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민 Feb 10. 2022

교복에 대하여

(사춘기) 아들과의 동고동락(1)

나에게도 멀 것만 같았던 교복 시즌이 찾아왔다. 예년과 같이 평범한 겨울방학을 막 끝마쳤을 뿐이었는데 분주함은 쓰나미급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중학교 배정통지서를 나눠준다고 한 날, 점심을 먹던 도중 스미싱으로 의심되는 문자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학교에 배정 등록을 하러 가기 전에 링크를 눌러 교복에 대한 사전 체크를 당부하는 안내 메시지. 입학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도착한 문자 메시지를 보며 엄마들은 다들 링크를 누르지 못하고 서로 의견들을 교환하기 바빴다. 요즘 스미싱 사기가 얼마나 극성을 부리던가. 나의 신상 정보뿐만 아니라 아이의 신상 정보까지 다 파악하고 문자를 보내는 통에 이제는 먼저 의심부터 하고 본다. 더더군다나 문자 메시지가 도착한 시각이 제각각이어서 이런 의심은 확신으로 물들고 있었다. 아직 메시지를 받지 않았던 나는 '언제 아이들이 졸업한다는 정보까지 빼낸 거야?', 라는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아이의 배정 중학교에 이미 큰 아이를 보내고 있는 선배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내 스미싱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선배 엄마로부터 중학교에서 발송된 문자 메시지가 맞다는 말에 안도했고 자신은 이미 선택했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12시가 훨씬 넘은 시각이었는데 스미싱 진위 여부 때문에 또 시간을 보낸 터였다. 나는 평온하게 점심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곧 아들의 하교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스미싱을 의심했던 엄마에게도 스미싱이 아니라는 말을 전달했다. 그러던 중 또 하나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처럼 스미싱 사기로 오해하는 엄마들의 우려를 알고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문자 메시지를 학교에서 보낸 것이었다. 모르긴 해도 빗발치는 전화를 받느라 애 좀 먹었던 모양이었다.


며칠 전, 아들에게 학교에서 배정통지서를 나눠준다고 하는데 엄마랑 같이 가야 하는지를 물었었다. 사실, 엄마랑 같이 가겠노라는 대답을 들으리란 기대는 하나도 하지 않았으나, 낯선 중학교에 처음 가야 하는 길이니 동행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전달하기 위함이었고 엄마인 나도 처음이었으니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의논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아들은 좀 조숙한 편인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나와 손을 잡고 가다가도 놀이터나 친구를 만날 법한 장소에 다다르면 조용히 자신의 손을 빼곤 했다. 이유를 물어보면 친구들이 볼까 봐 부끄럽다는 거였다. 엄마로서 서운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아들이 커가고 있다는 생각에 아들의 생각을 늘 존중해 주었다. 그러던 아들이 6학년이 되자 친구들이 제 일 순위가 되었고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지위보다 한참을 뒤로 밀려나야 했다. 뭐든 처음은 아픈 법. 또 한 번 쓰라렸다. 독립적으로 키우고자 하는 마음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었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그냥 아무 일도 아닌 일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만 해도 늘 '집돌이'라 걱정했을 때를 생각하면 자율적으로 친구들을 만나는 지금의 독립적인 모습이 마냥 좋아야 할 텐데, 모든 일이 그렇듯 적당함을 넘어서면 걱정스럽고 마음이 마냥 좋지는 않은 것이다. 사실, 적당함의 선도 잘 모르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엄마가 된 이상 나는 평생 이런 위태로운 줄타기 위에 내 감정을 올려놓아야 할 것이라는 사실만은 명징하게 알고 있었다. 지금은 염려를 조금 내려놓고 아들이 친구들과 잘 사귀는 모습을 응원해줘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아들이었으니, 아들이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친구들이랑 가겠다고 하는 대답을 듣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으리라. 한편으로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부모가 꼭 가야 한다는 말은 없었으니 아이가 가도 상관없다면, 하교 후에 곧바로 친구들과 이동하는 편이 나을 것도 같았다. 이런 순간이 오면 내가 클 때는 어땠었지 하며 기억을 더듬곤 하는데,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전부 선명하게 나는 편은 아니지만, 나도 웬만한 일은 부모와 동행하지 않고 혼자서 해냈었던 것 같았다. 부모는 정말 필요할 때 짠 나타나서 도와주고 빠지면 될 것 같았다. 그 시절 내게는 그렇게 짠 나타나 도와줄 부모가 없었으므로 일찌감치 애어른이 되어야 했었다. 그 때문인지 나는 적당함의 선도, 도와줘야 하는 경계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니, 매번 아들에게 의견을 구한다(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한 가지 터득한 방법이 있다면, 고민이 될 때는 내 잣대로 판단하지 말고 아이의 의견을 물어보면 된다는 거였다. 그러면 의외로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스스로 하겠다는 말을 해주면, 내심 좋아하면서 아들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편이다. 그러면서, 바란다. 언제든 필요한 순간에 부모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아들로 커 나가길.


