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림 Oct 19. 2021

마음은 몸의 어느 곳에 두어야 할까요?

Questions이란 책의 질문 중 하나다. 마음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 가끔씩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라고 생각하게 되곤 한다. 보통은 심장과 명치의 중간쯤 어딘가에 영혼이 있을 것 같고 마음은 심장 부근에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왜냐면 마음이 아플 때 심장이 아플 때도 있고, 숨이 차오를 때도 우리는 손을 얹는 곳은 심장 부근이니까.     


너무 진부하고 뻔한 질문이다. 그렇지만 계속 생각해본 적은 있다. 영혼이나 마음은 눈으로 볼 수도 없는 아주 추상적인 존재. 나도 마음이 아플 때는 심장에 손을 뻗어버리곤 하지만, 그렇지만. 영혼이든, 마음이든 온 전신에 있지 않을까.    

  

팔이 잘려나간 듯한 아픔, 심장이 뜯겨나간 듯한 아픔. 너는 내 아픈 손가락이야. 같은 표현을 보면 꼭 마음은 심장에만 있지 않은 것 같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인정할 수 없어! 같은 단어들을 보면.


신체가 괴로우면 마음이란 것도 아프고,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픈 것처럼.

애초에 흙쯤은 눈에 들어가면 괴로울 건 알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비유 같은 건 어디서 유래가 되었나 궁금하다. 눈이 가장 세상에서 좋은 렌즈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나 내 눈에는 아름다운 아이로 비치기 때문에 담고 또 담아도 아쉬운 건지.     


형태도 꼭 동그랗거나 타원형인 걸까. 삶처럼, 구불구불한 모양이나, 네모나거나 혹은 세상에 그려진 어떤 모습처럼 캐릭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귀여운 토끼 같은 마음. 거대한 핏불 강아지 같은 마음…. 아, 이건 좀 무섭다. 뱀 같은 스산한 마음. 고양이 같은 도도한 마음. 달팽이 같은 마음. 영혼도 말이야, 그림으로 그리면 웃기겠지만 그러면 안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 억지를 갖다 대자면, 왜 그런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동물로 태어나는 건 너무 '순수한 영혼이라서'라는 말도 있고, 죄를 많이 지어서 축생의 삶을 산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그런 모양으로 띈 마음인 거지. 동물도, 저 여우 같은 아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렇지만 죄를 많이 지어서 축생의 삶이 된다는 건 슬프다. 차라리 미생물로 태어나게 해 줬으면 좋겠다.

살면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사진은 수평수직을 잘 맞추는 주혜가.

작가의 이전글 내가 시한부라면.(下)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