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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핀 마음 속 '배움'이란 꽃 하나

by 정윤

저희 학교에는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무릎이 아픈 분들이 대부분이죠. 거기다가 눈이 잘 안 보이는 분, 귀가 잘 안 들리는 분. 그런 악조건을 갖고도 배우겠다는 일념하나로 학교에 오시는 학생들을 보면 제가 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교실 맨 앞에서 안경을 쓴 학생이 글씨가 잘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안경까지 쓰시고 맨 앞자리에 앉아 계시면서도 안 보인다고?'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매일 노트에 필기를 따로 해주었습니다.

그러자니 수업 흐름이 끊기고 집중이 흩어지는 순간도 있었지요. 책에 밑줄 치기 할 때도 잘 안 보인다 하니 제가 밑줄을 쳐드리곤 했습니다. 그 학생은 아침 수업 전에도 뭔가를 쓰고 또 쓰며 배움에 집중하려고 애를 썼지만, 이해도가 떨어졌습니다. 수업시간엔 그 학생을 위해서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해서 설명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내색은 못했지만 다른 학생들 보기에도 미안하고 안타까운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식사를 함께하며 그 학생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학생은 황반변성이어서 한 달에 한 번 눈동자안에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안경을 써도 글자가 휘어져 보이고 글자 중간에 공간이 생겨서 글자가 흔들릴 때도 많아 칠판 글씨도 제대로 못 보고 국어 책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제가 얼마나 무지했고 이해가 부족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눈동자에 주사를 맞아야 한다니. 얼마나 무섭고 아프셨을까. 무서운 주사를 감내하며, 흐릿한 시야를 견디면서도 매일 교실에 나와 배우려는 모습을 제가 얼마나 가볍게 받아들였나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다른 학생은 귀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보청기를 끼고도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수업 중 제가 그 학생 앞에 가서 다시 반복 수업을 해야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매일 앞에서 다시 설명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더러는 수업 후에 남아서 수업시간에 못 들은 부분을 보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학생이 조심스럽게 저에게 편지를 주었습니다.

선생님, 너무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제 귀가 잘 안 들려서 선생님께서 애쓰시는 걸 잘 압니다.
제가 암 투병을 한 뒤 귀가 잘 안 들리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암은 이겨냈지만, 후유증이 귀로 왔습니다.
보청기를 껴도 잘 안 들리고, 때로는 선생님께 너무 죄송해서 학교를 그만둘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도 배우고 싶습니다. 공부하는 이 순간이 정말 행복합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편지를 읽는 순간,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마음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이 학생은 단순히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이 아니라, 암이라는 고통과 후유증까지 견디면서도 배움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학생이었던 것입니다. 그 사실 앞에서 제가 느낀 피로와 번거로움은 부끄러울 만큼 작았습니다.


학생들 한 분 한 분 이야기를 들어보면 참 애달픈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집에서도, 가족에게도 학교에 다닌다는 말을 숨기는 학생도 있습니다. 못 배웠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해서, ‘노래 교실 간다’ 거나 ‘요양보호사 공부한다’고 둘러대며 학교로 오신다 합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시리면서도, 동시에 깊은 감탄이 생깁니다.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몸이 따라주지 않아도, 배움 앞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뜨겁게 서 있는 학생들입니다. 늦은 배움은 더딘 걸음이지만, 그만큼 깊고 단단합니다. 몸이 힘든 날에도, 마음이 주저앉는 날에도, 학생들은 교실에 공부하러 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배웁니다.

늦었다고 포기하지 않는 용기. 스스로를 다시 세우는 힘. 비록 조금 늦게 피어나는 꽃이지만, 못다 이룬 꿈을 향해 한 겹 한 겹 피워내고 있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제가 도리어 학생들에게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반 학생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스럽고 귀합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채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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