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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8

by 정윤

대학 합격 통지를 받았다. 나는 간당간당한 성적으로 내가 가고 싶은 학과에 겨우 합격했다. 엄마에게 합격 소식을 알렸으나, 엄마는 하나도 기뻐하지 않았다. 재수를 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좋은 대학에 가기를 원했고, 나는 자신이 없어서 싫다고 했다. 재수도 자신있는 아이들이 하는 것이고, 지금의 내 성적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터였다. 재수한다 해도 더 나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재수를 하느니 차라리 대학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하는 수없이 엄마가 승복을 했지만, 엄마는 내가 가고자 하는 학교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엄마는 선우가 조현병에 걸리고 나자, 나의 성적에 더 집착했다. 선우가 저러니 나라도 좋은 대학에 가길 원했던 엄마는 나에게 과외를 시키고 일류 학원에 보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대학 입학금과 일 년 치 학자금은 대줄게. 그다음은 너 스스로 벌어서 다녀!


-알았어. 그럴게.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정 안되면 학자금 대출을 해서 나중에 갚으면 될 것 같았다. 엄마가 일 년 치 학자금을 대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엄마와 아빠는 다음 주에 서유럽 여행을 갈 거라고 했다. 여행을 가기 위해 아빠는 휴가를 낸 모양이었다. 평생 일만 해오던 아빠는 그 흔한 서유럽 여행도 처음이었다.


-선우 때문에 걱정이긴 한데, 정우 네가 잘 보살펴 줄 수 있지?


-걱정하지 마. 선우는 내가 잘 살필 테니.


-그래, 다행히 선우는 약을 잘 먹고 있으니.


-엄마, 이제는 아빠랑 두 분이 여행도 좀 다니고 그렇게 살아. 선우도 선우지만 엄마 아빠 인생도 있는 거잖아.


-아들이 병으로 고생하는데 어떻게 맘 편히 여행을 다니겠냐?


-우리는 이제 걱정하지 마. 우린 우리 힘으로 살아갈 테니까. 엄마 아빠는 두 분 인생 살아야지.


-아무리 좋은 풍경을 봐도, 아무리 기쁜 일이 생겨도 전혀 기쁘지 않아. 엄마는 가장 큰 걱정이, 그나마 우리가 살아 있을 땐 선우를 돌보고 거둘 수가 있어. 문제는 우리가 떠나고 난 후야. 선우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게 제일 걱정이야. 그 생각만 하면 미치겠어. 왜 이런 일이 생겼나,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내가 잘못 살아온 건가 싶고. 선우 생각만 하면,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엄마 가슴속엔 시린 바람이 들어와.


조현병 환자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라는데, 그 많은 조현병 당사자와 가족들은 어찌하고 있는지. 조현병 환자를 둔 가족들은 국가의 도움 없이 환자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 치료비를 부담하고, 간호하며, 조현병 환자의 발작을 감내하면서도 드러내놓고 말도 못 하고 쉬쉬하며 살아간다. 그나마 돌봐줄 수 있는 가족이 살아있을 땐 그래도 다행이다. 만약 돌봐주는 가족이 환자보다 먼저 죽는다면, 환자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치료기관이 없다.


언젠가 엄마가 울면서 그런 말을 했다.
"선우가 나보다 먼저 갔으면 좋겠어. 딱 하루만이라도 나보다 먼저 가야 내가 죽기 전까지 선우를 보살필 수 있을 거 아니야."


부모님이 보름 동안 집을 비운 사이, 나와 선우는 엄마 찬스 카드를 썼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생필품이나 즉석식품, 신선식품들을 시키면 새벽에 문 앞에 싱싱하게 배달되어왔다. 밥과 요리는 주로 내가 만들고, 선우는 설거지와 뒷 처리를 했다. 선우는 느리고 둔한 몸놀림으로도 제 역할을 꼼꼼히 해냈다. 단지 흠이 있다면 너무 느려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선우는 베란다를 화실로 만들고 싶어 했다. 이미 엄마에게 허락을 받아놓은 상태였다. 선우와 나는 베란다에 있는 자질구레한 화분들을 치우고 바닥을 청소했다.


-선우야, 이 행운목 거실 안으로 들여다 놓자.


나와 선우가 화분을 양쪽에서 들고 거실로 들고 들어왔다.


