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청순가련한 미혼 친구는 항상 묻는다.
도대체 어떤 남자랑 결혼해야되는 거야?
친구들이 결혼한 나를 만나러 왔을 때 나의 남편을 보고 아마 더 의문을 가졌을 거다.
‘쟤는 도대체 남편의 어떤 점이 좋아서 결혼한거지?’
눈 앞에 나의 남편을 보고도 결혼에 대한 의문점을 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남편은 술을 좋아하는 데다가
말도 세련되게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너랑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친구는 걱정이 되는지 영 마음이 불편한 듯 얘기했다.
하지만 나는 그 상황이 너무 재밌기만 했고
친구의 걱정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신랑은 청순가련한 나의 친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난 도대체 왜 이 남자와 결혼 한 것일까.
서른이 넘어 임용을 준비하던 나는
나의 체력적 한계와 공부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내가 갈 길은 이 길이 아니라며 빠른 손절을 했었다.
그렇게 서른을 넘기고 보니 아무것도 이뤄진 것이 없는 나이만 먹은 30대 노처녀가 되어 있었다.
29에서 30으로 앞자리 하나만 바뀌었을 뿐인데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주위의 말을 들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아무런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세상과 단절된 채 서른을 맞이하였었다.
포기는 빠른 게 좋다는 걸 그때 느끼고
나는 불행히도 남들이 시집 갈 나이에 연애를 해보겠다며 뒷북을 치고 있었다.
모든 게 다 때가 있다고 했던가
옛말은 정말이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남들 공부할 때 공부해야 되고
남들 연애할 때 연애해야 되는 것은 인생의 진리라는 것을
또 뒤늦게 깨달아 버렸다.
그렇다고 실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하기로 했다. 인연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른 넘은 노처녀가 어디 가서
인연을 만들 수 있는 걸까.
동호회는 취향이 안 맞아서 못가겠고
그렇다고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라
정말 어디가면 남자를 만날 수 있는 건지
지나가는 누군가에게라도 간절히 묻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서른을 넘기고 만난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었다.
남편은 예전 유행어로 표현하면 ‘엄친아’ 다.
하지만 나의 남편은 말 그대로 엄마 친구 아들이다.
그당시 유행하던 ‘엄친아’의 이미지와는 전혀 거리가 먼
엄마의 초등학교 동창 친구 아들.
나의 엄마와 남편의 엄마는 동창 모임에서
노처녀 노총각을 구원해 줄 기가 막힌 계획을 짜셨던걸까.
여튼 나는 출생과 결혼까지 엄마의 도움으로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엄마 친구 아들은 과연 날 행복하게 해줄
백마 탄 왕자님 일까.
아니면 진짜 엄친아를 만났으면
난 행복한 공주님으로 살았을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만약 결혼을 했다면
이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