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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Mar 29. 2024

누구나 꽃이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움츠린 어깨를 조금씩 피는 봄을 질투하는 듯한 겨울의 한숨이 머무를 때 쯔음 이었다. 네 번의 겨울 동안 따뜻함을 찾아 헤맸을 작은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고 신나게 놀기 시작했을 때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회사에서의 마지막 걸음을 함께 해주셨던 대리님의 카톡이었다.


‘잘 지내고 있나요? 우리 한 번 얼굴 봐야죠‘


지나가는 말일줄 알았는데. 멍하니 고개를 들어 올려 천장의 작은 결을 따라 눈동자를 굴리다 답장을 하였다. 통통 튀어 오르는 말풍선 하나하나에 신경을 세우게 되었다. 작년의 해가 저물어갈 즈음에 과장님과 연락이 닿았던 일들을 말하니 그럼 과장님과 함께 보자고 하셨다. 고개를 끄덕이며 좋다는 말을 남겼다. 약속 날짜가 다가올수록 심장은 꼭 다리미로 다림질받는 듯 했다.


추운데도 불구하고 얼굴에 올라오는 열기를 혹여 들킬까 아무렇지 않은 척 입꼬리를 올렸다. 추운 바람에 주먹을 꼭 움켜쥐는 것을 봤던 소녀 같은 과장님이 자신의 장갑 한쪽을 내어주는 일이나, 고구마를 구울 것 같은 길거리의 화롯불에 잠시 언 몸을 녹이는 일, 따듯한 국물을 들이키며 사랑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일은 꽤 중요한 깨달음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난 인간적인 사랑, 포괄적인 사랑을 좋아하지만 깊은 사랑이 주는 울림은 모른다. 입버릇처럼 친구들과 들이키는 술 한잔, 매일 나누는 안부와 일상을 주고 받으며 마음을 나누는 게 더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사랑한다고 입을 달싹이며 뺨에 손을 얹는 상대의 손길이 부끄럽다기보다 어색했다. 입술을 포개고 끌어안는 것은 더 지독하게 어색했지만 침묵으로 밀어 넣으며 손을 맞잡는 것을 의무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 옆자리에서 곤히 자는 아기를 바라보면서도 생각한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의무야.

나에겐 사랑은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새로운 창구가 아니고, 애틋하게 쓰는 서신이 아니었다.

빈곤한 마음 창고에서, 친구들의 언어에서, 귀동냥해온 말을 적어 내리는 눈물 젖은 답장에 불과하다. 감히 흉내 낼 수도 없는 것.


그것이 ‘사랑’이었다.  


그 후 한 달이 흘렀다. 그 사이에 내가 좋아하는 그녀는 활짝 웃으며 봄을 알리는 홀씨로 돌아왔다. 그녀가 흩날리는 씨를 가만히 바라보고 코 끝이 시큰해졌다. 모두가 꽃이 될 수도, 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너무 좋았다. 미지근한 것보다 살짝 찬 기운이 도는 바람이 뺨을 스쳤다. 울렁거리는 마음을 움켜 잡고 거리를 나섰다.


손 끝에 힘을 주어 내리면 조약돌이 걸어 다니는 듯한 소리를 내는 녀석을 픽업하기 위함이었다. 지하철로 한 시간 반을 내달려서 만나게 된 물건은 다름 아닌 키보드였다. 사실 살 마음이 없었는데 어쩌다 홀려버렸다. 키보드를 소개해준 사람은 ‘아구몬’씨다. 왜 아구몬이냐고? 나도 묻고 싶다. 왜 아구몬인지. 글을 다 쓰면 물어봐야지.


아무튼 아구몬씨는 판매자로서 친절하게 키보드를 다루기 위한 기초 설명을 해주었고, 돌아가는 길에 여러 가지 지식들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의 과하지 않은 친절함에 묻어 있는 말들을 들으며 생각했다.


내가 또 하나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게 됐구나.


무수히 다가왔다가 사라지는 사람들 틈에서 피어나는 질문. ’좋아하는 것이나 취미는 뭐가 있나요?’

서른이 되어서야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퍽 좋다. 자연스럽고, 익숙하고, 미숙해도 괜찮은 것들. 도각도각 울리는 음에서 써 내려가는 좋아함은 코 끝이 시릴 정도다.


올해는 왠지 세상이 두 쪽 날 것 같아서 두렵고, 하루가 피고 질 때마다 아득한 비명 하나, 기쁨 하나가 같이 울린다. 엊그제 펑펑 울며 내일 죽겠다고 악을 썼다. 그리고 또 살아있다. 새벽 네시에 깨어나 작은 아이를 품에 안고 두 시간을 헤매는 일상을 보내며 살고 있다.


인간으로서 실격일까봐 사실은 무서워.


한껏 취기에 올랐던 대바늘이 전화로 그랬다.

‘너도 물렁하지만 너만의 것을 갖고 살고 있잖아? 그러니까 살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어.’


그런 말에 미약한 숨을 내뱉으면서 봄을 보내고 있다. 또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분홍빛으로 물들었다가 초록빛으로, 붉은빛으로, 하얀빛으로 빛나겠지. 그 세상 가운데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다짐했다.


죽음 뒤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지언정, 많이 사랑하고 떠난다고 말할 수 있기를.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미약한 숨을 내뱉는 봄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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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예쁜 주혜에게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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