-아니, 이거 달팽이 아니야? 집 나갔던 내 달팽이가 여기에 있었어!


선우가 화분 소라 껍데기 속에서 달팽이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정말이었다. 선우 달팽이가 죽지 않고 그곳에 있었다. 그동안 선우 달팽이는 행운목 화분 소라껍데기 속에서 살고 있었다. 예전에 바닷가에 가서 주워 온 소라껍데기를 엄마가 행운목 화분 흙 위에 올려두었던 거였다. 달팽이는 그동안 행운목을 뜯어 먹으며 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선우는 달팽이를 조심스레 들고 유리병 안에 넣었다.

채소들을 새로 깔고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달걀흰자를 삶아 잘게 다져 넣어 주었다. 달팽이는 그동안 굶주렸던 식욕이 되살아나는지 허겁지겁 달걀흰자를 먹어 치웠다. 물을 뿌려주고 앞으로 달팽이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망사를 유리병 위에 씌워 주었다.


우리는 베란다를 깨끗이 청소했다. 바닥이 지저분해질 것을 염려해 장판을 새로 깔고 그 위에 비닐을 깔았다. 이젤과 그림 도구들을 옮겨 놓으니 작업실로 손색이 없었다. 그림을 그리다가 지치면 창문을 열어 바깥 풍경을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주말 아침이었다. 성호가 집으로 놀러 오라는 전화를 했다. 부모님이 시골 할머니 댁에 가는 바람에 집이 비는 모양이었다. 성호와 나, 태호, 셋은 만화책을 보고, 피자를 시켜 먹고, 오락게임으로 시간을 보냈다. 나는 태호를 만난 김에 전에 태호에게 물었던 아이에 관해 물었다. 태호는 선우랑 같은 반이어서 선우에 관한 얘기들을 종종 묻곤 했던 터였다.


-선우 괴롭히던 애는 아직도 학교 잘 다니냐?


-누구?


-아, 왜 있잖아. 선우 돈 뺏고 괴롭히던 새끼. 내가 좀 알아보라고 하던 애 말이야. 걔, 아직도 학교 잘 다니냐고.


-선우 괴롭히던 애 없었는데? 누굴 말하는 거야, 형?


-날마다 선우 돈 뜯어 가고 괴롭히던 애가 없었다고? 선우가 걔 때문에 학교도 자퇴한 건데? 걔한테 엄청나게 시달리는 거 같았는데, 무슨 말이야? 없다니.


-우리 반에 선우한테 돈 뜯고 괴롭히던 얜 없었어. 선우는 수업 시간 내내 잠만 잤고, 우리랑 말도 잘 안 했거든.


-이상하네.


정말 이상했다. 선우를 괴롭히던 앤 도대체 누구였지?


-나도 얘들한테 들은 얘긴데, 선우가 학교 끝나고 혼자 화장실 뒤쪽으로 가거나, 급식실 뒤쪽 쓰레기장으로 가는 걸 본 얘들이 있었대. 그때 몰래 본 애들이 그러는데, 선우가 누구와 얘길 하듯이 혼자서 이야기를 하더라는 거야. 얘들은 소리 죽여 킥킥대며 그 모습을 봤대. 그러다가 선우가 몸을 구부려 말고 한참 바닥에 쓰러져 뒹굴다가 가기도 했고, 선우가 굉장히 괴로워하는 모습이어서 그걸 지켜본 애들이 동영상을 찍었는데, 선우가 좀 이상하더라는 얘기들을 했었어. 그 당시 소문이 쫙 퍼졌었거든. 전교생이 모르는 애들이 없었을 거야 아마. 자퇴한 선우만 몰랐겠지. 선우가 자퇴하자 선우가 정신병원에 갔을 거라는 말들도 돌았었어.


태호는 그 당시 애들과 공유했던 동영상이 어디 있을 거라며 핸드폰에 저장된 동영상을 찾았다.


-여깄네, 이거.


