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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Apr 06. 2024

억지로 사랑하기를 그만할게.

4박 5일 같은 느낌의 3일의 여정이 끝나고 난 후 쉬는 토요일의 저녁 시간. 절대 금지라고 말했던 것들을 모두 하고 나니 뭔가 잘못을 저지른 느낌 같기도 하고, 짜릿한 일탈의 느낌도 든다. 마치 중요하게 여기던 과목의 수업을 일부러 듣지 않고 피크닉을 간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퇴사 한지도 벌써 몇 개월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사회의 톱니바퀴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서, 요즘의 날씨의 느낌을 잘 모른다. 선명해진 봄의 기운, 돋아난 옅은 분홍 빛깔의 꽃잎, 쌀쌀한 바람이 어딘가 어색하면서도 익숙한 느낌이다. 한 뼘의 바람을 맞으면 꼭 누군가가 내게 안부를 묻는 것 같기도 하고 소망을 말하는 듯 하기도 하다.


톱니바퀴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 부디 살아 달라고.


서늘한 새벽 공기에 닿은 벚꽃 잎이 그렇게 말하는 듯 해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 내가 의존하고 있는 어떤 것들에 대하여 조금은 손을 떼고 일어나 보려는 시도를 해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라고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의 미소나 손짓,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은 아이의 귀여운 얼굴,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기대어 있는 힘껏 살아가는 어머니의 강인함,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나.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얼굴들이 어제 만난 친구의 눈에서 스쳐 지나갔다.


너도 네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에 대하여 우뚝 서 있으려고 온 몸에 힘을 바짝 들이고 있구나.


내가 반짝여야 하는 이유를 저마다 찾아가며, 선뜻 다가오는 외로움에 잠식당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든 얼굴들이 생각났다. 내가 너무 사랑해서, 언젠가 헤어질 날이 올 것이 두려워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아주 아주 열심히 살고 있는 이유는 스스로에게 좀 먹히지 않고, 가난을 품지 않고 한 번 더 사랑하려 했기 때문이란 걸.


언제 올지 모르는 생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두려워하는 것보다, 현재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품는 것이 다음 스텝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누군가의 소망은 사실 이 마음을 품기를 간절했다는 것을.

무언가를 사랑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거, 그 모든 것들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


사실은 그게 먼저라는 것을 계속, 계속 말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너무나 미안하다.


돌아오는 월요일에 나는 고해야겠다. 억지로 사람을 사랑하기 같은 것들은 그만두겠노라고.

대신 삶을 사랑하겠다고.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 라고 이야기 하면 나는 이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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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주혜에게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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