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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경 Sep 21. 2023

영화 속 한 장면으로

S#1ㅡ네모난 작은 방(밤)

성인 여자 한 명, 성인 남자 한 명, 여자아이 둘.


 네모난 방. 30대 초반의 여자가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있다. 여자아이 둘은 한쪽 벽면에 몸을 바짝 붙인 채 서 있다. 서로의 손을 꽉 잡고, 누워있는 여자를 보고 있다. 누워있는 여자의 배 위에 올라앉아 있는 남자도 바라본다.      


 남자의 주먹은 바쁘다. 양손이 번갈아 가며 여자의 얼굴을 내리친다. 여자는 발버둥 치며 몸을 비틀어 보지만 소용없다. 꼼짝없이 잡혔다. 주먹을 바삐 놀리던 남자는 갑자기 멈춘다. 이제 끝났구나 싶었는데, 그건 주먹이 아파서 잠시 쉬는 거였다. 숨을 헐떡이는 남자, 지쳐 보인다. 그렇게 잠시. 남자는 양손으로 여자의 머리칼을 잡고 자신의 손에 한 바퀴 휘어 감아쥔다. 여자의 머리칼은 남자 손에 단단히 쥐어졌다. 남자는 다시 힘을 낸다. 손아귀에 잡힌 여자의 머리를 들었다가 방바닥으로 내리친다. 쿵. 쿵. 쿵.

 주먹도 아프지 않고 손쉬운 방법이라 신이 났는지 점점 빨라진다. 쿵쿵쿵쿵쿵. 옆집에서는 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그들의 집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경찰에 신고해 주는 사람도 없다. 누워있는 여자가 비명이라도 지르면 좋을 텐데 여자는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다. 여자의 눈물은 핏물과 섞여 방바닥을 적신다.    

 

 벽에 붙어 있던 여자아이 중 작은아이가 선 채로 오줌을 싸며 소리없이 운다. 겁에 질린 오줌이 가늘고 하얀 아이의 다리를 타고 흘러내린다. 뜨끈한 오줌이 큰 여자아이의 발에 와 닿는다. 큰 여자아이는 오줌을 싸지 않는다. 눈물도 내보이지 않는다. 몸의 모든 구멍이 움츠러들어 밖으로 무언가 나올 틈이 없다. 목구멍도 그렇다. 입은 벌려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큰 여자아이는 생각한다. 숨구멍도 완전히 닫혔으면 좋겠다고.     

 피와 눈물을 흘리며 누워있던 여자는 온 힘을 다해 큰아이에게 말한다.

 “저 병, 치워…. 어서….”      

 남자가 손 뻗으면 닿을 곳에 베지밀 유리병이 놓여 있다. 그 유리병이 남자의 손에 닿으면 지금보다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란 걸 여자도 큰아이도 알고 있다. 그러나 아이는 꼼짝하지 않고, 서 있다. 벽에 붙어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만 있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남자는 모든 힘을 여자의 머리 찧기에 쏟아 부었다. 힘이 고갈되어 갈 즈음 여자도 살아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는지, 남자의 팔목을 물었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손에 쥐고 있던 머리칼을 푼다. 짓누르고 있던 여자의 배에서 내려와 방바닥을 뒹굴다 잠이 드는 남자.     


 여자는 기어서 방을 나갔고, 큰 여자아이도 그제야 발을 떼어 여자가 누워있던 자리 가까이로 몸을 옮긴다. 내려다본다. 여자에게서 떨어져 나간 수많은 머리카락이 눈물과 핏물에 엉겨 붙어 방바닥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듯하다. 늦게나마 큰 여자아이는 유리병을 들고 방을 빠져나갔다. 여자는 식탁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며 피를 닦아 내고 있었다. 아이는 여자 곁으로 다가간다. 이내 걸음을 멈춘다. 더는 가까이 가지 못한다. 여자는 아이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부릅뜬 여자의 눈에서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눈물이 , 뚝,  떨어졌다. 여자는 서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넌 엄마가 맞고 있는데 구경만 해?”

 “왜 유리병 안 치웠어?”

 “내가 죽으면 좋겠어?”

 “사는 게 정말 지긋지긋해.”    


 여자는 남자에게 받은 상처를 아이에게 돌려주고 있었다. 아이는 고개 숙인 채 울며 말한다.


 "잘못했어요. 엄마, 죄송해요.”  

   

 열 살의 아이는 놀라고 무서웠던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가슴 깊이 넣어 두었다. 미안하고 두려운 마음만 꺼내었다. 잘못을 빌었다. 오랫동안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그 애는, 모든 불행한 일을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어른이 되었다.      


 나는 아직도 그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모님의 수많은 싸움 장면들은 세월에 희석되어 흐릿해지거나 사라졌는데, 이 장면만큼은 여전히 꿈속에서 재현되고 있다.

 직사각형의 기다란 방, 그 끝에 힘없이 내쳐진 엄마, 흰 런닝과 팬티차림으로 엄마의 배 위에 올라가 있는 아버지, 반대편 벽에 들러붙어 있던 동생과 나, 동생이 흘린 오줌이 방바닥 장판에 번져 내 발에 닿는 그 촉감, 나를 바라보던 서슬 퍼런 엄마의 눈빛.

 잊을 수가 없다. 잊히지 않는다. 잊고 싶다. 영화에서처럼 기억의 어떤 장면을 지울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날을 꼽을 것이다.      


 이제 그만 아버지를 용서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 미래를 위해 과거를 놓아야 한다는 책 속의 문장들. 그것들을 받아들이던 중이었다. 마음이 조금, 아주 조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꺼내면서 나는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왔다. 나는, 여전히 아버지를 미워하고 싶다. 나는, 아직 아버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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