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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새이령길

비밀의 화원 속으로

by 정윤

강원도 인제 새이령길.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비밀의 화원이라 불리는 그 길을 걸었다.

이곳은 과거 영동과 영서를 잇는 무역의 통로였고, 조선시대 보부상들의 땀과 눈물과 한이 서려있던 옛길이다. 마장터 길은 한때는 번창했으나 지금은 사람의 발길이 끊긴 청정 오지 구역이 되었다.


이곳은 경사가 완만하고 산세가 부드러워 영동 지방의 소금과 수산물을 실은 우마차가 다녔던 길이다. 당시 보부상들이 장을 열어 물물교환을 하던 마장터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진부령과 미시령 길이 뚫리기 시작하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점차 잊혀져갔다. 깊숙한 숲 속에 자리 잡고 살았던 마장터 마을 사람들도 다 떠났다. 그곳엔 집터의 흔적들만 남아 있다. 덕분에 그 길은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원시 자연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들풀들이 자라나 앞뒤 분간이 어려울 정도의 어두운 숲길에 서서 우리 일행은 난감했다.


풀숲을 헤쳐 가다보니 겨우 사람 하나 다닐 만한 좁은 길이 이어져 있었다. 빽빽한 나무 숲에 싸여 햇볕이 들지 않아 어둡고 축축했지만 알싸하고 진한 초록의 향기가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숲의 향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나무들이 내뿜는 풋풋한 향기가 내 몸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달고 싱그러운 숲의 향기는 도시에 찌든 내 마음을 정화시켜 주었다.


마장터 새이령은 인제 용대리 옛 미시령길에서 고성군 도원리로 넘은 옛길인 대간령(大簡嶺) 길이다.

옛날에는 진부령, 한계령과 함께 동서 교통의 주요 통로로 이용되었다. 큰 샛령은 대간령, 작은 샛령은 소간령(小間嶺)으로 불리고 있다. 마장터는 새이령을 오가며 장사를 하던 사람과 말이 쉬어 가던 마방과 주막이 있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대간령 안내문 참조>


날씨는 한여름을 능가할 만큼 더웠지만 소소하게 옷깃을 스치는 바람의 숨결이 고마웠다.


길을 걷다가 계곡에서 발을 담갔다. 시리고 맑은 물에 도시에 찌들어 있는 탁한 내 발을 담그기가 미안했지만, 시원한 계곡 물이 내 발등을 간질이는 느낌은 귀하고 소중했다.

준비해 온 간식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다람쥐와 눈 맞춤을 했다, 다람쥐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조그맣고 앙증맞은 손을 모아 도토리 먹기에 바쁘다.


초록의 화원 속에 울리는 청량한 새소리는 길을 걷다가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지만 살아보겠다고 스스로 피어나서 예쁜 손짓하는 야생화의 모습도 애처롭다.


봄이 오면 야생화의 천국으로, 여름이면 우거진 초록 숲길과 맑게 흐르는 계곡물로, 가을이면 하늘을 뒤덮는 오색단풍의 화려함으로, 겨울이면 순백의 순수함과 청량감으로 계절마다 그 나름의 특색 있는 풍경으로 힐링이 되어주는 길.

가을이 되면 꼭 다시 찾고픈 길이다.


마장터 새이령 숲 속 모습


10월쯤이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긋불긋 물들어 있는 단풍 속을 걷고 있는 가을 속에 내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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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