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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경 Aug 22. 2023

다시 사는 삶

2013년 2월 5일,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밤이었다. 힘겹게 들어 올린 눈꺼풀 사이로 옅은 전등 빛이 들어왔다. 오랜 시간 어둠에 갇혀 있던 터라 어둑한 병실도 눈이 부셨다. 눈이 빛에 익숙해지자 흐릿한 두 개의 형체가 점점 또렷해졌다. 엄마와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는 링거 바늘이 꽂혀 있는 내 손을 양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의식을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는지 감각이 곤두서있었다. 메마르고 거친 엄마의 살결은 내 살을 파고들었다. 오랜 시간 느꼈던 익숙한 아픔, 죄책감 그리고 슬픔이 온몸에 퍼져갔다.


 ‘엄마의 손이 이렇게 된 건 나 때문이지. 나를 키우느라. 견디느라.’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먼저 말씀하셨다. 흔들리는 목소리는 울음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네가 이러면 엄마가 어떻게 살아. 너 때문에 살았는데.”     


자살에 실패하고 만 하루 만에 깨어난 나에게 엄마가 가장 먼저 한 말은, 어린 시절부터 숱하게 들어왔던 말 중 하나였다.


‘아비 없는 자식으로 키울 수 없어서 이혼하지 못했다, 자식까지 속 썩이면 못 산다, 자식만 보고 산다, 보란 듯이 너희가 잘 커야 한다.’


내 존재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게 하던, 나를 옥죄이던 말을 죽음에서 빠져나온 순간에 듣게 되자 온몸이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엄마의 인생을 동정하면서도 버림받을까 봐 두려웠던 마음,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짓눌렸던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주먹을 쥐고 가슴을 내리치며 울부짖었다. 반항 한번 없이 자랐던 나는 처음으로 엄마를 향해 악다구니를 썼다.      


“제발 그 말 좀 그만해! 제발!”      


엄마 뒤에서 초라하게 서 있던 남편에게도 원망의 말을 쏟아 냈다.


 “왜 나를 살렸어? 왜? 죽게 놔두지!”     


비명을 지르고 발버둥을 치며 온몸으로 괴로움을 표현했다. 병원의 다른 눈들을 염두에 둘 만큼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다. 간호사가 달려왔고, 광분한 나를 진정시킬 방법은 약물밖에 없었다. 링거 줄을 통해 내 몸에 주사약이 들어왔고 잠시 후 다시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때 엄마는 병실에 없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엄마를 만나지 않았다. 엄마와의 일시적 단절은 의사의 처방이었다. 의사는 엄마가 치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날, 나는 병원에서 다시 태어났다. 서른두 살이었던 나는 한 살이 되어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했다. 수없이 넘어지며 좌절도 많이 했지만, 손 잡아주는 남편이 있어서 결국 일어섰다. 더 나은 길을 향해 걷고 있다.

넘어져 봐야 일어설 수 있고, 일어서야 걸을 수 있듯이 아팠던 상처는 점차 아물어 갔다.


지금은 엄마의 삶에서 분리되어 독립된 주체로서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엄마와 종종 전화하고 가끔 만나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엄마는 여전히 신세를 한탄하고, 온갖 감정들을 내게 쏟아 내지만, 난 엄마의 감정에 과몰입하지 않는다. 그저 들어줄 뿐이다. 통화가 끝나면 내 일상으로 돌아와서 해야 할 일들을 한다. 예전처럼 내가 엄마인 듯, 엄마가 나인 듯 경계 없이 하나로 지내지 않는다. 비로소 엄마의 감정과 내 감정을 구분할 힘이 생겼고, 진짜 내 모습을 찾았다.     


다시 태어난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내 아이가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내가 진정한 나로 살고 있듯이, 아이도 온전히 본인의 삶을 살아가기를 꿈꾼다. 나와 엄마의 지난했던 과오를 아이는 겪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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