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림 Oct 18. 2021

내가 시한부라면. (上)

나는 매번 아무 생각 없이 잠들기는 어렵다. 걱정거리가 있을 때도 있지만 아무 생각이 없으려면 지금 눈 감는 것보단 더 꼬옥 눈을 감고, 마치 여기엔 공백만 남긴다는 듯한 느낌으로 텅 빈 공간을 애써 만들어서 그렇게 있어야 한다.


편안한가 물으면 꼭 그렇진 않은 것 같다. 그럼 불편한가 물으면 조금은 그런가 싶다, 왜 그런 것 있잖아. 애써 견뎌야 하는 시간처럼. 텅 빈 그 공백을 느끼다가, 오분이 지났을까, 십 분이 지났을까 생각하다가… 그러다가 잠들곤 했으니. 꼭 마땅한 방법 같진 않다.


어렸을 적에도 그냥 잠들기도 하거나 상상하기도 했는데, 상상해야 했을 땐 꼭 머리를 쓰다듬받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왜 그랬나는 모르겠지만 손길이 좀 그리웠나 싶기도 하다. 다정한 어른의 손길 같은 거. 얼굴도 쓰다듬어주면 좋을 것 같아. 볼을 아주 소중한 것을 다루듯이, 아. 다시 생각해 보니 지금은 좀 괜스레 고개 돌릴 것 같은 느낌이다.


어쨌든, 잠들기 어려운 밤이면 밤마다 상상한다. 고양이가 되어서 세상을 여행하는 상상을.

왜 고양이냐고 물으면 고양이가 되어서 오면 엄마가 아주 살뜰히 보살펴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자주 상상하곤 한다. 내가 이다음에 죽으면 고양이가 되어야지, 사람으로 환생할 수 있대도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게 해 주세요.라고 속으로 소원을 빌 때도 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간혹 친구에게 하면, 야생동물에게 잡혀먹을 수도 있고, 배를 곪을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아. 물론 길고양이의 삶이 마냥 행복한 이야기는 아니니까, 어쩜 너무 생각 없는 소원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나는 고양이가 되고 싶다. 이다음에는.


살뜰히 보살펴 준다고 했으니까, 엄마에게 가서 밥도 얻어먹고 물도 얻어먹고. 그러다 심심하면 친구 집에 들러서 츄르를 얻어먹으러 갈 거야. 보고 있니? 너희들은 나를 위한 츄르와 간식을 준비해줘야 하는 거야. 그러니까, 잊지 마. 다음은 고양이니까.


어쨌든. 그런 상상을 하곤 잠든다. 삼십 분쯤 하는 것 같다. 대부분, 고양이가 되어서 이곳저곳을 다니는데, 꼭 친구에게 츄르를 받으러 갈 때쯤이면 잠들어서 츄르를 내어줬는지 안 내어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또 상상하면 또 같은 패턴이니 살짝은 질렸다. 여전히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는 건 변함이 없는데, 이젠 다른 상상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물었더니 다른 친구가 시한부가 되는 상상을 해보라고 했다. 시한부라니, 죽고   상상보다  어려웠다. 그래도 일단 시한부가 된다면 이란 가정하에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생각 정돈해봤다.( 하면 방법을 알려준 친구에게 조금은 뭔가 그러니까.) 그런데 보통은 시한부가 짧으면  ,  ,  , 혹은 기적이 일어난다면 조금  버티는 정도일 텐데. 마지노선을 어디로 정해야 할까부터도 고민이었다.


 달로 하면, 일하다가 인수인계를 기다리다가 죽는  아닐까? 싶어서. 아니 애초에 이쯤이면 사장님이 바로 그만두게  줄까도 고민이 되기도 한다. 일주일만 인수인계해주세요 하면 나는 거절하지 못하겠지. 그럼 나는 해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이어지는 생각엔, 내가 시한부라는 선고를 받고 나면 얼마나 울까, 아니면 멀쩡할까? 그때도 조금의 게으름을 피우며 살다 갈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사진은 귀여운 주혜가.

작가의 이전글 나는 그대가 만든 사랑의 어떤 일부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