 넓은 곳이었다. 그리고 세상의 온화함을 다 가진 누군가를 바라본 나무는 아직 어떤 말도 오고 가진 않았지만, 자신을 바라봐주는 그 눈빛만으로 위로를 받고 있었다.


“그들은 삶을 살아갔을까요? 그들을 위해 뭔가 더 해주고 싶었는데..”


나무는 자신이 만난 그들을 기억해내고 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의 성공 유무보다, 그들이 자신들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길, 그 순간 나무는 그 어떤 것보다 그 하나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나무씨는 공유자였습니다. 그들의 몸을 공유한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감정과 생각을 함께 했습니다. 그 순간 그들이 된 나무씨는 그들 대신 그들의 진심을 전해주었습니다. 나무씨가 느낀 그들의 간절함은 그렇게 진심이 되어, 상처받은 모두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


나무는 자신이 느꼈던 그들의 마음을 기억해내고 있었다.


 “그 진심을 전해받은 누군가들은 절대 거창한 걸 원한게 아니었습니다. 진심 어린 말 한마디, 따뜻한 눈빛을 담은 공감,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 나무씨 덕분에 그들은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나무는 만났던 그들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주고 싶었다.


“나무씨가 대신 전해준 진심은 생각보다 강력하게 그들의 순간을 바꿔주었습니다. 그 힘이 나무씨에게까지 영향을 주었고, 나무씨의 인생도 차곡차곡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너무도 사소한 표현들이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방향을 바꿔준 간절한 진심이었다.


나무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자신의 인생이 달라졌다는 말은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그들의 순간이었고, 그들의 인생이 괜찮아졌다는 건 정말 다행이었지만, 자신의 인생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제 인생이 달라졌다고요?”


온화한 누군가는 나무를 향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나무씨가 잘 살아온 대가라고 해두죠.”


나무는 차츰 울음을 그쳤고, 자신이 만난 그들을 떠올리며, 은연중에 그리고 확신하며 그들을 알아내고 있었다.


“제가 만났던 그들 중에는 아이였던 아빠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싸늘했던 엄마도 있었어요. 그리고 죽음을 생각하던 순간에 저를 구하던 저도 있었고요.”


온화한 누군가는 나무의 생각이 맞음을 고개를 끄덕이며 전해주었다.


“그리고..”


한 번도 만난 적 없었지만, 따뜻한 진심이 느껴진 누군가와 사탕하나로, 반짝이는 눈빛으로 자신을 위로해 주었던 아이가 마음에 남았다. 기억을 떠올려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없는 게 확실했다.


“그들은 다음에, 언젠가 만나게 될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무의 생각을 아는 듯 먼저 나무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다.


”나무씨의 다음 결정에 따라 그들을 만날 수도 있을 거예요. “


다음 결정.. 나무는 궁금했지만, 굳이 더 묻지 않았다.


다시 떠오른, 엄마를 부르며 엄마를 안고 잠든 어린 아빠와 외할머니의 미안하다는 말에 눈물을 흘렸던 엄마로 나무의 머릿속이 가득했다. 그곳의 그들은 다행인 것 같았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그들은 결국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았다. 끝까지 마음에 남은 공허함을 채우지 못하고 살아온 그들은 사랑을 주는 법도, 받는 법도 알지 못했다.

나무는 그들의 사랑을 너무도 바랐었다. 그들이 표현해주지 못한 마음에, 그들을 사랑했지만 자신도 마음을 드러내지 못했고, 점점 그 마음조차 잃어갔던 나무였다. 이제야 알게 된 그들의 아픔에, 나무는 지금껏 자신이 했던 투정이 미안해졌다.


“그때의 그들이 죽음을 생각했었나요? 너무 어렸던 아빠가, 한없이 차가운 엄마가 저처럼 그 순간에 그랬던 거예요?”


나무는 자신만큼 그들도 힘들었을 거라는 걸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그들도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을 거였다. 살아오면서, 살다 보니 포기하게 된 간절함이었고, 채워지지 않던 마음은 그들만의 서먹함과 싸늘함으로 표현되었던 거였다. 나무는 그들도 자신만큼 방황했을 거라는 생각에 그들 인생의 외로움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을 만났던 순간, 그때의 그들을 조금 더 위로해주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웠고, 그럼에도 그들이 그렇게 밖에 살아오지 못했다는 사실은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 순간, 나무는 자신이 만들어간 불행을 후회했다. 비록 그들이 나무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지만, 나무는 그들과는 별개로 자신의 인생을 더 잘 살아갈 수도 있었다. 비록 그들이 나무가 원했던 사랑을 주지 않아도, 나무는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자신은 불행하다고 믿었기에 나무는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다.


“그들도 각자의 인생에서 힘들고 괴로워서 죽음을 생각했던 적은 있었겠죠. 그러나 사실 그 순간은 나무씨의 49:51이 만들어 낸 기회였습니다. 나무씨가 마지막에 가졌던, 나무씨 마음에 가득 찬 아쉬움과 서운함, 후회와 그리움. 그 마음들의 간절함이 나무씨를 그곳으로 이끌었습니다. 더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아빠였다면, 사랑을 받아서 더 행복한 엄마였다면, 그러면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나무씨의 간절함.”


