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먼저 결혼할 줄은 몰랐어.

by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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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만난 고등학교 친구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나에겐 미술학원에서 입시를 같이 한 너무나 여성스럽고 청순한 친구 2명이 있다.

친구들과 달리 나는 짧은 커트 머리에 다소 선머슴 같은 스타일이어서 아마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면

결혼과는 어울리지 않는 독립적인 여성의 모습을 하고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 나의 커트머리는 어릴 적 미용실 대신 엄마의 손으로 머리 손질을 당했던

그 시절의 연장선이었을 뿐 나의 내면세계는 누구보다 부드럽고 여성스러웠다는 걸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내면세계는 내면세계였을 뿐 눈에 보이는 겉모습에 의해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선머슴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내 머리는 그 꼴로 만들어 놓고 걸음걸이가 팔자라며

당시 찾기도 어려웠던 발레 학원을 등록시키려고 했다가 내가 문 앞에서 도망쳐서 못 시킨 걸 후회하셨다.

만약 내가 머리를 길렀더라면 그 문을 두드리는 게 더 자연스러웠지 않았을까.

어쨌든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사는 모습이 친구들에게는 적잖이 충격적이었나 보다.

두 친구는 아직 미혼으로 결혼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아 보였다.


나도 결혼을 일찍 한 편이 아니라 먼저 결혼 한 나의 친언니와 친구들에 대해

항상 궁금증을 가지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막상 내가 하고 보니 결혼이 뭔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에 가듯이 자연스런 인생의 진급 같은 거였다.

중학교는 필수과정이라 반드시 가야되지만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오로지 선택의 문제였으므로 궁금했던 것이다.


결혼 전의 나의 20대는 젊음을 불태울 만큼 열정적으로 놀아 본 것도 아닐뿐더러

대단한 연애를 한것도 아니였다.

젊음을 불태워도 시원찮을 판에 실패한 입시의 후폭풍으로 처량한 방황의 시기였다.


나는 삶에 대해 의문점이 생길 때면 항상 집 앞 가까이 있던 교보문고로 향했다.

그곳에서 책 내음 맡으며 책장을 넘겨보는 것이 나의 유일한 휴식이자 낙이었다.


지금 결혼하고 보니 뭐 그리 인생을 심각하게 고민했을까 싶다.

어차피 살아보면 다 거기서 거기인데 말이다.

그냥 그 시간에 아무 생각 없이 놀기라도 했으면 추억이라도 남겼을 텐데.

하지만 20대의 그 방황했던 시절이 지금의 내가 되는 비료가 되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때 뿌린 비료가 거름이 되어 지금 더 단단한 내가 될 수 있었다.


결혼을 통해 나의 삶이 바뀌긴 했지만 내가 바뀐 건 아니었다.


20대의 거름과 30대의 가지치기를 통해 40대의 지금은 더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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