태호가 보여 준 동영상엔 선우 혼자였다. 선우는 혼자서 구시렁거리며 말을 하고, 팔뚝으로 얼굴을 가린 채, 바닥에 쓰러져 뒹굴고 있었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선우 혼자였다. 한참 후, 일어나서 교복을 툭툭 털고 터덜터덜 운동장을 걸어가는 모습까지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렇다면 선우를 괴롭히던 그 아인 실제 인물이 아니라, 선우 환시 속 인물이었다는 건가? 조현병에 걸리면 환청과 환시가 반복돼서 나타난다는데, 선우는 그 환시 속 인물인 광식이한테 괴롭힘을 당해 엄마에게 돈 달라고 행패를 부렸다는 얘기인가? 선우는 그동안 헛것을 보며 시달려왔고, 급기야 정신병원 신세까지 지게 된 거였나? 나는 그동안의 선우를 생각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우는 선우를 괴롭혔던 광식이 때문에 조현병에 걸린 게 아니라, 조현병 때문에 광식이라는 헛것이 보였던 거였다.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코끝이 찡해졌다. 몹쓸 병으로 시달려왔을 선우 모습이 마음에 밟혀 가슴 속이 뻐근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급히 화장실로 들어가 코를 풀었다.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선우가 혼자 겪어냈을 수많은 순간이 가련해져서 자꾸만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선우가 혼자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멀찌감치 서서 한참 동안 선우를 지켜보았다. 선우는 혼자 말하다가 화가 난 듯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퇴원한 선우는, 날마다 약을 먹는 중이었다. 병원에서 퇴원을 시켰을 때는 환청이나 환시가 사라졌을 법도 한 데, 아직도 선우 눈에는 환시가 보이는 건지. 선우의 병은 아직도 진행 중인 건지. 그만큼 선우에게 광식이라는 허상의 존재가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조현병은 한 번 걸리면 완치될 수 없다는 말을 어느 블로그에서 읽었다. 그래서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것도.


나는 선우에게 다가가 물었다.


-선우야, 누구랑 얘기했어?


-그 새끼.


-여긴 아무도 없는데? 내가 다 봤어. 넌 아까부터 혼자 얘기하고 있었어.


-아니야, 방금까지도 그 새끼 있었어. 봐봐. 저기 가잖아!


-선우야. 아직도 환상이 보여? 네가 본 건 환상 속 인물이야. 걔는 현실에 없는 애라고. 헛것이 보인 거라고.


선우는 순간, 정지버튼을 누른 표정으로 굳어 있다가 강하게 부정했다.


-뭔 소릴 하는 거야? 말도 안 돼. 환상이라니.


-인제 그만 떠나보내. 선우야, 그만 그 애 보내 줘. 그건 아무도 대신 할 수 없어. 너만이, 할 수 있는 거야.


선우는 내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키득키득 웃었다. 그 웃음은 웃는 게 아니었다. 선우는 울고 있었다. 입술은 웃고 있는데, 눈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나는 태호에게 공유한 동영상을 선우에게 보여주었다. 선우 혼자 얘기하고, 선우 혼자 바닥에 뒹굴고, 선우 혼자 터덜거리며 운동장을 떠나는 모습을. 선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동영상을 몇 번이나 보고 또 봤다. 그때의 일이 다시 떠오르는지 동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나는 선우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 선우야. 괜찮아! 다 지난 일이야. 잊어.


선우는 벽을 붙잡고 서서 오래도록 울었다.


나는 선우 옆에 서서 선우가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흐렸던 하늘에 가느다란 실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물은 선우의 머리칼에 작은 물방울로 맺혀 있다가 어느 순간 사그라들었다. 선우의 머리칼에서 김이 솟아올랐다. 나는 비를 맞으며, 선우 머리에 가는 비가 내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비는 잔잔한 바람 속에 스며들 듯이 내렸다. 이 비는 얼마나 먼 곳을 거쳐 여기까지 왔을까. 선우는 지금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광식이라는 허상 속에 시달려왔을까. 나는 선우를 보며 가슴이 아팠다.


의도치 않은 병에 걸려 형인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자세히 말 못 하고 혼자 견디며 애태우고 불안해했을 선우. 섣불리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싸워왔던 내 동생. 그동안 선우를 귀찮아하며 차갑고 싸늘하게 대했던 나. 어디 한 곳 마음 붙일 데 없이 외로웠을 선우에게 형이라는 게 따뜻하게 마음자리 한 번 내주지 못했다는 뒤늦은 자책이 몰려왔다. 나는 미어지는 마음을 억누르며 선우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선우는 들어오자마자 샤워를 하더니 저녁도 먹지 않겠다고 하고 방에 들어갔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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