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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경 Oct 04. 2023

이제 괜찮다고 웃으며 말하고 싶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겨울은 다른 해에 비해 유독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내 감각은 지나치게 청각에만 주의를 기울였고 추위보다 더한 찬 기운이 마음에 들어찼다.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온몸이 굳어지는 듯했고 울리지 않는 전화벨 소리는 시도 때도 없이 들려왔다.


 고1 겨울방학은 고2의 시간을 달리기 위해 신발 끈을 단단히 매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서 과외받거나 학원에 다니지 못했고 혼자 독서실을 오가며 공부했다. 그날도 독서실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저녁을 먹기 전까지 시간이 남았지만, 일찍 가방을 싸서 부모님 가게로 향했다. 가게 앞에 다다르자 누군가와 말다툼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가게 통유리 벽을 뚫고 새어 나왔다. 나는 겁먹은 강아지처럼 뒷걸음질을 치며 달아날 준비를 했다. 이내 말다툼의 상대가 아버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안으로 들어갔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할머니와 작은아버지가 사나운 얼굴로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는 막내 동생을 임신해서 배가 불룩한 엄마가 두 살배기 둘째 동생을 업고 서 있었다. 


 돈 때문이었다. 할머니와 작은아버지는 엄마에게 돈을 내놓으라며 악다구니를 쳤고 엄마는 줄 게 없다며 고집스럽게 말했다. 아버지는 어쩐 일인지 삼자대면에 끼지 않고 거리를 둔 채 가만히 있었다. 아버지의 모습이 낯설었다. 숨이 가빠왔다. 바싹 마른 입술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엄마랑 싸우지 마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제발.”     


 아버지는 알겠다며 걱정하지 말고 집에 가 있으라고 했다. 아버지를 믿고 싶었다. 단 한 번, 오늘,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그동안의 아버지는 용서하리라 다짐하며 엄마를 두고 홀로 가게를 나왔다. 뻣뻣하게 굳은 몸을 이끌고 왕복 6차선 도로를 건넜다. 엄마와 나는 6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발은 집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지만, 눈은 가게에서 뗄 수 없었다. 온몸이 떨려왔다. 추위 때문은 아니었다.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아버지는 술도 마시지 않았고 엄마는 임신 중이잖아. 동생까지 업고 있는데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 


 집에 도착한 후 거실 소파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밖은 점점 푸르스름해졌고 집 안이 어둠에 갇혔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온 집안을 가득 메우는 매서운 소리가 울려댔다. 가슴이 조여 오며 눈물이 쏟아졌다. 수화기를 들지 않았지만 내 몸이 먼저 반응했다. 집에 오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엄마와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길 거라는 걸. 전화를 건 사람은 외숙모였다.   


 “수경아, 지금 빨리 외숙모네로 와.”      


 외숙모는 큰 도로 말고 가게가 보이지 않는 뒷길로 오라고 다급하게 말씀하셨다. 전화를 끊고 외투도 입지 못한 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분명 뒷길로 가려고 했는데 무엇에 이끌렸는지, 나는 6차선 도로 앞에서 가게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며 길가에 주저앉았다. 가게 앞에는 경찰차가 불빛을 번쩍였고, 사람들이 가게를 둘러싸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게 확실했다. 하지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기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행인들은 발걸음을 멈췄고 지나가던 차들은 창문을 내려 거리에 앉아 울부짖는 나를 구경했다. 가게 앞에 있던 외삼촌이 나를 발견하고는 무단으로 도로를 가로질러 왔다. 외삼촌께 들은 말로는 그 당시 내 눈이 뒤집혀 흰자위만 보였다고 한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고 몸에 경련이 일어 병원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병원에 도착한 후 바퀴 달린 침대로 옮겨지며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요? 엄마 괜찮아요? 엄마 어디 있어요?”     


 옆에 있던 누군가가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엄마를 괜찮도록 둘 사람이 아니었다. 엄마. 엄마. 나는 아픈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의식하지 못한 채 목 놓아 울며 엄마만 불러댔다. 그때, 온몸에서 저릿함이 느껴졌고 양손이 뒤틀어지며 굳어갔다. 발 역시 쥐가 난 듯 딱딱해지며 내 의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과호흡이었다. 간호사가 내 입에 비닐봉지를 가져다 댔고, 팔에는 링거 바늘을 꽂았다. 잠시 후 호흡이 안정되었고 눈을 떴을 때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나보다 괜찮아 보였다. 엄마를 보자 다시 호흡이 가빠지며 절망과 안도가 뒤섞인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외숙모네로 바로 가지 왜 거기 서서 그 꼴을 봤어. 바보같이 이게 뭐야.”     


