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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Aug 19. 2024

백만송이 장미

언질도, 노크도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에 대해서 언제쯤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불청객은 마치 술에 취한 진상처럼 굴면서 사람을 휘저어 놓는다. 아팠다가, 아프지 않았다가의 연속의 사이에서 주저앉았다가 일어나는 것도 반복되고 있다. 이제 시작인지, 잠시 머물다 갈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다.


그 사이에서 피어난 축축한 자기 연민이 발목을 감싸며 몸을 타고 올라오는 것이 굉장히 불쾌하다.

발끝에 들러붙은 치사함을, 마치 다 빨아먹은 담배를 발로 지져 끄는 것처럼 눌러 보려 한다. 별안간 화끈거리는 것은 스스로가 달래야 하는 몫임을 알아서 파르르 떨리는 몸을 붙잡고 시간이 가기를 기다린다. 그 치사함을 만든 건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그것은 나의 욕심이다.


대단하지도 않은 것에 실낱같은 희망을 거는 것들이 많다. 희망이 잘게 유리 파편으로 부서져 제 형태를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 깨어진 틈 사이로 보이는 허망한 눈빛, 목소리, 눈물들을 어찌 잊느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속절없이 울었던 것들은, 각자의 몫에서 상처로 남는 것이다.


이제서야 아는 거지만 너는 나 나는 나라는 것은 사실 더 이상 그 희망에게서 상처받기 싫어서야.

세상에게서 등을 돌릴 수 없다면, 악을 써서라도, 몸부림을 쳐서라도 움직여야 하는 게 삶 이라서야.


초랗게 빛나던 나뭇잎이 낙엽으로 번져 갈 계절이 오고 있다. 주황빛으로 물드는 세상을 가만히 바라보며, 짧아져 가는 시간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한 영역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윽고 다시 밤이 올 것이기에 나는 또 잠들면 되고, 아침이 되면 웃으면 되는 것들이었다.


그 별나라로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마저 죄일까 두려우면서도, 나는 별나라로 가겠다고 또 다짐하는 거다. 저마다의 백만송이 장미가 피어나길 내내 기도하면서.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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