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동생들을 만났다. 만나자고 연락한 건 언제나 그렇듯, 첫째인 나였다. 동생들은 내게 먼저 만남을 제안하지 않는다. 나이 터울이 꽤 나서 그런지 나를 편히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나 역시 동생들보다는 친구들이 더 편하지만, 나이 먹을수록 동생들도 친구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가장 터울이 적은 첫째 동생은 내가 여섯 살 때 집에서 태어났다. 엄마가 동생을 낳는 동안 양철 대문 밖 벽에 기대어 멀뚱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엄마의 비명과 함께 동생이 태어났다. 문틈으로 안을 빼꼼 들여다보니 당황한 기색의 어른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후 구급차가 도착했고 엄마는 병원으로 실려 갔다. 하혈을 심하게 했고 의식이 없어서였다. 아버지는 곁에 없었다. 어디선가 술을 마시고 계셨다.
동생이 속 썩일 때마다 엄마는 말씀하신다. 저건 태어날 때부터 속 썩이더니 여태껏 저런다고. 성격 좋은 동생은 그저 웃는 얼굴로, 그래도 내가 제일 예쁘지? 하며 엄마 팔짱을 끼고 헤죽거린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동생이 마음 쓰인다. 사고도 많이 치고 마냥 철없이 사는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있었던 것 같다.
첫째 동생이 태어나던 날, 사경을 헤매던 엄마. 딸이 태어나고 아내가 병원에 실려 갔는데도 어디선가 술을 마시고 있었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동생이 더욱 안쓰럽다. 나 역시 동생의 탄생에 큰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겨우 여섯 살, 우는 날이 더 많았던 날들을 보내는 중이었다. 동생에게, 미안하다.
둘째 동생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태어났다. 동생이 한 명 더 생겼다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오랜만에 보는 아기라서 마냥 신기하고 귀여웠다. 좋은 마음도 잠시. 바쁜 부모님 대신 동생을 돌봐야 하는 시간이 많아지자, 마음에 짜증이 자주 일었다. 분유를 타서 먹이고 트림시키고, 기저귀를 갈고, 안아주고 놀아주는 시간이 귀찮았고 부당하게 느껴졌다. ‘내가 왜? 난 엄마가 아니라 언니인데.’ 그럼에도 둘째 동생이 유난히 예쁘장해서 친구들에게 동생이 생겼다며 먼저 말을 꺼내곤 했다.
둘째 동생이 태어나던 날도 아버지는 집에 계시지 않았다. 또 딸이라는 실망감에 어디선가 밤새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집에 들어오셨다. 엄마도 실망이 컸을 거다. 15년 만에 아들을 낳겠다고 결심한 엄마는 남몰래 엄청난 노력을 하셨다. 내게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우연히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장롱 깊숙이에서 아들 낳는 비법이 적혀있는 책을 발견한 적이 있다. 그 책에는 난자와 정자가 만나야 하는 시간을 비롯해 다소 충격적이었던 그림까지 담겨 있었다. 책뿐만 아니라 고급 가죽 케이스에 담긴 태교 테이프 세트도 있었다. 처음 그것들을 발견했을 때, 조금 불쾌하고 많이 슬펐다. 나는 딸이니까. 우리는 딸이었으니까.
둘째 동생은 아들 태교로 태어나서 그런지 남성적 성향이 강했다. 인형 놀이보다 칼싸움을 좋아했고, 예쁜 것보다 편한 것을 좋아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다. 머리에 핀 한번 꽂은 적 없고 화장도 거의 안 하고 다닌다. 대부분의 날, 바지만 입는다. 무뚝뚝한 성격으로 마음을 잘 표현하지는 않지만,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은 어느 누구보다 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엄마는 둘째 동생을 보며 말씀하시곤 한다. 가장 든든한 자식이라고. 둘째 동생은 우리 집에서 아들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막내 동생은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태어났다. 그날도 아버지는 집에 계시지 않았다. 엄마가 출산하기 전부터 이미 딸임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또 여자아이가 태어나니 아버지의 실망감은 말할 수 없이 컷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막내 동생이 생겼을 때, 둘째 동생 때와는 마음이 달랐다. 동생이 두 명일 때와 세 명일 때의 마음가짐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엄마가 또 임신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을 때, 몰래 많이 울었다. 화가 났다. 부모님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아들이 뭐라고, 있는 자식이나 잘 키우지, 죽도록 싸우면서 왜 이렇게 애만 낳고 있는지. 부끄럽고 징그럽게 여겨졌다. 첫째인 내게 세 명의 동생은 부담이라는 것을 모르는, 나는 안중에도 없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점점 동생들이 짐처럼 여겨졌고, 내 삶을 한탄하느라 막냇동생의 출생을 축복하지 못했다. 그 마음은 곧 죄책감으로 밀려왔다. 막내 동생이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이 아프게 태어났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동생이 분유를 먹으면 코로 분유가 흘러나왔다. 입천장의 목젖과 가까운 연구개가 갈라진 구개열이었다. 두 돌이 되기 전에 수술받았지만 잦은 중이염을 앓았고, 발음이 명료하지 않았다. 다행히 입술이 갈라진 구순구개열은 아니라서 외형상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사람들은 네 자매 중에 막내가 제일 예쁘게 생겼다고 말하지만, 막내는 엄마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우리 집의 장녀, 첫째인 나는 네 자매 중 가장 눈물이 많고 나약한 사람이다. 엄마의 바람대로 동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 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장녀 콤플렉스에 빠져 동생들의 작은 언행에 서운해하고 서러워했다. 나의 수고와 힘듦을 인정해 달라고 무언의 압박을 했다. 지질한 피해의식으로 어린 마음들을 불편하게 했던 날들이 많다.
언제부터인가 동생들을 만나면 자꾸만 운다. 만나기 전에 울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결국은 눈물을 쏟고야 만다. 짐 같다고 여겼던 아이들이 너무나 예쁘게 자라서 보란 듯이 내 앞에 앉아 있다. 기저귀를 차고 젖병에 우유를 먹던 어린 동생들과 맥주를 마시며 삶을 나누고 있다니. 그게 신기하고, 기특하고, 미안해서 운다.
먼저 태어나서 언니라고 불리지만 동생들이 더 의젓하다. 어쩔 수 없는 환경을 탓하며 부모님을 원망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한 나와 달리, 동생들은 자신의 삶을 안정적으로 받아 들였다. 동생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아프지 않고 많이 웃으면서. 열심히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받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