 엄마는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엄마의 삶도 충분히 힘겨웠기에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포옹조차 해 줄 여력이 없었다. 

 병원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올 때, 엄마와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수많은 눈빛을 보았다. 어릴 때부터 숱하게 받아 오던 그 눈빛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더욱이 여고생이었던 나는 모멸감과 수치심 같은 멀리할수록 좋은 감정들을 내 안에 가득 품게 되었다. 그래도 엄마와 동생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아버지를 피해 외삼촌 댁으로 갔다. 


 나는 사촌 동생 방에 누워있었고, 엄마는 거실에서 외삼촌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잠시 후 외삼촌 댁 초인종이 울렸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언제나 몸이 먼저 반응했다. 거실로 뛰어나가 인터폰 화면을 봤다. 피범벅에 상처가 가득한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문을 열지 말라고 애걸했지만, 엄마는 문을 열었다. 사촌 동생 방에서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문틈으로 거실의 부모님을 바라봤다.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무릎을 꿇고 무의미한 사과를 정성껏 했다. 엄마 역시 늘 그렇듯 아버지의 사과를 받아줬고 두 번 다시 그러지 않겠다는 반복된  거짓말을 또 믿어주었다. 그리고 접근 금지 가처분 신청을 취소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게에 들렀다. 통유리 벽이 뻥 하니 뚫려 있어 가게 안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산산조각 난 유리 파편들과 의자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를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나는 고개를 숙였고, 친구라도 만나게 될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지난밤, 할머니와 작은아버지는 엄마와의 대화가 원활하지 않자 아버지를 불러내 나갔다고 한다. 셋은 함께 술을 마셨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그분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분들의 의도대로 행동했다. 술에 취해 가게로 돌아온 아버지는 동생을 업고 있던 임신한 엄마를 향해 의자를 던졌다. 엄마가 가까스로 몸을 피하면서 유리 벽이 깨진 것이다.


 부모님은 만 하루도 되지 않아서 화해했고, 처참히 깨진 유리 벽은 반들거리는 새 유리로 갈아 끼워졌다. 나만 빼고 모두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지냈다. 부모님으로 인해 받은 상처는 내가 알아서 감당해야 할 내 몫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몸서리치게 놀랐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가상의 벨 소리에 잠식당해 귀를 틀어막거나 쥐어뜯기를 수없이 반복해야만 했다. 밤이 되면 베개를 물고 조용히 울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부모님은 매일같이 죽도록 싸우면서 왜 자꾸만 아이를 낳는 것일까. 내가 죽어야지만 아버지가 정신을 차릴까. 공부 대신 이런 생각들을 하며 남은 방학을 보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좌절은 개학 후 학교에 돌아갔을 때 찾아왔다.  

    

 새 학년이 시작된 3월의 첫날, 복도에서 혜영이를 만났다. 나는 학교에서의 가면을 쓰고 밝고 다정하게 인사했다. 혜영이는 인사 대신 눈물 가득한 벌게진 눈으로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수경아, 괜찮아?”

 “응? 뭐가?”

 “너 병원에 간 날, 나도 병원에 있었어. 언니가 급성 맹장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었거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한 채 그 자리에 서서 굳어 버렸다. 병원에서 나를 측은히 바라보던 수많은 눈빛 중 하나가 친구였다는 건 여고생인 나에게 가혹한 일이었다. 그날 이후 혜영이를 피해 다녔다. 멀리서 혜영이가 보이면 다른 길로 방향을 틀었고, 우연히 마주쳐도 고개를 돌리고 지나갔다. 혜영이와 함께 걸어가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혹시 혜영이가 내 얘기를 하는 건 아닐까 신경쓰이고 불안했다. 

 나에 대한 소문이 학교에 났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교에 다니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를 좋아하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있었음에도 친구들에게 내 마음을 온전히 주지 못한 건, 언제 들킬지 모를 우리 집 때문이기도 했다.

  

 가장 숨기고 싶었던 모습을 친구에게 들키고 나자 아버지를 혐오하는 마음이 더욱 커져만 갔다. 가정 폭력의 피해자인 엄마를 가해자라 여기며 원망한 것도 그날 이후였다. 오랜 시간, 남모르게 부모님을 비난하고 증오하느라 내 인생을 조금씩 갉아먹으며 살았다. 더는 그러고 싶지 않다. 내게는 내 삶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소중한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남은 인생을 아이와 남편과 잘 살아가기 위해 내 안의 모든 것을 꺼내어 하얀 종이 위에 펼쳐 놓고 있다. 글을 쓰며 움푹 파인 삶의 시간을 좋은 기억들로 덧대어 이어 붙이는 중이다. 

 나는 이제 괜찮다고, 웃으며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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