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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7

by 정윤

-토하지 않는 방법은 없나요?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어요. 그냥 견디는 수밖에. 토한다고 해서 약을 줄이면 다시 폭력성이 되살아나거든요.


아침마다 나는 구역질을 했다. 그걸 알면서도 약을 줄일 수 없는 거였다. 아마 나는 평생 구역질을 밥 먹듯이 하면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약을 먹으면 졸리고 행동이 둔하고 말투도 어눌해졌다. 머릿속 생각들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도 여전했다. 생각도 느려지고 말투도 느려졌다. 생각한 것이 말이 되어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는 잠시 머뭇거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과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의 리듬이 일치되지 않았다. 뭔가를 말하려 해도 내 뜻과는 다르게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그걸 정정하려고 하면 더 큰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자주 생겼다. 그러다 보면 처음에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조차 알 수 없어 버벅거리기도 했다. 마치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어서, 이쪽의 나가 저쪽의 나에게 다가갈 수 없는, 그런 절박함으로 버둥거리다가 마는 느낌이었다. 내 몸은 약을 거부했으나, 병원에서는 약을 삼키라 했다. 나를 괴롭혔던 두렵고 치 떨리는 그 목소리는 떠났지만, 약물이 내 몸 곳곳을 파고들며 이상 징후를 나타냈다.

미술 요법 시간이 되면 여전히 그림을 그렸다.

나는 연필로 스케치한 그림에 물감을 풀어 수채화를 그렸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내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그림 속의 나는 그 생각들을 털어버리기 위해 그저 앞만 보고 걸어갔다. 초록빛 숲을 향해 걷고 있는 나와, 달팽이 모습을 그렸다. 달팽이와 내가 숲속을 걸어가며 서로 따뜻한 시선으로 마주 보며 위로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마치 내가 숲속을 걷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사람이 나를 하찮게 여길지 몰라도 그림 속에서만큼은 내 존재감이 살아 움직였다. 나무이파리들은 금방이라도 초록 물을 뚝뚝 흘릴 것처럼 생명력이 넘쳤고 나무 사이로 햇살이 세차게 빛을 뿜었다. 초록 숲과 달팽이를 그리면서,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들이 조금씩 사르르 풀어지고 있었다. 나는 완성된 그림에 ‘달팽이와 나’라는 재목을 붙였다.


미술 쌤은 내 그림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선우 그림엔 왠지 치유의 힘이 느껴져.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위로가 되는 지점이 있거든.


그림을 그리던 병동 사람들이 우르르 내 자리로 몰려들었다.


-우와!


병동 사람들은 내 그림을 바라보며 놀라워했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다음날, 내가 그린 그림이 병동 복도에 걸렸다. 나는 조금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마음 한편으로는 뿌듯함이 가슴 깊이 차올랐다. 액자 속에는 달팽이와 마주 보고 있는 내 모습이 걸려있었다. 나는 병동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이선우 님, 그림 멋져요!


-이선우 님, 그림을 왜 이렇게 잘 그려요?


병동 내에서 간호사와 보호사들, 주치의도 내 그림을 보고 칭찬을 했다. 나는 칭찬에 익숙지 않아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기쁘기도 하고 얼떨떨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다.


나는 틈만 나면 복도에 걸려있는 내 그림을 들여다봤다. 그림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달팽이가 나를 향해 기어 오고 있는 듯했다. 나는 달팽이 그림을 여러 형태로 그리고 싶었다. 숲길을 걷는 모습이거나, 때론 지쳐서 앉아 있는 모습이거나. 달팽이는 어느 그림에도 나와 함께 했다. 병실에서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멍하니 시간을 보내거나 잠만 잤던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나는 완전히 그림 속에 몰입해 들어갔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온전히 충만 된 이선우만 있었다.


창밖의 은행나무 잎새들이 노랗게 물들어갔다. 벌써 10월 하순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바람이 불자 은행잎들이 노란 잎새를 파드득거리며 떨어졌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도, 나는 쇠창살 밖으로 저 은행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때는 초록 잎으로 무성하게 뒤덮인 은행나무를 보면서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노란빛으로 반짝이는 은행나무를 보자 내가 나무를 봐왔던 게 아니라, 마치 오래전부터 은행나무가 나를 보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창밖에서 창안에 갇혀 있는 나에게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보여주며 그렇게.


주치의는 말했다. 2주 후엔 나도 퇴원할 수 있다고. 이제 이곳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됐는데 퇴원하게 된다는 말이 이상하게 섭섭하게 들렸다. 나로서도 알 수 없는 이 섭섭한 감정은 뭔지. 퇴원이라는 말이 별로 기쁘지 않았다.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밖에 나가는 것보다 병원 생활이 더 안정감을 준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문득문득 죽음의 유혹이 나를 따라다니기도 했다. 내가 생각해도 나라는 인간은 참 아이러니했다.


퇴원하는 날, 주치의는 당부했다.

-이선우 님, 하루라도 약을 안 먹으면 다시 재발합니다. 우선 열흘분 나가니까, 약을 먹다가 이상이 생기면 열흘 전이라도 꼭 오셔야 해요. 알았죠?


주치의는 엄마, 아빠에게도 내가 약을 빠트리지 않고 먹을 수 있도록 신경 써 달라는 당부를 했다. 퇴원하기 위해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병동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잘 가. 다음에 또 여기 들어오지 말고!


병동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아저씨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민재는 아침부터 병실 안을 계속 왔다 갔다 서성거렸다.


–이렇게 헤어지게 될 걸, 결국 이렇게 헤어지게 될걸…….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방안을 서성거렸다.


어제 산책 시간에 만난 세아는 나에게 그림 한 장을 주었다.


-그냥 그려본 거야.


나를 그린 모양인데, 실제 내 모습보다도 순정만화에 나옴 직한 잘생긴 남자였다. 나는 김 보호사를 따라 엄마 아빠와 함께 굳게 닫혀 있는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민재가 주춤주춤 뒤따라왔다. 철커덕, 육중한 출입문이 열렸다.


-잘 가!


민재가 손을 흔들었다. 철문이 닫히자 민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우중충한 복도를 지나 바깥으로 나가서 2층 폐쇄병동 창문 쪽을 올려다보았다. 창가에 병동 식구들이 모여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녕.


나는 그들과 작별했다. 폐쇄병동에서 만난 사람들은 정에 굶주린 사람들이었다. 한 번도 정을 준 적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는지 섭섭했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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