아들이 알아서 한다기에 아무 생각 없이 나의 일과를 보던 평범한 일상 도중, 그것도 점심시간에 그런 문자 메시지를 받게 되자 나는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알 수가 없는 사태에 이르렀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엄마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느라 이미 밥맛은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없었다. 밥 먹는 도중에 링크까지 들어가서 처리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므로 나는 서둘러 밥을 대충 씹어 삼켰다. 먹은 것도 아니고 안 먹은 것도 아닌 상태로 나는 점심 먹기를 중단했다. 아들의 하교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코로나19로 하교시간이 빨라진 탓도 있었다). 아들이 중학교에 도착하기 전에 서둘러 링크를 열고 무언가 선택 사항을 해결해야만 했다. 조급증이 밀려왔다. 그것은 딸이 아닌 아들인 때문도 있었다.


링크를 열고 들어갔더니 학교주관 교복을 선택할 것인지 제로 페이로 지원금을 받을 것인지 선택하는 페이지가 나타났다. 또 고민이 시작됐다. 학교주관 교복을 선택하면 지원금이 바로 교복값으로 쓰이게 되므로 무조건 1세트를 구매하게 되어 있었다. 학교주관 교복을 선택하면 배정 등록을 한 아이들이 현장에서 바로 치수를 재고 치수에 맞는 교복을 아이들에게 보내는 방식인 것 같았다. 당일에 모든 것이 끝나는 시스템이었다. 교복을 맞추러 별도로 매장을 가야 되나 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학교에서 알아서 해준다니 엄마로서 얼마나 편한 시스템인가 싶었다. 기본 품목 옆에는 선택 품목이 있었고 '희망자만 구입'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생활복과 기타 옷에 대한 품목이 가격과 함께 표 형식으로 적혀 있었다. 선택 품목을 모두 구매한다는 가정하에 가격을 모두 합해 보았더니 기본 교복 가격보다는 쌌지만 거의 맞먹는 금액이 나와서 놀랐다. 선배 엄마들로부터 교복보다는 생활복을 더 많이 입는다고 들었었기에 그렇다면 생활복은 1벌이 아니라 2벌 정도는 필요할 것이었기에 추가 부담금에 대한 부담이 꽤 크다는 것을 알았다. 이전에 학부모들은 이 많은 금액을 모두 자비로 부담해야 했을 것이다. 나는 지원을 받게 되었으니 분명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었지만, 어떤 정보도 없던 상태라 당연히 100% 지원받을 줄 알고 있다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금액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제로 페이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선택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는데 좀 전에 큰 아이를 중학교에 보낸 선배 엄마로부터 자신은 제로 페이를 선택했노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번에 둘째 아이를 중학교에 보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왠지 그 선택에 신뢰감이 들었다. 제로 페이를 선택해서 필요한 물품만 구입하는 게 현명한 일일까? 교복 물려주기 행사 같은 것이 있다고 들었는데 교복을 저렴하게 따로 구입하는 방법을 이용해야 하는 것일까? 왠지, 안내문에는 정해진 정답, 즉 학교주관 교복을 선택하라는, 그 길이 가장 편하고 좋다는 것을 안내문만을 읽고서도 알 수 있었으나 처음이었고 아는 것이 전무했기에 다른 이들은 어떤 선택지를 선택할까 궁금했고 어떤 선택지를 선택해야 현명한 것인지 알고 싶어졌다. 머리가 묵직해지며 아파오고 있었다. 사실, 6학년 엄마들끼리 대화를 나눠봐야 답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그녀들도 다 나처럼 처음 겪는 일일 테니.


