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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splay Sep 13. 2018

첫 방송의 악몽

잊을 수 없는 흑역사


2017년 7월 1일


 춘천에서의 첫 방송을 기억하면 너무도 부끄러워 '이불킥'을 할 정도다. 첫 방송 일정이 잡히고 몇 번의 리허설을 거쳤지만, 리허설을 거듭할수록 떨리는 마음은 증폭되었다. 이전 회사에서 생방송 경험이 있어 떨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는데, 아침부터 식사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새로운 직장에서 기본 이상의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과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공포 같은 것들이 나를 압박했다.


 뉴스 생방송 중에는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정말 많다. 카메라에 비칠 때의 내 표정은 물론, 자세, 목소리, 강조점, 전달력, 거기에 조정실에서 인이어로 은밀하게 들려오는 콜 사인에도 적절히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중간중간 시간을 재서 뉴스 속도를 조정하기도 해야 하고, 단신을 전할 때는 영상 자료와 리딩의 속도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이 외에도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둔 채로 결코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된다.


 첫 방송을 준비하기에 앞서 분장을 받았다. 이날 분장실에서 찍은 셀카를 보니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다. 첫 방송을 한다고 깔끔하게 자른 머리는 왜 이렇게 어색해 보이는 건지. 분장을 마치고 보도국에서 뉴스 원고를 받은 뒤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뉴스 스튜디오로 향했다.


 스튜디오에는 내 첫 방송을 응원해주기 위해 선배가 와 계셨고, 국장님께서는 이 각도 저 각도에서 기념사진을 찍어주셨다. 모든 회사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순간이라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첫 방송을 앞두고 앵커석에 앉아


 앵커석에 앉아 오른쪽 귀에 인이어를 꼽았다. 인이어에서는 생방송을 앞둔 조정실의 분주함이 느껴졌다. 앵커석 앞쪽 모니터에는 뉴스 시작 시간까지 30분도 채 남지 않았다는 것이 표시가 되었고, 나는 프롬프터를 최종적으로 수정하고 스스로 시뮬레이션을 하며 최종 연습했다. "그래, 연습한 대로만 하자."


 인이어에서 방송 시작 10분 전임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메이크업을 다시 확인하고, 굳어 있는 허리를 곧게 펴 자세를 다잡았다. 이제 정말 나 자신을 믿고 할 수밖에 없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나는 나를 믿고 제 역할을 다할 수밖에. 순간 무인도에 혼자 남겨진 기분까지 들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5, 4, 3, 2, 1! 이윽고, <뉴스데스크 강원>의 시그널이 울렸고, 뉴스가 시작되었다. 15분 남짓한 강원 지역 뉴스. 주말 뉴스였기 때문에 앵커 1명이 모든 뉴스를 전달해야 했다. 기자 선배들이 더운 여름날에 몸소 발로 뛰어 만들어 낸 소중한 취재물을 조금이라도 잘 전달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최대한 성실하게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뉴스 초반 서너 개의 앵커 멘트와 리포팅 기사,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주어진 분량을 연습한 대로 나름 소화했다. 리포팅 기사가 나가는 중간중간에는 긴장한 목을 달래기 위해 텀블러에 담아 온 물도 마시는 조금의 여유도 있었다.

 

 뉴스 후반 부에는 여러 개의 단신 뉴스를 연달아 리딩해야 한다. 준비한대로 나름 단신도 잘 리딩했다(고 생각했다). 카메라 워킹도 좋았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멘트까지 무사히 마쳤고 그렇게 생방송이 종료되었다. 무사히 마쳤다고 스스로 안도한 것도 잠시, 스튜디오로 들어 온 선배들이 '텀블러' 이야기를 했다.


 물을 마시고 내 옆에 놓아둔 텀블러가 화면에 잡힌 것. 뉴스 후반 부에 카메라 위치를 중앙으로 조정하는데 이때 텀블러가 그대로 화면에 나간 것이다. 텀블러를 화면에 잡히지 않게 조금 더 멀리 두거나 바닥에 내려 두었어야 했는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방송을 하는 동안에는 화면에 텀블러가 잡히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조정실에서 지켜보고 계시던 선배들은 내가 너무 긴장해 더 큰 실수를 할까 봐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나는 방송이 끝나고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누가 보면 "뉴스에서 텀블러를 PPL하나?" 싶을 정도였다.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었다.



 부족함이 많았던 첫방.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식은땀이 나고 온몸이 떨린다. 이 글을 쓰면서 이날의 영상을 다시 한번 찾아봤다. 오래 보지 못하고 꺼버렸다. 정돈되지 않은 목소리 톤, PPL 같이 보이는 텀블러, 담담한 척하지만 당황한 것이 티 나는 흔들리는 눈빛. 하하하. 이 영상 영원히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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