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달팽이 3

by 정윤

나는 미술 요법 시간 외에는 방에서 잘 나가지 않고 계속 잠만 잤다. 자다가 깨면 그저 멍한 표정으로 누워있거나 쇠창살이 쳐진 창밖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 3시가 되면 밖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물론 처음부터 산책 시간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내가 병동에 오고 보름이 지난 후부터 산책 시간이 허용됐다. 밖이라고 해봐야 철문을 열고 나가서 기다란 복도를 이리저리 돈 다음, 고작 병원 뜰 안을 몇 바퀴 거닐고 오는 것이었다.


보름 만에 밖으로 나온 나는 강렬한 햇빛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폐쇄병동 안에만 있어서인지 갑자기 나온 바깥세상이 너무 눈이 부셨다. 눈앞에 보이는 사물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어지러웠다. 나는 병동 사람들과 산책에 합류하지 못하고 뒤뜰 등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다. 오전에 내린 비가 그쳐서인지 벤치가 눅눅했다. 풋풋한 초록빛을 띤 등나무 잎새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멍하니 병동 사람들의 산책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광식이가 능글맞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저놈이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순간 나는 머리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꼴좋다. 여기 오니까 어떠냐?


느물거리는 광식이를 보자 속이 뒤집혔다.


-이 개새끼야. 네가 무슨 상관이야?


나는 광식이 얼굴을 치려고 팔을 휘두르며 발길질을 했다.

-어쭈, 많이 늘었는데.


광식이가 히죽거리며 몸을 피했다.


-돈 있으면 좀 내놔.


-이 미친 새끼야. 저리 못 꺼져?


나는 바닥에 있는 돌멩이를 집어서 광식이에게 덤벼들었다.


같은 방 까까머리와 병동 사람들이 다가와 나를 붙잡았다.


-개새끼. 또 한 번 내 앞에 나타나 봐. 죽여 버릴 거야!


나는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게 어디서, 까불고 있어. 넌 내 손바닥 안에 있어, 새꺄. 너는 나를 못 벗어나. 병신새끼!


광식이는 어느새 웃음기를 감추고 무서운 얼굴이 되었다. 등을 보이며 멀어져 가는 광식이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나는 광식이가 병원문을 빠져나갈 때까지 노려보고 있었다.


2시간의 산책 시간이 끝나면 병동 사람들은 다시 철문 안으로 들어와야 했다. 저녁 식사 시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식사 시간이 되면 식당에 식판들이 날라져 들어오고, 음식들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식판을 들고 먹을 만큼의 양을 덜어 식탁에 앉아 먹었다. 음식을 보자 생각지도 않게 식욕이 몰려들었다. 콧속으로 구수한 냄새가 스며들자 입안에 단침이 고여 들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전혀 식욕이 없었는데 이상했다. 나는 식판에 음식들을 담았다. 게걸스럽게 밥을 먹어 치우는 사람들 옆에서 나도 순식간에 밥을 먹어 치웠다. 밥을 먹어도 돌아서면 다시 배가 고팠다. 내 뱃속엔 아귀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먹어도 먹어도 끊임없이 밥을 달라 요구했다. 아무래도 주치의가 식욕 촉진제를 추가한 것 같았다.


나를 지켜보던 간호사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선우 님, 이제 식사를 잘하네요. 밥맛이 돌아왔네요, 호호호.

나는 날마다 엄마에게 공중전화를 했다.


-엄마, 나 퇴원시켜 줘.


-힘들겠지만 조금만 참고 있어. 병을 고쳐야 퇴원을 하지.


-엄마, 숨을 못 쉬겠어. 약만 먹으면 축 늘어져서 종일 잠만 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고. 정말이야. 엄마, 제발. 퇴원하면 엄마한테 대들지도 않고 말도 잘 들을게. 엄마, 응?


-조금만 더 견디고 있어. 선우야.


-엄마. 나, 엄마 아들 맞아? 엄마가 나 낳은 거 확실하냐고. 어쩜 아들이 이리 죽을 거 같은 데도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안 가. 더러워서 집에 안 간다고. 끊어!


나는 엄마에게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자식을 이런 곳에 가둬두는 부모가 부모인가. 죄 없이 끌려와 갇히게 된 나는 부모가 싫고 경멸스러웠다.