자유는 이런 것 때문에 어려움을 동반한다. 선택권을 주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거 아니냐는 항의가 쏟아지고 선택권을 주면 이런 갈등의 시간 때문에 괴롭다. 무엇을 선택해야 잘 선택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순간들이 늘 어렵다. 첫째를 키우다 보면 모든 게 처음이니 이런 순간들이 더 힘들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비교에 길들여졌기 때문에 이런 선택이 힘들지도 모르겠다. 누구는 무얼 선택했고 누구는 무얼 선택했다는 말들. 선택으로 인해 돌아온 결과에 대한 찬양론. 선택을 잘 한 엄마들의 의기양양한 모습들. 비단, 이런 결정들 뿐만 아니라 아이를 키우면서 선택하게 되는 모든 과정들이 이런 도마 위에 오르곤 한다. 누구보다 뒤처지지 않고 싶은 것이 보편적인 심리인지라 모든 선택의 순간에서 남들이 옳다고 할 것 같은, 그것보다는 조금 더 나을 것 같은 선택을 하고 싶어 하는 것 때문에 고민이 생기는 것 같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런 선택은 절대로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오류 속에 계속 빠지는 걸 보면 나도 이미 비교라는 틀에 맞춰줘 버린 한 사람이라는 사실만을 분명하게 느낀다. 마음과 생각은 늘 삐걱거리며 따로 논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제로 페이를 선택하고 필요한 물품만 구입하는 현명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교복을 맞춰봐야 거의 입지도 않다가 졸업 사진 찍을 때에서야 입게 된다는 교복을 굳이 맞추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자주 입게 될 생활복을 여러 벌 구입하는 편이 지원금을 현명하게 쓰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자주', 라는 단어의 문제였다. '전혀' 였다면 이런 고민조차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선택 품목이 비싼 가격과 함께 적혀 있지 않았더라면 더더욱 이런 고민은 없었을 터였다. 거의 입지 않는다는 말은 입기는 한다는 말이었으므로. 자주 입는다는 말은 여러 벌이 필요하다는 말이었으므로. 완전히 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이었다. 교복을 물려받을 곳이 있거나 장터에서 싼 값에 구입할 자신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머리를 여러 번 굴린 나는 쉬운 방법을 따르기로 했다. 굳이 나에게 선택권을 주었지만, 나는 학교주관 교복을 선택하는 것으로 나의 의무를 행사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 같았다. 그저 정해진 루틴대로 따르면 편안함이 주어졌다. 나의 선택으로, 아이는 학교 배정 등록과 동시에 자신의 교복을 받아 들고는 집을 향해 돌아오게 될 것이다. 왠지, 이 선택은 미련한 선택 같았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될 선택과도 같았다. 지원금 30만 원은 그렇게 가장 입지 않게 될 교복에 사용되는 것으로 낭비되었다. 나는 시간의 압박을 받으며 최종 선택을 전송하는 것으로 나의 혼란스러운 사태를 일단락했다.


아들은 엄마가 교복을 신청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다음에 든 걱정은 이것이었다. 미리 이런 상황을 알려주었다면 대비할 수 있었을 텐데 아들이 등교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으므로 의사소통의 문제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여러 번 전화 시도 끝에 하교한 아들과 통화가 됐다. 아들은 친구들과 중학교에 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주변에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최대한 짧게 용건만 전달하고 싶었던 나는 교복에 대해 얘기했다. 아들로부터 선생님께 들어서 알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안심이 되었다. 선생님이 미리 친절하게 알려주셨다면 문제 될 게 없어 보였다. 아들은 엄마가 하려던 말을 이미 알아들은 것이나 진배없다고 생각했다. 교복 치수 잘 재고 교복 사이즈 넉넉하게 잘 받아오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쓰나미 같은 시간이 흘러갔고 다시 평온한 시간을 누린 지 얼마나 되었을까. 다시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나도 교복 신청했어?"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란 말인가? 좀 전에 나와 통화한 아들은 뭐 외계인이었던가?

나는 밀려오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지그시 누르며 평정심을 찾고는 아들에게 말했다.

"응. 맞아. 신청했지. 추가 구매할 옷도 있는 거 같던데. 생활복 거기서 구입 가능하다고 하면 그것도 신청해. 카드 결제 필요하면 엄마 부르고."

"알았어. 엄마."

아들은 참 대답은 잘한다. 아마도 아들을 키워본 엄마들이라면 나의 '대답은'이란 말의 속뜻을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대답만 보면 얼마나 똑 부러진 아이라는 생각이 드는지.

아이들이 몰려들어 대기시간이 길어졌는지 아들은 꽤 오랜 시간을 그곳에 머물다가 교복이 담긴 비닐 가방을 자랑스럽게 들고는 집에 돌아왔다. 

