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된 아들에게, 쓰는 편지
(사춘기) 아들과의 동고동락(3)
적당함이 중요한데 적당한 것은 아직도 어렵다. 인생은 적당함을 찾아가는 여정일 거야. 적당하게 공부하고 적당하게 즐기고 적당하게 돈을 쓰고 적당하게 돌보고...... 적당한 계획과 적당한 무질서. 그땐, 엄마도 몰랐는데...... 이제야 그런 것들이 보이네.
이런 말들은 꽉 막혔어. 답답하게 만들어. 그냥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놀 수 있을 때 실컷 놀고, 공부는 남는 시간에 해도 될 거 같은데...... 무질서하게 살아도 살아지는데 왜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엄마는 말하려는 걸까? 엄마도 그때의 너로 돌아가면 너처럼 생각할지 몰라. 자꾸 가두려 한다고 생각했을지 몰라. 엄마는 너희의 반항 정신을 열렬히 응원해. 반항을 해야 세상이 조금이라도 지진을 일으키지. 반항이 바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거니까. 그러니, 네가 좋아하는 반항도 질서를 위한 일이야. 네가 읊조리는 쇼미 더 머니의 래퍼들도 질서를 위해 가사를 쓰고 노래를 하는 거야. 질서는 답답한 갑옷을 입고 있지만, 모두가 숨 쉴 수 있게 하거든.
때가 있다고 하잖아. 지금은 너에게 주어진 당연한 공부가 나중엔 당연하지 않을 때가 오게 될 거야. 팽팽 돌아가는 LTE급 머리도 나중엔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될 거야. 그래서, 어른들은 공부할 수 있을 때 공부하라는 말을 하곤 해. 세상의 모든 진리는 숨이 막힐 듯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지루하기 짝이 없다는 걸 엄마도 알고 있어. 세상은 당연한 말들로 넘쳐나거든. 엄마 나이가 되어서야 이해하게 될 거야. 당연한 것들이 진실로 느껴지는 순간을 깨달음이라고 엄마는 그렇게 정의 내리고 싶어. 그때서야 너는 깨닫게 되겠지. 그러니, 무수한 말들은 다 필요 없는 말들 인지도 몰라.
엄마는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해보라고 권유하고 싶어. 학생으로서 공부할 때는 그렇게 쉽게 다시 오지 않거든. 중학교, 고등학교를 합치면 6년의 시간. 일단 해봐야 공부도 나의 적성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뭐든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거니까. 대학생이 되거나 아닐 수도 있겠지만, 너는 너의 공부를 하길 바래. 나라에서 정한 6년의 시간 뒤에는 정말 너의 공부를 하길 바래.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찾으면 열정은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이니까.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도 없고, 진정 교육을 아는 어른도 없어. 적당한 반항 정신을 가지며 삶도 살아가야 해. 하지만, 반항만 하며 삶을 살지 않으면 나만 멈춰 있게 되는 거거든. 이런 마음으로, 진지하게 공부를 바라보았으면 좋겠어. 머릿속에 계획을 그려 넣었으면 좋겠어. 게임할 시간과 놀 시간, 그리고 공부할 시간을 너의 통제권 안에 뒀으면 좋겠어. 그게 적당함을 찾는 방법이니까. 엄마도 철저한 계획주의자는 싫어. 즉흥적으로만 사는 것도 싫고. 그러니, 삶은 외줄 타기야. 너만의 적당함을 찾아가면서 너의 줄을 타야 하는 거야. 사람은 모두 다르니까. 누구도 같은 줄을 타는 법은 없으니까. 너의 롤모델을 찾는다 해도 너는 거기서 너의 또 다른 갈래를 찾아갈 테니까.
엄마는 네가 진정으로 행복하길 바란다. 그래서, 잔소리 같지만 엄마가 느지막이 깨달은 것들을 이렇게 늘어놓는다. 네가 진심으로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밖에 바라는 것이 없다. 네가 살아갈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밖에 없다. 그러니, 엄마도 어른이니까 지금을 잘 살아야겠어. 후회하지 않도록.
사랑한다,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