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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5

탈출

by 정윤

병원 정문은 수시로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활짝 개방되어 있었다. 이곳을 여러 번 관찰해봤지만 나갈 수 있는 곳은 오로지 정문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환자복을 입은 채 정문으로 당당하게 걸어 나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정문 입구에는 경비원이 지키고 있었다.


나는 산책 시간 동안 날마다 경비실을 유심히 관찰했다. 경비원은 진찰받으러 온 사람들이나, 오가는 사람들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의외로 정문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은 자유스러워 보였다. 단지 환자복을 입고 나가려는 환자들에게만 까탈을 부렸다. 꼬치꼬치 묻고서는 절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단속했다. 나도 옷을 바꿔 입고 나간다면 무리 없이 밖으로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사복이 없었다. 엄마가 내 옷을 전부 가져갔기 때문이었다. 폐쇄병동 안으로 들어가면 꼼짝할 수 없었다. 그나마 내가 탈출할 수 있는 시간은 산책 시간뿐이었다.


병원 정문을 들어서면 왼편으로 철근 콘크리트 3층 본관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좀 오래되고 낡은 건물이었다.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진 곳이 많았고, 어떤 곳은 땜질한 흔적으로 얼룩덜룩했다. 본관 건물엔 진료실, 임상병리실, 각종 검사실, 원무과 등이 있었다. 본관 건물 건너편으로 5층 건물이 있는데 1층엔 편의점과 화장실, 면회실, 프로그램 실, 소아병동, 개방 병동 등이 있고 2층엔 폐쇄병동이 있었다. 내가 생활하는 폐쇄병동도 이 건물에 있었다.


폐쇄병동은 여자들이 있는 곳과 남자들만 있는 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나는 2층 폐쇄병동에 있었고, 여자들은 3층에서 생활했다. 우리는 복도에서 여자 환우들과 부딪칠 일은 거의 없었다. 단지 미술 요법 시간이나, 재활 치료 시간, 산책 시간에는 여자 환우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 실은 1층에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미술 요법 시간이나, 아침 재활 치료 시간엔 1층으로 내려가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병원 중앙에는 운동장만 한 넓은 터가 있는데 한쪽으로 은행나무들이 서 있었다. 폐쇄병동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은행나무가 보였다. 본관 건물과 건너편 5층 건물 앞에는 죽죽 선을 그어 주차장을 만들어 놓았다. 병원 주차장은 차들이 항상 가득 주차되어 있었다.


산책 시간이 되자 나는 산책하는 병동 사람들을 따돌리고, 소아병동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아병동으로 들어가는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그쪽으로 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인지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있었다. 편의점 뒤쪽으로 가서 병원 이곳저곳을 살폈다. 어디에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허술한 곳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본관 건물 끄트머리에 있는 개방 병동 쪽으로 걸어갔다. 개방 병동 환자들은 그나마 규제를 덜 받고 산책 시간이 자유스러워 보였다. 그들은 어깨를 움츠리고 잔디밭 가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걸음걸이는 판에 박은 듯 일정했다. 열 걸음쯤 앞으로 가다가 뒤돌아서고, 다시 열 걸음쯤 걷다가 뒤돌아서고, 그렇게 걷기를 기계처럼 반복했다. 그들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빛은 초점 없이 음습한 기운이 풍겼다. 그들은 반복적인 걸음걸이만 되풀이했다. 그들에게는 탈출하려는 의지마저도 고갈되어 보였다. 그들은 이미 규제할 필요가 없이 길들인 환자가 되어 있었다.


허름한 개방 병동 뒤쪽으로 돌아가니 풀숲이 우거져 있었다. 그곳은 햇빛이 들지 않고 을씨년스러웠다. 쓰다 버린 재활용품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죽은 벌레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그곳에 한참 동안 서서 주위를 탐색했다. 그곳은 사람들의 왕래가 없었다. 엄마가 사복을 가져온다면 산책 시간에 산책하는 척하고 이곳에 숨긴 뒤, 그것을 입고 나가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막상 나간다고 해도 내가 갈 곳은 집밖에 없었다. 탈출에 성공한다 해도 집으로 들어가긴 싫었다.


나는 강하게 보이고 싶었다. 바보같이 멍청하게 보이니 광식이 놈한테 항상 당했다고 생각한 나는 일부러 인상을 쓰고 다녔다. 버스에서나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면 다시 한번 더 힐끗거렸다. 나는 그 눈길이 주는 느낌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해괴한 사람에게 보내는 멸시와 두려움이 섞인 눈빛.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그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특별히 잘못한 게 없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 시선을 피했고, 내 주위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서 있으려고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어떤 날은 시비가 붙기도 했다. 버스에서 내려 싸움이 붙을 때도 있었다. 경찰서를 가네 마네하고 싸우다가 대개는 그냥 참고 갔다. 그들은 마치 더러워서 못 참겠다는 얼굴로 바닥에 침을 퉤! 뱉고 사라졌다. 나는 분을 참지 못해 한참을 씩씩거리다 집에 돌아오곤 했다. 한번 화가 나면 걷잡을 수 없이 뜨거운 것이 밀려 올라왔다. 모든 걸 다 때려 부수고 폭파하고 싶었다. 하지만 밖에서 그럴 순 없었다. 그럴 때면 영락없이 귓속에서 그 목소리가 나를 괴롭혔다. 그 목소리는 끈질기고 집요하게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원래의 내가 나인지, 그 목소리가 나인지, 어떤 게 진짜 나인지 혼란스러웠다. 때론 귓속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가 나인 것도 같았다.


결국 내 인생은 꼬이고 말았다. 아직 십칠 년밖에 살지 않았는데 폐쇄병동에 갇혀 사는 삶이라니. 이곳의 생활은 도저히 적응되지 않았다. 여기서 나가면 어디로 가야 할까. 주유소에 취직할까? 아니면 작년에 가출해서 일했던 감자탕집으로 갈까. 그곳에서 같이 일했던 희주는 아직도 그곳에 있을까. 그래도 희주는 내 말을 잘 들어주었고, 웃기도 잘했던 여자아이였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로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산책이 끝나는 시각까지는 아직 30여 분이 남아 있었다. 이 시간쯤이면 진료소도 거의 끝날 무렵이어서 정문 쪽에도 사람들 발길이 뜸했다. 나는 어슬렁거리며 경비실 앞을 거닐었다. 정문 앞에 있는 경비실을 흘끗 들여다봤다. 경비원은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순간 내 신경에 삐리릭 진동이 왔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병원을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 없었다. 폐쇄병동에 갇히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폐쇄병동에 갇혀서 지내는 일은 오늘로써 끝내고 싶었다. 더는 그곳 냄새도 역겨웠다.


나는 정문 밖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온 힘을 다해 횡단보도 건너편으로 뛰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슬리퍼를 신은 탓에 제대로 속도가 나지 않았다. 뒤에서 누군가가 자꾸 나를 잡아끄는 것 같았지만 뒤를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도로 옆 골목길로 접어들며 쓰러질 듯 아슬아슬 모퉁이를 돌았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다리에 점점 힘이 빠졌다. 눈물이 삐질삐질 흘러나왔다. 하늘에 떠 있는 낮달이 빙글거리며 내 머리 위로 맴돌았다. 슬리퍼가 벗겨져 도로 위로 내동댕이쳐졌다.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다음 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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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