나무는 자신에게만 잔인한 것 같았던 인생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죽음을 생각했지만 내면 깊숙이 놓여있던 아주 가끔 가지게 되었던 좋았던 기억들이, 자신의 인생을 조금 더 잘 살아내고 싶어 하던 나무씨의 마음을 찾아낸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순간순간이 조금만 달랐더라면 하고 바라던, 자신의 인생을 너무도 애틋해했던 나무씨의 마음이 그런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 나무씨가 가졌던 간절함은 결국 그들을 만나게 했습니다.”


나무는 다시 그들을 떠올렸고 그들을 위로했다. 그리고 그들이 너무도 보고 싶었다.


“맞아요. 저는 늘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내 힘으로 도저히 안 되는 부분까지.. 나는 바꿀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것조차도 달라졌더라면 하고 생각했었죠. 늘 그렇게 생각은 했었는데..”


그 간절함의 힘이 지금 이 순간을 허락해 줬다는 사실이 고마웠고, 이제라도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매번 바보 같아서 미웠던 자신도 이제야 용서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이젠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들의 표현이 서운했고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저는 온전히 그들을 사랑할 수 있어요.”


나무는 드디어 자신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그것과는 별개로 잠시 후, 나무는 자신의 현재의 상태를 기억해 냈다. 아직 죽음의 순간에 놓여있는 자신이었고, 너무 늦은 것 같았기에, 이제야 깨닫게 된 그 모든 것들이 자꾸만 아쉬웠다.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모든 걸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그거 하나만은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밀어내고 있었다.


“나무씨는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였습니다.”


“제 임무는..”


누군가의 삶과 죽음에서 죽음으로 기우는 그 순간, 균형을 유지하도록 설득하는 것.


“그럼, 다행히 그들이 죽음을 선택하진 않았던 거죠?”


“나무씨가 전해준 진심 덕분에, 그러니까 나무씨는 나무씨를 설득해 냈습니다.”


“제가 저를 설득했다고요?”


나무의 죽음의 순간, 결국에는 나무는 자신을 설득해 냈다. 더 살고 싶다는 간절함을 기억해 내며, 삶을 선택하게 했다.


“그러니까, 저의 49:51 이 된 순간에 저는 저를 설득했어야 했던 거네요. 제가 살아야 되는 이유, 죽음 말고 삶을 선택하고 싶어 했던 저.. 결국에는 찾게 해 주셨네요.”


나무는 이제야 이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고마웠다.


“나무씨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작은 선물이라고 해두죠.”


작은 선물.. 외로웠던 나무였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선하게 살았다. 매 순간 선했다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가능한 도덕과 양심에 따라 살아왔다.


뜻대로 안 풀리는 인생을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나 봐.’라며 애써 받아들이는, 농담 같은 신세한탄을 하는 다른 이들과 같이 어쩔 수 없이 웃었지만.. 그 말이 어쩌면 진실일까 봐,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답한 인생인 까닭은 그 이유 밖에 떠오르지 않았기에, 그래서 어쩌면 혹시나 또 있을 ‘전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노골적으로 노력했다. 계산된 선이었지만, 본의 아니게 행하게 되는 악보다는 낫다는 믿음으로 그렇게 조금은 약아빠진 마음으로 살아왔었다. 처음엔 위선처럼 느껴지는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에 신경 쓰였지만, 그렇게 습관처럼 선을 택하며 나무는 살아왔다.


“저는 선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러나 하기 싫은 적도 많았고, 자주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랐고, 이렇게 하면 언젠가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계산도 했어요.”


나무는 부족한 자신이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이런 선물을 자신이 누려도 되는지 망설여졌고, 떳떳하지 못한 자신의 마음이 후회가 되었다. 그때 정말 진심으로 선하게 살아볼걸, 그럼 진짜 선물처럼 이 순간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 나무는 자신이 만든 선한 행동들이 떠오르자 고개가 숙여졌다.


“나무씨, 우리는 사실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온화한 누군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나무에게 들어 보이며 웃으며 말했다.


“나무씨는 자신을 정확히 못 봤겠죠. 그 순간의 나무씨는 정말 진심이었어요. 억지 같은 마음으로 선을 선택하는 것 같아 스스로를 비난하며,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고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선을 행하고 누군가를 위해 베푸는 그 순간의 나무씨는 너무도 행복해하고 오히려 감사해했어요.”


나무는 자신의 그 순간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때 정말 행복했고 그래서 감사했음을.. 그런 마음이 양분이 된 나무의 선한 인생이었다.


“나무씨는 이 모든 제안을 누릴 자격이 있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정할 선택도 나무씨의 몫입니다.”


망설이는 나무였다. 처음 여기 왔을 때는, 사라지는 것을 당연하게 선택한 나무였고, 그 선택에 너무도 단호했던 나무였다. 그러나 지금은, 만약으로 가정된 자신에게 더 이상 없을 삶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싫었다. 사라지는 게 자신 없어졌고,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워지고 있었다. 이제는 자신의 인생 모든 순간이 그리웠고, 남아있는 그 인생을 더 잘 살아보고 싶었다.


“저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어떤 것이라도 가능합니다.”


“저.. 저는 저이고 싶어요. 다시 저였으면 좋겠어요. 이나무로 다시, 아니 계속 살고 싶어요. 살게 해 주세요.”


나무는 눈물이 났다. 그렇게 다시는 바라지 않을 것 같았던 삶을 결국엔 선택했다.


“나무씨, 나무씨의 선택이 실행됩니다. 나무씨의 인생 계속 살아가길 바랍니다.”


나무는 환한 빛을 본 것 같았다. 다시 어딘가로 가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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