화가 나서 아빠에게 전화했다.


-아빠, 나 퇴원시켜 줘. 나를 왜 정신병원에 가둔 거야? 내가 조용한 곳에서 쉬고 싶다고 했지, 언제 정신병원에 가둬달라고 했냐고.


-미안하다. 선우야. 미안해.


아빠는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자식을 정신병원에 가둔 부모가 부모야? 나를 왜 가둔 거냐고! 아빠가 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이러는 거야?


-……!


-나 퇴원시켜 달라고. 왜 말이 없어!


-…….


아빠는 말이 없었다. 아빠 하곤 도대체 대화가 되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씩씩거리며 병동 복도를 수없이 왔다 갔다 했다. 앞으로는 절대로 집에 전화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서도, 다음날이 되면 또 엄마에게 전화해서 떼를 썼다.


내 방에는 곱슬머리 형과 까까머리가 같이 생활했다. 평소에 어두운 얼굴로 말없이 창밖만 내다보던 곱슬머리 형은 무슨 이유로 이곳에 들어왔는지 말을 하지 않았다. 까까머리는 시도 때도 없이 떠벌리며 병동 안을 돌아다녔다. 조민재/ M/ 17세. 까까머리의 이름이었다. 나이도 나와 같은 열일곱 살이었다. 침대 머리맡에 걸어둔 이름표를 보고 알았다. 눈가에 가늘고 긴 흉터 자국이 있어서 처음엔 민재가 무서웠다. 민재는 온종일 기분이 들떠 있었다. 항상 하이톤으로 종일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여기저기 간섭하지 않는 게 없고, 병동 사람들의 신상을 다 꿰고 다니는 놈이었다.


-난 바이폴라야. 너 바이폴라가 뭔지 알지? 조울증 중에 조증 상태인 거. 난 거의 조증일 때가 많아. 기분이 갑자기 가라앉을 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일 년에 몇 번 안 돼. 하하하.


민재는 묻지도 않는 말을 떠벌렸다. 녀석은 항상 수다스러웠다.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은 나와는 달리, 민재는 이곳 생활에 만족해하는 듯 보였다. 나는 종일 떠들어 대도 지치지 않는 민재가 신기했다.


-넌 여기가 좋냐? 난 지겨워서 나가고 싶은데.


-너처럼 병원에 처음 들어온 초짜들은 대개 그래. 나도 처음엔 그랬걸랑. 퇴원시켜 달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공중전화에 붙어살았지. 부모에게 전화해서 울고불고, 욕하고. 심지어 죽겠다고 협박도 했걸랑.


-누가 면회라도 와줬으면 좋겠다. 정말 답답해 미치겠어.


-한 달 안엔 면회가 안 돼.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규칙이 그래. 난, 여기가 좋아. 나도 들어왔다 나갔다 입, 퇴원을 반복해 봤는데, 밖에 있는 거보다 여기가 더 편하걸랑. 우리 같은 사람들은 밖에 나가면 상처받을 일이 더 많걸랑. 여긴 다 같은 처지니까 그럴 일은 없어. 우리 엄마 아빠는 이제 무덤덤해진 것 같아. 매달 병원비와 간식비만 입금해 주고 면회도 잘 오지 않걸랑. 이젠 포기했나 봐.


민재는 쓸쓸한 웃음을 날리며 흡연실로 들어갔다. 병동 안에서 흡연실은 비교적 잘 꾸며져 있었다. 널찍한 3인용 소파가 두 개나 놓여 있고, 둥그런 원탁에 빙 둘러 의자가 놓여 있었다. 흡연실 한쪽엔 커피자판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병동 사람들은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면서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피우면서 커피를 마시면 담배 맛이 더 좋은 건지, 커피 맛이 더 좋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담배 한 개비를 피우는 동안 커피도 아껴서 나눠마셨다.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환자들은 이 세상 시름이 하나도 없는 얼굴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그들의 표정은 평온했다. 적어도 흡연실에서만큼은 나이가 많건 적건 간에 차별이 없었다. 미성년자라 해도 담배가 허용됐다. 바깥세상에서 생각하는 상식과는 다소 특이한 상황이 이곳에선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졌다. 미성년자에게 나이 든 노인이 담배를 빌려주고 불을 붙여주기도 했다.

나는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환자들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