"활동복은 예비 소집일 날 사면 된대." 아들은 현관문에 들어서며 당당하게 전달사항을 전했다.

고생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 정말 중학생이네 하는 생각도 들었고. 혼자서 교복까지 받아 들고 온 아들이 대견해 보였다(요즘 한창 귀찮음에 빠져 있기 때문에 치수를 재고 교복을 입어 보는 일련의 행위들이 아들에게 굉장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일 것이라는 것을 나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예전처럼 교복을 맞추지 않고 기성복으로 판매해서 이런 수월함이 가능해진 것도 참 좋아졌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받아온 교복을 입어 보자고 했더니 아들은 대기하느라 지쳤다며 저녁에나 입어보겠다고 했다. 

저녁에 교복을 입혀 보고 사이즈를 고심하다가 수선할 바짓단을 접어 표시하고는 다시 벗어놓게 했다. 바짓단의 수선 위치를 표시하려고 아들의 발목 부근에 내 손이 여러 번 닿을 수밖에 없었는데, 아들은 간지럽다며 꺄르륵거리느라 위치 잡기는 애를 먹어야 했다. 이럴 때 보면 아직 어린아이 같았다. 덕분에 나도 웃었다. 모든 것이 거기서 끝이 났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때 우연히 도착한 아들의 친구 엄마 메시지. 그 메시지 속 사진에는 버젓이 생활복 사진이 있었던 것이다. 분명, 아들은 예비 소집일 날 구입하면 된다고 했는데. 나는 아들이 들고 온 서류 봉투 속의 안내문들을 꼼꼼히 읽기 시작했고 예비소집일 날 구입해야 한다는 품목이 체육복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아들은 체육복이 활동복, 즉 생활복이라고 착각했었던 모양이었다. 나도 안내문을 자세히 읽어 보지 않았다면 헷갈릴 부분이었으므로 분명히 엄마가 필요하면 카드 결제하러 학교에 가겠다는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 알아온 아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불현듯 그때 딸이었다면 안 그랬겠지, 하는 생각이 스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생각 같아서는 다음 날 아들을 다시 학교에 보내 생활복을 추가 구입 해오라는 임무를 부여하고 싶었지만, 아들이 가게 되면 하교 후에나 가야 했고 그렇다면 또 긴 대기줄에 서야 할 터이기에 나는 지금이 부모가 짠 나타나 해결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중학생 예비 학부모가 된 그녀들은 그날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야 했다. 갑자기 날아든 문자 메시지를 스미싱이 아닌가 의심해야 했고, 선택 사항에 고민했고, 3년 동안 입어야 할 교복 사이즈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반면, 아이는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학교에 다녀온 경험만이 뿌듯했고 정작 받아온 안내문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중학생이 되는 것은 분명 나의 아이였는데, 엄마들만 부산한 하루였다. 한 엄마가 다 늦은 저녁에 이런 감정을 토로했을 때, 난 얼마나 공감을 했던가. 아이를 키우게 되면 참 별거 아닌 일인데 신경 써야 할 일들이 참 많다. 사실, 내 앞에 일도 처리하기 힘든데 말이다.


다른 학교에 배정된 아이의 엄마와 대화를 나누다가, 교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녀 또한 지원금이 잘 입지 않게 될 교복 구입에 들어가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실상, 그 학교는 체육복 등교마저 허용한 학교여서 시간표에 체육이 들은 날은 체육복을 입고 가고 나머지 날은 생활복을 입고 가기 때문에 교복을 입힐 일이 거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자, 혼자서만 생각해 오던 교복에 대한 불합리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의 머릿속에서는 '지원비를 바닥에 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별로 입지도 않게 될 교복값에 지원비가 낭비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실질적인 부분이 필요해 보였다. 생활복은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을 테지만, 그 때문에 교복을 입지 않게 되는 일이 발생했음에도 몇 번은 입을 일이 있기 때문에 교복을 구입해야 하는 현실. 차라리, 교복을 단일화해서 학생들이 활동하기 편한 생활복으로 모두 통일해 버리는 것은 어떨까 싶었다. 이미 그런 학교도 있었다. 회사원들도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일이 별로 편한 일은 아닐 텐데, 공부를 하고 뛰어 놀기까지 해야 하는 학생들이 셔츠와 재킷에 갇혀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그 많은 지원 예산들이 꼭 필요한 곳에 쓰인다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


옷장에 걸린 올해 중학생이 되는 아들의 교복을 바라보며 나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10년 후의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