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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경 Sep 17. 2023

지워지지 않는 상처

머리에 작은 상처가 하나 있다. 머리카락이 시작되는 이마 끝에 새끼손톱만 한 구멍이 나 있는데, 까까머리를 하면 드러나는 땜통 같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있는지도 모르지만 나 혼자 신경 쓰이는, 거울을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상처다.      


여덟 살의 여름밤. 엄마가 새로 사 주신 원피스 잠옷을 입고 자고 있었다. 깨끗한 흰색 바탕에 파스텔 톤의 동그라미가 방울방울 그려져 있었고, 치마 끝단과 소매에 프릴이 달린 잠옷이었다. 잠옷을 상세히 기억하는 건, 내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잠옷이었고, 머리에 상처가 생긴 날 이후로 다시는 입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익숙하지만 태연해지지 않는 소리에 주저 없이 잠에서 깨어났다. 아버지와 엄마가 다투는 소리. 아버지의 목소리는 이미 살(殺)기를 품고 있었다. 그 음성이 가지는 의미를 알고 있었기에 도망치고 싶었다. 도망치기 위해 몸을 움직였으나 몇 발짝 가지 못하고 멈추어 서게 되었다. 무언가 머리로 날아왔고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잠시 후, 하얀 원피스 위에 붉은 핏방울이 방울방울 번져갔다. 엄마를 바라봤다. 나를 본 엄마의 얼굴은 원피스 색보다 더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내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어서였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엄마를 향해 유리잔을 던졌다. 빗나간 유리잔은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고, 그 파편이 나에게 날아온 것이다. 파편의 일부는 피부를 긁고 지나갔고, 조금 큰 조각은 머리에 박히고 말았다.

공포에 짓눌려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무섭기만 했다. 나는 아버지가 몸서리치게 무서웠다.     

 

엄마는 나를 업고 동네에서 가장 큰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새벽이라 문이 열린 곳은 없었다. 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기사님께 응급실이 있는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가 달라고 말했다. 제일병원은 아버지로 인해 가게 된 첫 번째 병원이었다. 그 후로도 아버지 때문에 병원을 가게 되었다. 고2 겨울방학 때. 그리고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서른에.


응급실에서 머리에 박힌 유리 조각을 빼내고, 찢어진 살을 꿰매었다. 그때 내 머리를 꿰매주던 의사 선생님과 나눈 대화가 아직도 기억난다. 침대 위에 누워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의사 선생님은 계속 말을 걸어 주었다.     


 “이름이 뭐야?”

 “수경이요.”

 “몇 살이야?”

 “여덟 살이요.”

 “어느 초등학교에 다녀?”

 “00초등학교요.”

 “근데 너 되게 의젓하다. 너 같은 아이 처음 봐. 보통 애들은 여기 오면 울고불고 난리 나거든.”

 “선생님, 언제 끝나요? 저 괜찮아요?”

 “그럼, 괜찮지. 거의 다 끝났어. 예쁘게 꿰매줄게.”

 “바늘이랑 실로 꿰매고 있는 거예요?”

 “응.”

 “근데 왜 아무런 느낌이 없어요?”

 “수경이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잘 누워있어서 그런 거야.”

 “선생님, 저 괜찮은 거 맞죠?”

 “괜찮고말고. 자, 다 됐다.”     


은색 쟁반 위에 피가 묻어 있는 유리 조각이 올려져 있었다. 그제야 참고 있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파서 울었던 건 아니다. 시술은, 정말이지 전혀 아프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게 두렵고 힘든 일이었다.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집에 가야만 했다. 나는 겨우 여덟 살이었고, 엄마와 아버지는 내 보호자였으니까. 나는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새초롬한 새벽, 조용히 집에 들어갔다. 아버지는 코를 골며 주무시고 계셨다. 엄마와 나는 방 한구석에 조심스레 누워 불안한 잠을 청했다.

날이 밝고, 술이 깬 아버지는 방 안에 흩어져 있는 유리 파편과 널브러진 살림살이를 치웠다. 그리고 내 머리에 붙어있는 두터운 반창고를 보았다. 엄마에게 지난밤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버지가 내게 말씀하셨다.     

 “그냥 가만히 있을 것이지. 왜 도망가서 이 꼴이 됐어.”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다. 아버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게 미안해하지 않는다. 그 어느 때도 미안해한 적이 없다.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면 18년 동안 우리에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아버지의 폭력은 내가 고3 때 멈춰졌다. 그때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지 않았더라면 폭력은 더 이어졌을 것이다.      


 꿰맨 자리에서 더는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았다. 어릴 때는 그 자리가 너무나 하고 커 보여서, 아버지가 그랬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될까 봐 창피해서, 검정 사인펜으로 칠하고 다녔었다. 몸이 자라면서는 상처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져서 까맣게 칠하지 않는다. 머리카락의 가르마 방향으로 간단히 가릴 수 있으니까.     


상처는 어떻게든 가려지지만, 가려진다고 해서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평생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상처가 내 현재와 미래에 또 다른 상처를 내지 않도록 애쓰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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