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첫마디가 어렵다. 마음을 꾸욱 눌러 담아 쓰고 싶지만 감기는 눈, 약간의 두통, 가파른 숨이 나오지만 오늘이 아니면 어떻게 쓰나 싶어서. 아니, 어쩌면 글이 더 어수선할까 싶어 고민스럽다. 제대로 전달됐으면 좋겠다. 그대에게도, 그대들에게도.
얼마 전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 누군가 물었다. 이다음엔 하고 싶은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아, 참 고민스러웠다. 때 마침 그때 인스타 피드에 올라왔던 수많은 인용 글 중에 이런 글이 있었다. 사랑에서 갑이 되는 법을 알려달라는 내용이였다. 그 내용의 대답은, 더 좋아하는 것 같다는 조바심, 나만 좋아하는 것 같다는 그 어떤 불안에서 오는 생각에 을이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난 사랑 했으니 됐다. 사랑을 줄 수 있어서 기뻤다는 여유를 갖는 거. 그게 을이 되지 않는 방법이라고.
어떻게 사랑했으니 그것만으로 행복을 느낄까.
아직도 나는 모르겠다. 진득한 사랑도, 진한 사랑은 해보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찰나의 인연에게 이러면 안 됐다는 걸 배웠을 뿐. 주는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 찰나의 인연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찰나의 인연 속에서도 무수히 겁을 냈던 것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나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들을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알게 되는 건 그 찰나를 거칠수록 내가 받칠 수 있는 순정은 점점 작아져만 간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슬픈 일인 거다. 내가 그 찰나에게 줬던 그나마의 맑은 순정을. 똑같은 양, 모양, 느낌으로 줄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게. 그래서 이다음의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하나 무수히도 고민했다.
과도기인지 모를 이 순간, 감정, 생각들 마저도 잊게 될 것 같아서.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다르게 해석할 수 있었던 내가 사라지고 다시 사랑만 갈구하게 될까 봐. 아직도 기우인지, 괜찮은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확실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나는 이다음에는 주는 사랑을 하고 싶다.
그 이유는 지금의 나로서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은 나 혼자만의 결과는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등 뒤에 묵묵히 있겠노라고. 한때의 진심을 받쳐서 나를 위해 용기를 냈었던 그 짧은 찰나의 사람의 마음이.
어쩌면 지긋지긋했을지 모르는 그 수많은 말들을 가만히 옆에서 들어주고, 가림막이 되어주고, 웃어주었다가 화내 주었다 했던 나의 커다란 등대가.
오늘의 하늘은 어땠는지, 네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담고 왔는지 알려주며 응원해 주는 작고 단단한 친구의 사진과 말 한마디가. 내가 너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나로 인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 만한 행복이 어딨냐며 얼마든지 네 행복을 사기 위해서라면 마다하지 않겠다던 키 큰 친구의 한마디가.
그대가, 그대들이. 지금 여기로 나를 이끌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사실 어젯밤 내 등대가 그랬다. 이제는 서운하다 말하며 하늘 보며 웃는 네 옆모습을 보는 게 새삼 달라 보였다. 어쩐지 미묘한 감정이 들었지만 숨기려 애썼던 걸 너는 이걸 보면 알지 모르겠다. 우리가 나란히 앉아서 웃을 수 있는 시간도 어쩜 이제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이 들고, 그런 부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느껴서 일 테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딱 두 가지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찰나의 인연들, 그대와, 그대들이 품어준 사랑으로 나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아직 내 안에서 맑은 걸 건넬 순정이 남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받은 사랑으로 느꼈던 사랑을 온 마음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거다. 그래서 사랑받게 되거든, 그것은 그대도 사랑받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형태가 다른 순정이었다는 점.
그러니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는 나는 아직도 불완전하다. 잊어버릴까 불안한 나를 위해서, 이 글은 용기를 꺼낼 작은 일기장이란 사실이다. 그 불안을 잊기 위한 보물 창고 같은 것. 여기에 남아 있는 사랑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고 사랑스럽다고.
그러니 잊어버리지 말고 받은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또 적는 거라고.
혹여 네가 지친 날에도 이런 사랑으로 나는 여기에 머물러 있을 테니, 그립게 되는 날이 오거든 꼭 보러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 남겨 두는 거라고.
사실은 너무 아쉽다. 더, 더 표현하고 싶지만 표현할 수 없다는 게. 꼭,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주는 사랑의 언어들을.
#사진은 운동하고 있는 주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